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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869년,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청년이 있었어요.
그는 의사가 되는 대신 침대로 돌아갔습니다.
그 청년이 윌리엄 제임스예요.
졸업장은 받았지만 환자를 단 한 명도 진료하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우울증과 공황발작, 등 통증이 겹쳐서 20대 후반을 통째로 아버지 집에서 보냈어요.
더 아프게 만드는 맥락이 있어요.
아버지 헨리 제임스 시니어는 신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저명한 사상가였고, 동생 헨리 제임스는 이미 소설을 발표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상황이었습니다.
제임스 가문 안에서 윌리엄만 혼자 멈춰 있었던 거예요.
요즘 말로 하면 이래요.
스펙은 완벽한데 취업도 못 하고, 번아웃으로 부모님 집에 눌러앉아 있는 상태.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 자기 몸 하나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에요.

자유의지가 존재하는지 증명할 방법은 없었어요.
그래서 제임스는 증명 대신 내기를 걸었습니다.
1870년 4월 30일, 제임스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어요.
"나의 첫 번째 자유의지 행위는 자유의지를 믿는 것이다."
그 직전에 그는 샤를 르누비에의 글을 읽었어요.
르누비에는 19세기 프랑스 철학자로, 인간이 스스로 생각과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의지를 정면으로 옹호한 사람이에요.
제임스는 그 글에서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어요.
그는 자유의지를 논리적으로 증명한 게 아니에요.
그냥 믿기로 결심한 거예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이 결심이 곧 증명이 되거든요.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으려면 이미 자유의지를 써야 하는 거잖아요.
믿는 행위 자체가 자유의지의 실연이 되는 완벽한 자기 참조였어요.
'내일부터 운동해야지'라고 결심하는 순간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돼요.
아직 운동은 안 했어요. 하지만 결심 자체가 이미 변화의 시작입니다.
제임스는 그걸 철학의 언어로 포착한 거예요.

하버드 교수가 웃음 가스를 들이마시고 이렇게 외쳤어요.
"드디어 우주의 비밀을 알았어!"
다음 날 메모를 펼쳐보니 적혀 있던 건 말장난뿐이었습니다.
제임스는 아산화질소, 즉 치과에서 쓰는 웃음 가스를 직접 흡입하며 의식이 어디까지 확장되는지를 실험했어요.
가스를 마신 상태에서 우주의 궁극적 진리를 깨달았다는 확신을 느꼈지만, 깨어나 적어둔 메모는 거의 무의미한 단어들의 나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여기서 한 선택이 흥미로워요.
"그래, 말장난이었구나. 환각은 환각이야." 하고 끝내지 않았어요.
대신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그 순간에 나는 그렇게 확신했을까?"
그 질문이 나중에 책이 됩니다.
1902년에 출간된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은 신비 체험을 '비과학적'이라며 무시하지 않고, 인간이 실제로 겪는 내면의 경험으로서 진지하게 분석한 최초의 학술서예요.
본인은 불가지론자에 가까웠지만, 직접 환각을 경험하고 그걸 학문으로 승화시킨 거예요.
술에 취했을 때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느꼈는데 다음 날 수첩을 보니 낙서뿐이었던 경험, 한 번쯤 있지 않나요.
제임스는 그 낙서를 버리지 않고 연구 대상으로 삼았어요.

1907년, 한 철학자가 유럽 학계 전체를 적으로 돌렸어요.
그의 죄목은 이거였습니다. "진리는 맞는 것이 아니라 쓸모 있는 것이다."
제임스는 《프래그머티즘》을 출간하며 이렇게 선언했어요.
프래그머티즘, 우리말로 실용주의란, 어떤 생각이나 믿음이 현실에서 실제로 효과를 낸다면 그게 진리라는 철학이에요.
진리는 하늘에 미리 적혀 있는 정답이 아니라, 살면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거예요.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당대 최고의 논리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걸 '지적 범죄'라고 불렀습니다.
유럽 철학계는 "그럼 편한 게 진리냐"며 거세게 반발했어요.
하지만 여기서 한 발짝 물러나서 보면 달리 보여요.
이 철학을 만든 사람이 누구예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던 사람이에요.
'정답이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자'는 태도가 자신을 몇 년째 마비시켰다는 걸 몸으로 알았던 사람이에요.
"일단 믿고, 행동하고, 결과로 판단하라."
이건 강의실에서 나온 이론이 아니에요.
그가 자기 자신에게 먼저 적용하고 살아남은 실험의 결과였습니다.
정답을 알 때까지 기다릴 건지, 일단 해보고 결과로 판단할 건지.
제임스라면 이렇게 물었을 거예요.
"근데 기다리는 동안 뭘 잃고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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