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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626년 3월, 영국에서 가장 똑똑했던 노인이 눈밭에 쪼그려 앉아 죽은 닭의 배에 눈을 쑤셔넣고 있었다.
마차를 타고 런던 북쪽 하이게이트 언덕을 지나던 프랜시스 베이컨은 갑자기 마부에게 멈추라고 했다.
눈 덮인 길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냉기가 고기의 부패를 늦출 수 있을까?"
그는 근처 농가에서 닭 한 마리를 사서 직접 눈으로 배 속을 채웠다.
요리 레시피를 직접 만들어놓고 처음 시식하다 식중독에 걸린 셰프처럼, 그는 자기가 세운 원칙의 가장 충실한 희생자가 되었다.
그 실험 직후 심한 기관지염이 찾아왔고, 수 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실험으로 확인하라"는 규칙을 만든 사람이, 정말로 실험하다 죽었다.

베이컨은 12살에 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렸다고 확신했지만, 그 확신을 세상에 펼치려면 왕 앞에서 30년을 기다려야 했다.
열두 살에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한 그는 당시 교육이 전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위에서 돌아간다는 걸 금세 알아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2000년 전 그리스 철학자로, 당시 유럽 학문의 절대적 기준이었다.
베이컨의 눈에 그 학문은 "열매 없는 학문"이었다.
토론은 정교하지만, 실제 세계에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말의 성이었다.
하지만 학문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베이컨은 엘리자베스 1세, 이어서 제임스 1세에게 끈질기게 자신을 팔았다.
30년 넘는 궁정 생활 끝에 마침내 대법관에 올랐다.
대법관은 오늘날로 치면 대법원장과 국무총리를 합친 자리, 영국에서 왕 다음으로 높은 법관직이었다.
기존 권위에 복종하지 말고 자연을 직접 관찰하라고 쓴 사람이, 자기 커리어를 위해서는 왕권이라는 권위에 철저히 복종했다.
회사에서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걸 하려면 먼저 임원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상황, 딱 그 꼴이었다.
순수한 목표와 정치적 타협 사이에서 베이컨은 타협을 택했고, 그 덕분에 권력을 얻었다.

"진리에 대하여" 베이컨이 평생의 에세이집 첫 페이지에 올린 제목이다.
그리고 그는 뇌물 23건을 한 건도 빠짐없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1621년, 대법관 재임 중 의회 탄핵이 터졌다.
소송 당사자들에게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였고, 건수는 23건이었다.
베이컨은 단 한 건도 부인하지 않았다.
"나는 부패한 재판관을 목격했지만, 뇌물 때문에 판결을 바꾼 적은 없다"고 그는 말했다.
받은 건 사실이지만 판결은 공정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의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런던탑에 투옥되고 공직에서 영구 추방되었다.
런던탑은 오늘날 관광지로 유명한 그 탑으로, 당시에는 왕실 감옥이었다.
실제 수감은 며칠에 그쳤지만, 명예는 완전히 끝났다.
SNS에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고 포스팅한 사람이 다음 날 사기 혐의로 뉴스에 나온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변명 대신 전면 시인을 택한 그 순간이 오히려 그의 철학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는 점이다.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라. 그것이 그가 평생 주장한 것이었다.

베이컨의 진짜 경력은 모든 경력이 끝난 뒤에 시작되었다.
공직에서 쫓겨난 후 그는 남은 5년을 오직 저술에 쏟았다.
《노붐 오르가눔》을 확장했다.
제목은 '새로운 도구'라는 뜻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체계를 정면으로 대체하려는 책이었다.
12살짜리 케임브리지 신입생이 품었던 그 분노가, 65세 추방자의 손에서 완성된 것이다.
그는 또 《뉴 아틀란티스》도 썼다.
과학자들이 운영하는 이상 국가를 그린 미완성 소설로, 국가가 지식을 체계적으로 탐구하고 실험하는 기관을 운영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로선 완전히 공상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40여 년 뒤, 현실이 되었다.
1660년 설립된 왕립학회는 세계 최초의 과학 학술단체로, 설립자들은 베이컨의 저작을 직접 영감의 원천으로 꼽았다.
오늘날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제도, 즉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검증하는 그 방식 자체가 베이컨이 설계한 틀 위에 서 있다.
잘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 뒤 오히려 대표작을 만든 예술가처럼, 대법관 베이컨은 잊혀졌지만 추방된 베이컨의 문장은 과학이라는 제도로 살아남았다.
권력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권력보다 오래 지속될 것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눈밭에 쭈그려 앉아 냉동 닭의 배를 열고 있는 65세 노인이다.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자기 원칙을 끝까지 지킨, 가장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그 닭 실험이 성공했는지는 기록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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