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범죄는 살인이 아니에요.
배 한 알 도둑질이에요.
아우구스티누스는 16세 때 이웃 과수원에서 배를 훔쳤어요.
배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었어요.
훔치는 행위 자체가 짜릿해서였고, 훔친 배는 대부분 돼지에게 던져줬어요.
그런데 그는 40대에 쓴 책에서 이 사건을 수 페이지에 걸쳐 분석해요.
그 책이 바로 『고백록』(Confessiones)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인류 최초의 자전적 에세이, 내면을 글로 해부한 최초의 시도예요.
살인도 사기도 아닌 과일 도둑질 하나에서 서양 철학사 최초의 '내면 분석'이 탄생한 거예요.
편의점에서 껌 하나 슬쩍한 중학생 시절 기억이 있다면, 그 기억이 평생 당신을 규정한다고 상상해보세요.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상상을 실제로 해낸 사람이에요.

역사상 가장 정직한 기도는 이렇게 시작해요.
"신이여, 저를 바꿔주소서. 단, 오늘 말고요."
아우구스티누스는 19세 때 카르타고, 오늘날의 튀니지에서 한 여성과 동거를 시작했어요.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 아데오다투스가 태어났고, 15년을 함께 살았어요.
그러면서 그는 마니교에 9년간 심취했는데, 마니교는 세상이 빛과 어둠의 두 세력으로 나뉜다는 종교예요.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끈질기게 개종을 권유했어요.
결국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머니를 피해 로마로 도망까지 갔어요.
이 시기 그가 실제로 했던 기도가 라틴어로 이렇게 전해져요. "Da mihi castitatem et continentiam, sed noli modo." 뜻은 "신이여, 정결과 절제를 주소서, 하지만 아직은 말고요."
보통 성인전에서 과거의 방탕은 부끄러운 전사(前史)로 축소돼요.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솔직한 기도를 스스로 기록해 역사에 남겼어요.
새해 첫날 '내일부터 운동한다'고 선언하고 이불 속에서 넷플릭스를 켠 경험, 그게 4세기 버전으로 남은 거예요.
변하고 싶지만 아직은 싫다는 고백이 오히려 그를 가장 인간적인 성인으로 만들었어요.
완벽한 성인이 아니라 흔들리면서 버텨낸 사람이었기 때문에, 1,6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기도가 읽히는 거예요.

33세 대학교수는 무화과나무 아래 엎드려 울고 있었어요.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담 너머 아이의 노래 한 소절이었어요.
386년 밀라노, 아우구스티누스는 수사학 교수로 성공한 상태였어요.
수사학이란 오늘날로 치면 대중을 설득하는 기술, 정치인과 변호사가 배우는 언어의 기술이에요.
그런데 그는 정원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통곡하고 있었어요.
그때 담 너머에서 아이 목소리가 들렸어요.
"Tolle lege." 집어 들고 읽어라.
그는 옆에 놓인 사도 바울 서간집, 로마서 13장을 펼쳤어요.
눈에 들어온 구절을 읽는 순간 마음이 확 돌아섰어요.
그게 그 유명한 회심의 순간이에요.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의 개종 소식에 눈물을 쏟았어요.
그녀가 아들을 따라 대륙을 건너며 기도한 세월이 17년이었거든요.
서양 기독교 역사의 가장 결정적 순간이 신학 토론이나 기적이 아니라 아이의 노랫소리와 우연히 펼친 책 한 구절로 촉발된 거예요.
오랜 고민 끝에 우연히 본 한 줄의 글귀에 마음이 바뀐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그 정원에서 느낀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거예요.

15년을 함께 살고 아이까지 낳은 여자가 쫓겨나며 남긴 말은 이것뿐이었어요.
"다시는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
그녀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어요.
회심 전,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의 출세를 위해 부유한 가문과의 정략결혼을 추진했어요.
15년을 함께한 동거녀는 그렇게 쫓겨나 아프리카로 돌아갔어요.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이 이별의 고통을 생생히 기술했는데, 그녀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쓰지 않았어요.
그 후 그는 히포의 주교가 됐어요.
히포는 오늘날 알제리의 안나바 지역이에요.
거기서 그는 원죄론과 은총론을 정립했는데, 원죄론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악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교리고, 은총론은 신의 도움 없이는 그 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교리예요.
이 두 교리는 이후 1,600년간 서양 기독교의 근본 틀이 됐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게 있어요.
기독교 사랑의 신학을 체계화한 사람이 자신이 사랑한 여성의 이름조차 역사에 남기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가 평생 씨름한 '육체의 욕망'은 결국 그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배 한 알 도둑질을 30년 동안 분석하고, 신에게 "아직은 말고요"라고 기도하고, 담 너머 아이 목소리에 울음을 터뜨린 사람이 쓴 신학이에요.
그 여성이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면서도 이름을 남기지 않은 사람이 쓴 사랑의 교리가, 지금도 매주 수억 명이 고개 숙이는 예배당에서 읽히고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