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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유럽의 모든 어머니가 그의 책을 읽고 아이를 안아주기 시작했을 때, 정작 그의 아이 다섯은 이름도 없이 파리의 고아 수용소에 있었다.
육아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정작 자기 아이 학교 행사에 한 번도 간 적 없는 부모를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장 자크 루소가 딱 그랬어요. 세탁부 테레즈 르바쇠르와의 사이에서 다섯 아이가 태어났고, 루소는 그 아이들을 차례로 앙팡 트루베에 보냈어요.
앙팡 트루베는 파리의 고아 수용소였는데, 당시 그곳에 맡겨진 아이의 생존율은 극히 낮았어요. 오늘날로 치면 시설이 아니라 거의 방치에 가까운 곳이었죠. 그런데 루소는 아이들의 이름조차 기록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직후, 1762년에 《에밀》을 출간해요. "아이를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키워야 한다"는 교육 이론서였고, 유럽 전역의 육아법을 바꾼 책이에요. 귀족 어머니들이 직접 모유를 먹이기 시작했고, 딱딱한 포대기 대신 아이가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옷을 바꿨어요. 루소의 말 한 마디가 대륙의 육아 문화를 뒤집은 거예요.
"아이를 사랑하라"고 쓴 사람이 자기 아이의 이름은 종이에 한 번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아요.

문명이 인간을 망친다는 글이 파리에서 가장 화려한 살롱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어요.
1750년, 루소는 디종 아카데미의 현상 공모에 글을 하나 냈어요. 주제는 "학문과 예술의 발전이 도덕을 개선했는가"였는데, 루소는 아무도 예상 못 한 방향으로 답을 썼어요. "아니오. 오히려 타락시켰다." 이게 《학문예술론》의 핵심이에요. 결국 1등을 했어요.
그런데 이 글이 폭발적으로 유행한 곳이 어디냐면, 바로 파리 귀족들의 살롱이었어요. 살롱은 귀족과 지식인이 모여 예술과 철학을 논하는 모임인데, 당시 문명의 가장 화려한 정점이에요.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맞아, 문명이 우리를 망치고 있어"를 읽으며 열광했다는 거죠.
SNS에서 '스마트폰을 끊어라'는 영상이 천만 뷰를 찍는 것과 정확히 같은 구조예요. 메시지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그 메시지를 부정하고 있는데,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루소는 하룻밤 사이에 유명인사가 되었고, 그 역설은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어요.

디드로는 루소가 감옥에 있을 때 찾아온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10년 후, 루소는 그를 적이라 불렀어요.
루소 주변에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있었어요. 볼테르, 디드로, 달랑베르, 이들은 모두 계몽주의의 핵심 인물들이에요. 계몽주의란 신이 아닌 이성과 지식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은 18세기의 지적 운동이에요. 디드로는 그 상징인 《백과전서》의 편집자였고, 루소가 무명 시절 억울하게 갇혔을 때 면회를 온 유일한 친구였어요.
그런데 루소는 이들과 차례로 틀어졌어요.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어요. 사소한 오해가 쌓이고, 루소가 "다들 나를 감시한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공개 서한으로 볼테르에게 맞서는 일까지 벌어졌어요. 볼테르는 보복으로 루소의 아이 유기 사실을 유럽 전역에 폭로했어요.
함께 창업한 공동 창업자들이 성공 후 법정에서 만나는 실리콘밸리 이야기처럼, 계몽의 시대를 함께 열었던 동료들이 결국 서로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공격하는 적이 되었어요. 루소는 말년을 "모두가 나를 적으로 돌렸다"는 확신 속에 보냈는데, 그 확신이 완전히 틀리지도 않았다는 게 더 비극이에요.

루소를 추방한 프랑스는 그가 죽은 지 16년 만에 관을 들어 국가 최고의 묘지에 안치했어요.
루소는 1778년 세상을 떠났어요. 살아 있는 동안 그는 《에밀》과 《사회계약론》이 금서로 지정되어 파리에서 쫓겨났고, 스위스에서도 쫓겨났고, 여러 나라를 떠돌며 망명자처럼 살았어요. 그런데 그가 죽고 11년 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어요.
혁명가들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혁명의 교과서로 삼았어요. 특히 "일반의지"라는 개념이 핵심이었는데, 이건 "국민 전체의 공통된 뜻이 권력의 유일한 근거"라는 생각이에요. 왕의 권위가 아니라 국민의 뜻으로 나라를 세운다는 거죠. 1794년, 혁명 정부는 루소의 유해를 판테온으로 이장했어요. 판테온은 프랑스가 최고 위인으로 인정한 사람들만 안치되는 국가 묘지예요.
하지만 같은 책이, 같은 "일반의지"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를 정당화하는 데도 쓰였어요. 로베스피에르는 반혁명 세력을 처형하면서 "이것이 일반의지의 실현"이라고 말했어요. 자유를 위해 쓴 사상이 공포의 근거가 되었고, 살아 있을 때 쫓아낸 나라가 죽은 후 가장 높은 자리에 모셨어요.
생전에 해고당한 회사가 사후에 본사 로비에 초상화를 거는 상황이라고 하면 너무 가볍게 들릴까요. 루소는 아이를 버리고 육아론을 썼고, 문명을 비판하며 살롱의 스타가 되었고, 자유를 말했는데 그 말로 공포정치가 정당화되었어요.
그가 정말로 자기 사상을 믿었는지, 아니면 믿고 싶었지만 살아내지 못했는지, 그건 지금도 아무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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