셀라스가 부순 주어진 것의 신화, 20세기 미국 비판 철학자
셀라스의 아버지도 미국 철학회의 거물이었다
윌프리드 셀라스에게 철학은 가업이었어요.
그리고 그가 무너뜨린 토대 중 일부는 아버지 세대가 평생 지키던 것이었습니다.
셀라스의 아버지 로이 우드 셀라스(Roy Wood Sellars)는 미시간 대학 철학 교수이자 미국철학회 서부 분과 회장을 지낸 인물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한국철학회장이면서 서울대 철학과 교수를 겸한 격입니다.
그는 비판적 실재론(critical realism)이라는 학파의 창립 멤버이기도 했어요.
그 집안에서 태어난 윌프리드는 1933년 옥스퍼드 대학에 로즈 장학생으로 유학했습니다.
로즈 장학금은 영어권 최고 권위의 장학금으로, 한 해에 전 세계에서 수십 명 정도만 선발되는 제도예요.
그러니까 그는 철학계의 명문 가문 출신에, 엘리트 교육까지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결국 아버지 세대 전체가 발 딛고 있던 토대를 공격하는 인물이 됩니다.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의대까지 나온 아이가, 현대 의학의 기본 가정을 의심하는 책을 쓴 것과 비슷한 상황이에요.
그것도 가족이 평생을 바쳐 지켜온 그 가정을요.
셀라스는 1956년 한 강의에서 경험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렸다
1956년 봄, 한 미국 철학자가 런던에서 200년 묵은 가정을 흔들었어요.
셀라스는 그해 3월 런던 대학에서 세 차례 연속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 제목은 〈경험주의와 심리철학〉이었어요.
경험주의(empiricism)는 쉽게 말하면 "우리가 아는 것은 결국 감각에서 온다"는 철학의 흐름입니다.
로크와 흄 같은 영국 철학자들이 약 200년 전에 확립한 이 생각에는 핵심 가정이 있었어요.
"감각을 통해 직접 받아들이는 날것의 데이터가 있고, 이것이 모든 지식의 출발점이다"라는 겁니다.
셀라스는 이걸 '주어진 것의 신화(Myth of the Given)'라고 불렀어요.
카메라를 생각해 보세요.
사진을 찍으면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담긴다고 믿기 쉽습니다.
하지만 카메라는 이미 색, 구도, 노출을 선택하고 있었어요.
그것처럼 셀라스의 핵심 주장은 이랬습니다.
"순수하게 날것으로 주어지는 감각 데이터란 없어요.
모든 인식은 이미 개념과 언어로 짜인 '이유의 공간(space of reasons)' 안에서만 일어나거든요."
그런데 이게 왜 충격이었냐면, 분석철학은 원래 경험주의를 더 정밀하게 다듬으려고 출발한 흐름이거든요.
그 흐름 안에서 자란 셀라스가 그 토대 자체를 흔든 겁니다.
자기가 서 있던 땅의 지층을 직접 캐낸 셈이에요.
셀라스는 학술 논문에 가상의 신화를 끼워 넣었다
1956년 강의록 한복판에는, 철학자가 직접 쓴 한 편의 가상 부족 신화가 들어 있었어요.
〈경험주의와 심리철학〉의 마지막 부분에서, 셀라스는 갑자기 학술적 논증을 멈춥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시작해요.
"먼 옛날, 라일적 조상(Rylean ancestors)이라는 부족이 있었습니다."
라일은 당시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 길버트 라일(Gilbert Ryle)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이 부족은 오직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 묘사하는 언어를 썼습니다.
"그가 울었다"는 말할 수 있어도, "그가 슬픔을 느꼈다"는 말할 수 없는 언어예요.
그러던 어느 날 '천재 존스(Genius Jones)'가 등장합니다.
그는 '내면의 사고'라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가설로 도입해요.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설명하는 도구였지만, 나중에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묘사하는 데도 쓰기 시작합니다.
학술서를 읽다가 '옛날 옛적에…' 하고 시작하는 챕터를 만난 격이에요.
그런데 그 동화가 책 전체의 핵심 주장을 떠받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이라는 개념이, 사실은 어느 시점에 발명된 이론적 장치였다"는 것이죠.
셀라스의 책은 어려웠지만 제자들이 그를 살려냈다
셀라스의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의 후계자들이 같은 해 펴낸 두 권의 책은 분석철학의 표준이 됐습니다.
셀라스는 1963년부터 죽을 때까지 피츠버그 대학에서 가르쳤어요.
그곳은 훗날 '피츠버그 학파'라 불리게 됩니다.
문제는 그의 글이 악명 높을 정도로 어려웠다는 거예요.
그런데 1994년, 두 편의 책이 거의 동시에 나옵니다.
옥스퍼드 출신의 존 매도웰(John McDowell)이 쓴 〈마음과 세계(Mind and World)〉, 그리고 프린스턴 박사 출신의 로버트 브랜덤(Robert Brandom)이 쓴 〈명시적으로 만들기(Making It Explicit)〉예요.
두 책 모두 셀라스의 '이유의 공간' 개념을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두 권 모두 분석철학계의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원곡은 묻혔는데 후배 가수들의 리메이크가 차트를 휩쓴 상황이에요.
셀라스가 1956년에 흔들어 놓은 그 질문이, 1994년에 가서야 철학계 전체에 퍼지기 시작한 겁니다.
결국 그의 이름보다 그의 질문이 살아남았어요.
우리가 '본다'고 말할 때, 그 봄은 정말 순수한 봄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