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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지금으로부터 2300년쯤 전, 중국 전국시대에 어느 임금을 찾아가 깜짝 놀랄 말을 한 사람이 있었어요. "정말 훌륭한 임금이라면 백성과 나란히 밭에 나가 농사를 짓고, 자기 손으로 밥을 지어 먹어야 합니다." 세금으로 백성이 길러 준 곡식을 받아먹는 임금은 아직 부족하다는 거였죠. 임금이라고 가만히 앉아 밥상을 받는 게 당연하던 시절에, 손에 흙을 묻히라고 대놓고 말한 거예요. 이 말을 한 사람이 바로 허행이에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그가 속한 무리를 '농가 학파'라고 불러요.

당시 중국에는 생각을 파는 학자들이 떼로 몰려다녔어요. 공자를 따르는 유가, 노자 쪽의 도가처럼요. 이렇게 갈래갈래 나뉜 학자들을 흔히 제자백가라고 묶어 부르는데, 그 가운데 '농가'가 있었어요. 농가는 말 그대로 '농사짓는 사람들의 학파'예요. 세상을 다스리는 답을 책상이 아니라 밭에서 찾자는 쪽이었죠. 허행은 이 농가를 대표하는 인물이에요. 원래 남쪽 초나라 사람이었는데, 제자 수십 명을 데리고 등나라라는 작은 나라로 옮겨 와 살았다고 해요. 등나라 임금이 백성을 아끼는 정치를 편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거였죠.

허행 무리의 살림살이를 보면 그들이 무엇을 믿었는지 한눈에 보여요. 수십 명이 다 같이 거친 베옷을 입고, 짚신을 삼고 자리를 짜서 그걸 팔아 먹고살았어요. 말로만 '일하며 살자'가 아니라, 정말 손발을 움직여 자기 먹을 것을 자기가 마련한 거죠. 요즘으로 치면 비싼 옷도 마다하고 다 같이 농사와 손일로만 먹고사는 공동체 같은 모습이에요. 이렇게 직접 몸으로 보여 주니, 그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도 생겼고요.

허행의 생각은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어요. "다 같이 밭을 갈자." 임금이든 신하든 예외 없이요. 왜 그렇게까지 말했을까요? 생각해 보면 이래요. 누군가 일하지 않고 남이 기른 밥을 먹는다면, 그 밥은 결국 다른 사람의 땀이잖아요. 임금이 곳간을 가득 채워 두고 그걸 꺼내 먹는다는 건, 백성을 고생시켜 자기 배를 불리는 셈이라고 본 거예요. 그러니 임금도 손에 흙을 묻혀야 공평하다는 거죠. 요즘 말로 하면 '특권 없는 세상' 같은 꿈이었어요.

그런데 이 무리에 솔깃해서 아예 스승을 바꾼 사람이 있었어요. 진상이라는 사람인데, 원래는 유가를 배우던 학생이었어요. 멀쩡히 공부하던 사람이 허행을 만나고는 "이게 진짜다" 하며 옛 배움을 버리고 농가로 갈아탄 거예요. 그러고는 들떠서 맹자를 찾아가 허행의 주장을 자랑했어요. 임금도 밭을 갈아야 한다고요. 마치 새로 빠진 모임 이야기를 친구한테 신나게 늘어놓는 사람 같았죠. 바로 이 자리에서 동양철학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논쟁이 시작돼요.

이 주장을 듣고 가만있지 않은 사람이 맹자였어요. 기원전 372년부터 289년까지 살았던, 유가를 대표하는 학자죠. 맹자는 화부터 내지 않고 질문을 던졌어요. "허행 선생은 모자를 쓰나요?" "씁니다." "그 모자를 직접 짜나요?" "아니요, 곡식을 주고 바꿉니다." "밥 짓는 솥과 밭 가는 쇠연장은요? 직접 만드나요?" "그것도 곡식과 바꿉니다." 별것 아닌 듯한 물음이지만, 사실 여기에 함정이 숨어 있었어요.

맹자의 질문이 노린 건 이거였어요. 허행도 솥과 모자는 직접 만들지 않아요. 자기가 기른 곡식을 주고 대장장이나 모자 만드는 이와 바꿔 쓰죠. 그걸 두고 누구도 "농사지으면서 솥까지 직접 만들라"고 따지지 않잖아요. 사람마다 잘하는 일이 따로 있고, 그래서 서로 바꿔 쓰는 거니까요. 이걸 우리는 '분업'이라고 불러요. 맹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어요. "그렇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왜 분업이 안 되나요? 머리 쓰는 일이 있고 몸 쓰는 일이 있는 법인데요." 농사가 한 가지 일이듯, 다스리는 것도 누군가 맡아야 할 또 하나의 일이라는 거였죠. 모두가 밭으로 나가면, 나라 살림을 챙길 사람은 누가 되느냐는 반문이기도 했고요.

허행에게는 주장이 하나 더 있었어요. 시장에서 사람들이 값으로 속고 속이지 못하게, 같은 양이면 무조건 같은 값에 팔자는 거였어요. 신발이든 천이든 길이가 같으면 값도 같게요. 얼핏 들으면 참 공평해 보이죠. 하지만 맹자는 고개를 저었어요. 튼튼하게 잘 삼은 신발과 대충 엮은 신발은 들인 품과 솜씨가 다른데, 둘을 같은 값에 팔라고 하면 누가 정성 들여 좋은 물건을 만들겠냐는 거였죠. 좋은 물건과 허술한 물건이 똑같은 대접을 받으면, 공평해지기는커녕 세상이 도리어 엉망이 된다고 본 거예요.

허행의 꿈은 결국 큰 학파로 이어지지는 못했어요. 그의 글도 거의 남지 않아서, 지금 우리가 아는 허행은 대부분 맹자가 그를 반박하며 인용한 기록 속 모습이에요. 논쟁에서 진 쪽으로 기억되는 셈이죠. 그래도 그가 던진 물음은 오늘도 살아 있어요. 일하지 않고 남의 땀으로 먹고사는 게 정말 옳은가, 힘을 가진 사람도 똑같이 땀을 흘려야 하지 않나. 2300년 전 한 농부 학자가 임금 앞에서 던진 이 물음은, 지금 들어도 가슴이 뜨끔한 데가 있어요.

허행은 전국시대 농가를 대표한 사상가로, 임금조차 백성과 나란히 밭을 갈아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에요. 그 바탕에는 누구도 남의 땀에 공짜로 기대선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죠. 맹자는 솥과 모자도 바꿔 쓰면서 왜 다스리는 일만 직접 하려 드느냐며, 세상에는 머리 쓰는 일과 몸 쓰는 일이 나뉘어 있다는 분업으로 맞섰어요. 허행은 이 논쟁에서 밀렸지만, '가진 사람도 똑같이 일해야 한다'는 그의 물음만큼은 이름과 함께 오래 살아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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