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당신이 지금 앉아 있는 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조지 버클리에게는 그랬다.
1713년, 28살의 성직자 버클리는 얇은 책 한 권을 발표했다.
『인지의 원리론』이라는 제목의 이 책에서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는 순간 그 스마트폰은 실제로 사라진다는 얘기다.
런던 사교계는 그를 미치광이 취급했다.
"저 사람이 문을 닫고 나가면 방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데 아무도 진지하게 반박하지 못했다.
반전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이 '미치광이'는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교수이자 성공회 성직자였다.
물질세계를 부정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두 기관인 대학과 교회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돈은 오지 않았다.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남자에게, 현실은 정확히 그 방식으로 복수했다.
1728년, 버클리는 놀라운 계획을 세웠다.
신대륙 버뮤다에 선교 대학을 짓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영국 의회를 설득해 2만 파운드의 보조금 약속을 받아냈다. 오늘날 가치로 수십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신혼의 아내와 함께 대서양을 건넌 버클리는 로드아일랜드 뉴포트에 도착했다.
농장을 사고, 건물 설계를 시작했다.
그리고 매달 런던에서 오는 배를 기다렸다.
3년이 지났다.
돈은 끝내 도착하지 않았다.
퇴사하고 창업했는데 투자금 입금이 안 되는 상황을, 3년간 버텨낸 것과 같다.
1731년, 버클리는 빈손으로 영국으로 돌아갔다.
물질세계가 환상이라고 주장한 사람의 꿈이, 존재하지 않는다던 바로 그 물질이 도착하지 않아 무너진 것이었다.
역설이 이렇게 아프게 현실이 된 경우는 드물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철학적 반박은 발차기 한 번이었다.
그리고 그 발차기는 틀렸다.
1763년, 문학비평가 새뮤얼 존슨은 길가의 큰 돌을 세게 걷어찼다.
발이 아픈 것을 느끼며 그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나는 이렇게 반박한다!"
존슨의 논리는 이랬다: "돌을 차면 아프잖아. 아프다는 게 느껴지면 돌은 존재하는 거야. 버클리는 틀렸어."
하지만 철학자들은 정반대로 읽었다.
버클리는 돌의 감각을 부정한 게 아니라, 돌이 아무도 지각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혼자 존재한다는 전제를 부정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존슨이 돌을 차서 아픔을 '지각'한 순간, 그는 버클리를 반박한 게 아니라 오히려 증명해 버렸다.
온라인 댓글 논쟁에서 상대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이겼다고 생각하는 상황과 정확히 같다.
이 장면은 이후 300년간 버클리 철학을 조롱하는 상징이 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존슨이 틀렸다는 사실도 함께 전해진다.

조지 버클리는 캘리포니아에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곳에는 그의 이름이 붙은 도시와 세계 10위권 대학이 있다.
1866년, 캘리포니아의 한 사립 대학 이사회는 교명을 논의하다 버클리의 시 한 편을 발견했다.
『미국에 예술과 학문을 심을 전망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그가 썼던 구절이 이사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제국의 행로는 서쪽으로 향한다."
버클리가 이 시를 쓴 건 신대륙에 대학을 세우겠다는 꿈을 품었던 바로 그 시절이었다.
그 꿈은 생전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가 죽고 100년이 넘어,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땅에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이 그의 이름으로 세워졌다.
UC 버클리, 지금 전 세계 수십만 명의 학생과 연구자가 그 이름을 매일 부른다.
창업에 실패한 사람의 사업 계획서를 누군가 주워서 유니콘 기업을 만든 것과 같다.
물질은 지각될 때만 존재한다고 했던 사람의 이름은, 그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 지각되고 있다.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