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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심부름 간 아이를 떠올려 볼게요. 엄마가 동전 몇 닢을 쥐여 주며 "쌀 한 되 사 오렴" 했는데, 아이는 쌀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가게 주인이 값을 슬쩍 부풀려도 아이는 그대로 믿고 돈을 내죠. 어른이라고 크게 다를까요. 같은 천 한 필인데 이 가게는 비싸고 저 가게는 싸면, 우리는 늘 "혹시 속은 거 아냐?" 하고 마음을 졸입니다.
그런데 약 2300년 전 중국에, 이 걱정을 아예 뿌리째 없애 버리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었어요. 허행이라는 사람입니다. 그의 생각은 놀랄 만큼 단순했어요. "값을 처음부터 똑같이 정해 두면, 어린아이가 장에 가도 속을 일이 없잖아."

허행이 누구인지부터 그려 볼게요. 그는 '농가'라 불린 무리에 속했습니다. 농가는 세상일 가운데 농사를 가장 귀하게 여긴 사람들이었어요. 곡식을 길러 내는 일이야말로 모두를 먹여 살리는 뿌리라고 본 거죠. 그들은 아주 먼 옛날 농사를 처음 가르쳤다는 신농이라는 임금을 마음의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허행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어요. "임금이라고 가만히 앉아 밥만 받아먹어선 안 된다. 어진 임금이라면 백성과 똑같이 밭에 나가 농사를 짓고, 자기 손으로 밥을 지어 먹어야 한다." 왕이 일은 안 하고 세금만 걷어 가는 건 백성에게 얹혀사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는 말만 그렇게 한 게 아니었어요. 거친 옷을 입고, 짚신을 삼고 자리를 짜서 양식과 바꿔 먹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초나라에서 등나라로 옮겨 가 수십 명의 제자와 함께 그렇게 살았다고 하니, 자기 믿음을 몸으로 밀고 나간 사람이었던 거죠.

이제 그의 가격 이야기로 가 볼게요. 허행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방식대로 하면 장터의 값이 둘로 갈리지 않고, 나라 안에서 속임수가 사라진다. 키가 다섯 자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를 장에 보내도 아무도 그 아이를 속이지 못한다."
방법은 이래요. 천은 길이가 같으면 값도 같다. 실은 무게가 같으면 값도 같다. 곡식은 양이 같으면 값도 같다. 신발은 크기가 같으면 값도 같다. 한마디로 '잰 양이 같으면 값도 똑같이' 정하자는 겁니다.
오늘날로 옮겨 보면 이런 거예요. 같은 350밀리리터 음료수는 어느 가게든 값이 똑같고, 같은 크기 운동화는 어느 가게든 값이 똑같은 세상. 그러면 값을 외우고 다닐 필요도, 바가지 쓸까 봐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겠죠. 가만히 들으면 꽤 그럴듯합니다.

그런데 같은 시대를 살던 맹자가 이 생각을 듣고 고개를 저었어요. 맹자의 반박은 짧고 날카로웠습니다. "물건이 저마다 다른 건, 물건의 본래 모습이다."
무슨 뜻이냐면요. 같은 신발이라도 정성껏 튼튼하게 지은 신발이 있고, 대충 얽어 놓은 신발이 있죠. 어떤 물건은 값이 두 배, 다섯 배, 심하면 천 배 만 배까지도 차이가 납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런데 크기만 같다고 값을 똑같이 매기면 어떻게 될까요?
맹자는 이렇게 물었어요. "정성을 잔뜩 들인 신발과 대충 만든 신발 값이 같다면, 누가 애써 좋은 신발을 만들겠는가?" 값이 어차피 똑같다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대충 만든 물건만 내놓을 거라는 거죠. 속임수를 없애려던 규칙이, 오히려 온 나라 사람을 대충 만드는 쪽으로 끌고 간다는 겁니다.

맹자에겐 또 다른 무기가 있었어요. 그는 허행 쪽 사람에게 이렇게 되물었거든요. "당신들이 밥 짓는 솥과 밭 가는 농기구는, 허행이 직접 만든 것이오?" 아니었죠. 허행도 자기가 기른 곡식을 주고 그것들과 바꿔 썼습니다.
맹자가 짚은 건 바로 이 지점이에요. 누구는 농사를 짓고, 누구는 그릇을 굽고, 누구는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은 원래 일을 나눠 맡으며 굴러간다는 거죠. 농부가 솥까지 직접 만들고 대장장이가 농사까지 직접 지으려 들면,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임금더러 직접 농사지으라는 허행의 말도, 결국 이 '일을 나눈다'는 이치를 놓친 셈이라는 게 맹자의 생각이었습니다.

허행의 답은 맹자에게 막혔지만, 그가 던진 질문은 지금도 살아 있어요. "힘없는 사람이 시장에서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그 답을 허행과 조금 다르게 찾았습니다. 값을 강제로 똑같이 묶는 대신, 물건마다 가격표를 붙이고, 무게와 양을 속이지 못하도록 저울을 검사하고, 거짓 광고를 단속하죠. 어린아이가 편의점에 가도 바코드에 찍힌 값 그대로 내고 오잖아요. 허행이 바라던 '아이도 속지 않는 시장'은, 값을 하나로 묶어서가 아니라 정보를 투명하게 열어 두는 쪽으로 어느 정도 이뤄진 셈이에요.

허행은 임금도 직접 농사지어야 한다고 믿었고, 시장의 값도 양이 같으면 똑같이 매기자고 했어요. 약한 사람이 속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생각이었죠. 맹자는 물건마다 품질이 다른데 값을 똑같이 묶으면 아무도 좋은 물건을 안 만든다고 반박했고, 세상은 일을 나눠 맡으며 굴러간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의 다툼에서 기억할 건 이거예요. 약자를 지키려는 따뜻한 마음과, 그 방법이 정말 통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는 것. 허행의 다정한 질문과 맹자의 차가운 반박은, 2300년이 지난 지금도 값을 어떻게 정할지 고민하는 우리 곁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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