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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새 학기 첫날, 교실 문이 열리고 처음 보는 친구가 들어와요. 그 아이가 앞으로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일을 벌일지, 선생님도 친구들도 아무도 몰라요. 조용히 책만 볼 수도 있고, 반 분위기를 통째로 바꿔 놓을 수도 있죠. 사람이 딱 한 명 새로 들어왔을 뿐인데, 그 자리에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무언가'가 생겨요.
한나 아렌트라는 철학자는 바로 이 장면에 평생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에요. 사람이 태어난다는 건 그저 인구가 한 명 느는 게 아니라, 세상에 '한 번도 없던 시작'이 하나 들어오는 일이라고 봤거든요. 오늘은 그가 평생 붙들었던 이 생각, '탄생성과 시작'을 같이 풀어 볼게요.

한나 아렌트는 1906년부터 1975년까지 살았던 정치철학자예요.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는데, 나치가 권력을 잡자 목숨을 지키려고 나라를 떠나야 했어요. 그 뒤로 14년 가까이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못한 무국적자로 떠돌다가, 결국 미국에 자리를 잡았어요. 여권 한 장 없이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몸으로 겪은 사람이었던 거죠.
그래서 그의 평생 질문은 늘 비슷했어요. "어떻게 멀쩡해 보이던 나라가 사람을 그렇게까지 짓밟을 수 있었을까?" 그는 답을 찾으려고 '전체주의'를 파고들었어요. 전체주의란,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빈틈없이 틀에 가두는 정치예요.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고, 누구도 새로운 걸 시작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죠. 아렌트가 보기에 이건 사람에게서 가장 사람다운 무언가를 빼앗는 일이었어요.

아렌트가 그 '가장 사람다운 것'에 붙인 이름이 바로 탄생성이에요. 말은 어렵게 들리지만 뜻은 단순해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기 때문에, 누구나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힘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는 1958년에 펴낸 책 '인간의 조건'에서 이 생각을 한가운데에 놓았어요.
생각해 보면 아기는 세상에 처음 오는 손님이에요. 그 전까지 없던 사람이 하나 생기는 거고, 그 아이가 자라서 무슨 일을 할지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아요. 아렌트는 이 '새로 옴'이 태어날 때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봤어요. 우리는 어른이 된 뒤에도 매번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말하자면 작게 다시 태어난다는 거예요. 먼저 사과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아무도 안 하던 동아리를 만드는 순간, 그때마다 세상에 없던 시작이 하나씩 생겨요.
그래서 아렌트에게 '시작'은 거창한 게 아니에요. 앞이 어떻게 될지 뻔히 모르는데도 한 발을 떼는 것, 그게 시작이에요. 결과가 정해져 있다면 그건 시작이 아니라 그냥 따라 하기일 뿐이죠.

여기서 아렌트의 두 고민이 딱 만나요. 한쪽엔 사람을 틀에 가두는 전체주의가 있고, 다른 쪽엔 누구나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탄생성이 있어요. 전체주의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바로 이 탄생성이에요. 사람들이 저마다 새로운 걸 시작해 버리면, 모두를 똑같이 묶어 두려는 틀이 자꾸 깨지니까요.
아렌트는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직접 지켜보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남겼어요.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보낸 사람이 무서운 괴물이 아니라,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 평범한 직원처럼 보였던 거예요. 아렌트가 보기에 가장 위험한 건 뿔 달린 악당이 아니라, 새로 시작할 힘을 스스로 내려놓은 사람이었어요.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렌트는 그 답도 탄생성에서 찾았어요. 세상이 아무리 굳어 보여도 사람은 계속 태어나고, 태어나는 한 누군가는 또 새로운 걸 시작할 거예요. 그는 이걸 세상을 구하는 '기적'이라고까지 불렀어요. 거창한 영웅이 아니라, 그저 새 사람이 끊임없이 온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이었던 거죠.

아렌트의 탄생성은 한마디로 이거예요. 사람은 태어나기 때문에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고, 그 힘은 어른이 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전체주의는 그 시작하는 힘을 빼앗으려 하고, 아렌트는 바로 그 힘에서 희망을 봤어요. 다음에 아무도 안 하던 일을 처음 해 보려고 망설이는 순간이 오면, 그 망설임 속에 아렌트가 말한 '시작'이 들어 있다는 걸 한번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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