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노가 플라톤 흉상에 촛불을 켠 이유
피치노는 플라톤 흉상에 매일 촛불을 켠 사제였다
피치노는 매일 아침 한 사람의 흉상 앞에서 촛불을 켰어요.
1800년 전에 죽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었어요.
서재 한켠에 대리석 흉상을 두고, 그 앞에 촛불을 켜고, 매년 11월 7일이면 플라톤 탄생을 기념하는 향연까지 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회사 책상에 창업자 동상을 올려두고 매일 아침 향을 피우는 직원 같은 풍경이에요.
그런데 반전이 있어요.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1473년 정식 서품을 받은 가톨릭 신부였어요.
800년도 더 전에 죽은 이교도 철학자에게 성인처럼 예를 갖춘 셈이에요.
15세기 피렌체에서 그리스 고전을 읽는 것 자체가 특권이었어요.
당시 유럽은 플라톤을 라틴어로 읽을 수조차 없었거든요.
플라톤의 글은 거의 전부가 그리스어로만 남아 있었고, 서방 세계에는 극히 일부만 번역돼 있었어요.
피치노는 그 공백을 채우겠다고 결심한 사람이에요.
그 결심의 무게를 그는 매일 아침 촛불 하나로 표현했어요.
메디치는 죽기 전 플라톤 번역을 멈추라고 했다
플라톤 번역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피치노에게 코시모가 말했어요.
"플라톤은 잠깐 멈춰라."
1462년, 코시모 데 메디치는 피렌체 최고의 권력자이자 최대 은행가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재벌 총수와 정치 실세를 합친 존재인데, 그 코시모가 피치노에게 카레지 별장과 그리스어 플라톤 전집 사본을 건네며 라틴어 번역을 맡겼어요.
그런데 이듬해인 1463년, 코시모의 마음이 바뀌었어요.
갑자기 「코르푸스 헤르메티쿰」을 먼저 번역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어요.
「코르푸스 헤르메티쿰」은 고대 이집트에서 전해진 신비주의 문서 묶음이에요.
박사논문을 쓰던 학생에게 지도교수가 "그건 잠깐 멈추고 이걸 먼저 해"라고 말한 상황이에요.
피치노는 군말 없이 방향을 틀었어요.
그리고 1464년, 코시모는 숨을 거뒀어요.
임종 자리에서 피치노가 플라톤의 「필레보스」를 읽어주는 걸 들으면서요.
「필레보스」는 '쾌락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대화편이에요.
가장 큰 후원자가 정작 플라톤 완역본을 손에 쥐지 못하고 눈을 감았어요.
피치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번역을 계속했어요.
사제 피치노의 의학서가 교황청 조사를 받았다
피치노가 1489년에 펴낸 의학서의 마지막 권은 사실상 마법 매뉴얼이었어요.
제목은 「인생론 세 권」이에요.
앞 두 권은 건강 관리와 장수에 관한 내용이라 그럭저럭 무난했어요.
하지만 3권에는 천체의 기운을 끌어오는 부적 만드는 법과 행성별 점성술 치료법이 가득 들어 있었어요.
동네 의사가 진료실에서 처방전 대신 부적을 써주는 상황이에요.
그것도 플라톤을 라틴어로 옮긴 정통 학자 사제가요.
당연히 교황청이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1490년, 교황 인노첸시오 8세 주변에서 이단 조사가 시작됐어요.
피치노는 직접 자기 변명서를 써야 했어요.
그는 이렇게 주장했어요.
"나는 마법을 쓴 게 아니라, 자연의 힘을 의학에 적용한 것뿐이에요."
친구 추기경들의 변호 덕분에 가까스로 처벌을 면했어요.
하지만 가톨릭 신부가 행성 부적 만드는 법을 책으로 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피치노는 플라톤 철학과 기독교 신앙과 점성술을 동시에 붙들면서, 그 셋을 하나로 연결하려 했어요.
플라토닉 러브라는 단어는 피치노가 만들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우리 사이는 플라토닉이야"라고 말한 적 있다면, 그 단어를 만든 건 한 사제였어요.
1469년, 피치노는 플라톤의 「향연」에 붙이는 주석서 「사랑에 관하여」를 썼어요.
「향연」은 소크라테스와 친구들이 술을 마시며 사랑이 뭔지 토론하는 대화편이에요.
그 책에서 피치노는 'amor Platonicus'라는 라틴어 표현을 처음 썼어요.
몸이 아닌 정신으로 이어진 사랑, 욕망이 아닌 이상을 향한 끌림이에요.
피치노의 생각은 간단했어요.
"진짜 사랑은 아름다운 육체를 향하는 게 아니라, 그 아름다움 뒤에 있는 신적인 것을 향해야 해."
그리고 1484년, 피치노는 서구 역사상 최초로 플라톤 전집을 라틴어로 완역해 냈어요.
코시모에게 번역을 맡은 지 22년 만이었어요.
이 두 작업이 합쳐져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이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어요.
미켈란젤로가 이 개념으로 조각을 구상했고, 보티첼리가 그림으로 옮겼어요.
이후 낭만주의 시인들까지 이 단어를 빌렸어요.
오늘날 메시지 창에서 가볍게 쓰는 그 표현의 출처가, 매일 촛불을 켜고 이단 조사를 받으면서도 22년째 번역을 이어간 피렌체의 사제 한 명이에요.
그가 없었다면 플라토닉이라는 단어도, 서양 세계의 플라톤도, 지금과는 달랐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