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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의 연구실 전기요금은 펜타곤이 냈다.
그리고 그는 그 연구실에서 펜타곤을 향해 가장 날카로운 문장들을 써 내려갔다.
회사 식당에서 회사 밥을 먹으면서 회사 경영진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직원을 떠올려 보자.
그런데 회사가 그를 자르지 않는다.
이게 노엄 촘스키가 1955년부터 MIT에서 살아온 방식이었다.
MIT 전자공학연구소, 즉 RLE는 미 국방부의 자금으로 운영되었다.
냉전 시대 군사 연구의 심장부였다.
그런데 촘스키는 바로 그 건물 안에서 베트남전 반대 운동의 지적 중심이 되었고, 1967년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지식인의 책임」이라는 글을 발표해 미국 지식인 사회에 폭탄을 던졌다.
"지식인의 책임"은 추상적인 철학 에세이가 아니었다.
전쟁을 정당화하는 지식인들을 이름 대고 비판한 고발문이었다.
MIT는 그를 해고하지 않았다. 그는 떠나지도 않았다.

세 살짜리 아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문장을 만들어낸다.
이 사소한 사실 하나가 20세기 심리학에서 가장 강력했던 이론을 무너뜨렸다.
1959년, 당시 30세의 무명 학자 촘스키가 행동주의 심리학의 거장 B.F. 스키너의 책 《언어 행동》에 서평을 썼다.
행동주의란 쉽게 말해 "반복해서 보상받으면 학습된다"는 이론이다.
스키너는 언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아이가 단어를 듣고, 따라하고, 칭찬받으면서 말을 배운다는 것이다.
촘스키의 반박은 놀랍도록 단순했다.
"세 살짜리가 '엄마, 공룡이 피자 먹으면 이빨 아파?'라고 말할 때, 그 문장을 누가 가르쳤는가?"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문장인데 아이가 만들어냈다.
촘스키는 이걸 이렇게 정리했다.
언어는 학습이 아니라 본능이다.
인간의 뇌에는 태어날 때부터 문법의 틀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실험 데이터가 권위자를 무너뜨린 게 아니었다.
누구나 아는 관찰 하나가, 수십 년간 쌓인 이론의 토대를 흔들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살아 있는 학자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기 나라 저녁뉴스에는 나올 수 없었다.
인문학 인용 통계를 집계하는 Arts & Humanities Citation Index에 따르면, 촘스키는 마르크스, 셰익스피어,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인용된 인물이었다.
BBC와 알자지라 같은 해외 방송에서는 그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미국 주류 TV 뉴스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못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당신에게 절대 추천하지 않는 영상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금지된 게 아니다. 그냥 '노출되지 않는 것'이다.
촘스키가 말한 검열은 바로 이것이었다.
1988년에 펴낸 《동의의 조작》은 이 현상을 분석한 책이다.
미디어가 어떻게 특정 목소리를 구조적으로 배제하는지, 정부와 광고주와 언론사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맞물려 특정 시각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지를 파헤쳤다.
그리고 그 검열의 가장 생생한 증거는 다름 아닌 촘스키 자신이었다.
미디어의 구조적 침묵을 분석한 학자가, 바로 그 침묵 속에 놓여 있었다.

모든 인간의 뇌에 같은 문법이 들어 있다면, 누군가가 누군가 위에 군림할 이유도 사라진다.
언어학자가 무정부주의자가 된 것은 논리적 귀결이었다.
촘스키의 보편문법 이론은 이렇다.
인간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든, 어떤 언어를 모국어로 쓰든, 뇌 안에 동일한 언어 구조를 가지고 태어난다.
아이가 문법책 없이도 말을 배우는 것은 그 구조가 이미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순수한 언어학 이론이었다.
하지만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정치적 결론에 닿는다.
모든 인간이 동일한 인지 구조를 공유한다면,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을 지배할 생물학적 근거는 없다.
수학 공식을 풀다가 세상의 불공정을 깨닫게 된다면 어떨까.
촘스키에게 언어학은 바로 그런 수학이었다.
가장 추상적인 학문이 가장 현실적인 결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2024년, 95세의 촘스키는 뇌졸중을 겪었다.
그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회복하며 지적 활동을 이어갔다.
펜타곤 돈으로 운영되는 연구실에서 펜타곤을 비판하고, 권위자의 이론을 서평 한 편으로 뒤집고, 미디어 검열을 분석하면서 그 검열의 증거가 되었던 사람이 마지막까지 그렇게 살았다.
그가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있었던 자리, 그 모순의 한가운데를 선택한 것만은 분명하다.
당신이라면 월급 주는 곳을 향해 펜을 들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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