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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친구가 다가와 이렇게 물어요. "너 머리카락 딱 한 올만 뽑으면 온 세상 사람이 다 행복해진대. 뽑을래?" 보통은 망설임 없이 "그 정도야 백 번이라도 뽑지" 하잖아요. 한 올쯤은 아프지도 않고, 그걸로 세상이 좋아진다면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400년쯤 전 중국에, 이 질문에 "안 뽑겠다"고 답한 사람이 있었어요. 이름은 양주예요. 온 천하를 다 살린다는데도 머리카락 한 올을 안 내놓겠다니, 듣자마자 엄청난 구두쇠에 지독한 이기주의자처럼 느껴지죠. 실제로 양주는 그 뒤로 2000년 넘게 그렇게 욕을 먹었어요. 그런데 그 말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영 딴판이 됩니다.

양주는 전국시대라는 때를 살았어요. 여러 나라가 서로의 땅을 뺏겠다고 200년 넘게 칼을 맞대던 시절이죠. 그때 왕들은 "천하를 위해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문제는 그 멋진 말 뒤에서 벌어진 일이에요. 멀쩡한 농부를 끌어다 전쟁터에 세우고, 곳간이 빌 만큼 세금을 쥐어짜고, 큰 뜻을 이룬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백성의 목숨을 깃털처럼 가볍게 썼습니다.
양주는 그 "천하를 위해"라는 구호가 도무지 미덥지 않았어요. 거창한 명분이 사람 하나하나의 목숨을 야금야금 잡아먹는 걸 두 눈으로 봤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좀 삐딱해 보이는,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 천하라는 게 도대체 누구의 목숨으로 굴러가는 거냐"고요.

양주의 생각을 한마디로 '위아'라고 불러요. '나를 위한다'는 뜻이에요. 글자만 보면 "나만 챙기겠다"는 욕심처럼 들리죠. 그런데 양주가 말한 '나를 위함'은 남보다 더 많이 가지겠다는 게 아니라, 내 몸과 목숨을 함부로 굴리지 않겠다는 쪽이었어요.
쉽게 비유해 볼게요. 회사가 "회사를 위해 주말도 반납하고 몸을 갈아 넣어라" 할 때, "제 건강은 제가 지킬게요, 그게 결국 오래 같이 일하는 길이에요" 하고 선을 긋는 사람이 있잖아요. 양주가 딱 그런 태도였어요. 그에게 목숨은 천하를 통째로 준대도 안 바꾸는, 세상에서 제일 귀한 거였거든요. 이걸 '귀생', 삶을 귀하게 여긴다고 해요. 값비싼 보석이나 높은 자리 같은 바깥 것은 가볍게 보고, 제 몸과 삶은 무겁게 본 거죠.

여기서 많이들 놓치는 게 있어요. 양주의 그 유명한 말에는 짝이 되는 뒷부분이 붙어 있어요. 옛글에 이렇게 전해져요.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도 하지 않지만, 천하를 통째로 받아 내 한 몸을 떠받드는 일도 하지 않는다."
앞부분만 똑 떼어 들으면 지독한 구두쇠인데, 뒷부분까지 들으면 완전히 달라지죠. 핵심은 이거예요. 아무도 남을 위해 제 몸을 희생하라고 떠밀리지 않고, 동시에 아무도 남을 쥐어짜 제 배를 불리지 않는다. 그러면 서로 건드릴 일이 없으니 세상이 오히려 조용하고 평화로워진다는 거예요.
가만 생각해 보면, 세상이 시끄러운 건 보통 두 부류 때문이잖아요. "큰 뜻을 위해 너희가 좀 희생해라" 하는 사람과, "이 세상 다 내 거다" 하는 사람이요. 양주는 그 두 욕심을 한꺼번에 끊어 보자고 한 거예요. 내가 남을 위해 뽑히지도 않고, 남을 뽑지도 않기.
그래서 양주를 다시 보면, 머리카락 한 올이 아까워 벌벌 떠는 구두쇠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한 올쯤이야 뭐" 하면서 사람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에 정면으로 맞선 사람이었죠.
"한 올이면 어때" 하고 한번 시작하면, 다음엔 "팔 하나쯤이야", 그다음엔 "목숨 하나쯤이야"로 번지기 쉬워요. 큰 명분 앞에서 작은 희생을 자꾸 당연하게 만들다 보면, 어느새 사람 목숨이 제일 만만해지거든요. 양주는 바로 그 첫 단추, 맨 처음의 '한 올'부터 단단히 막은 거예요. 작은 목숨 하나도 천하라는 큰 구호에 함부로 내주지 말라는 거죠.
물론 모두가 그를 좋아한 건 아니에요. 비슷한 시대를 산 맹자는 "양주처럼 다들 자기만 아끼면 임금도 나라도 누가 돌보겠느냐"며 그를 크게 나무랐어요. 두 사람의 이 다툼은 그 시대를 뜨겁게 달군 큰 논쟁거리였습니다.

양주의 "터럭 하나도 안 뽑는다"는 말은 구두쇠의 투정이 아니라, 내 목숨도 남의 목숨도 거창한 명분에 함부로 쓰지 말자는 다짐이었어요. 나를 지키는 일과 남을 건드리지 않는 일이 사실 한 쌍이었던 거죠. 누군가 "큰 뜻을 위해 이 정도 희생쯤은" 하고 말할 때, 그 작은 희생이 진짜 누구의 무엇인지 한 번 더 멈춰 묻게 만드는 것, 그게 2400년을 건너 우리에게 닿은 양주의 머리카락 한 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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