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인도 남부의 작은 도시 쿰바코남에는 도서관이 하나 있었다.
1903년, 열다섯 살 라마누잔은 그 도서관에서 조지 카의 『순수수학 개요』라는 책을 빌렸다.
두꺼운 책 안에는 6,165개의 정리가 증명 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카의 의도는 간단한 참고서였다.
라마누잔은 그것을 교재로 삼았다.
수학에는 독특한 성질이 있다.
악보를 보며 음악을 상상하듯, 숫자와 기호만으로도 세계의 구조를 눈앞에 펼칠 수 있다.
라마누잔은 책 속의 정리들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카가 적어두지 않은 것들을 스스로 유도하고 확장하기 시작했다.
빈 공책이 그의 연구실이었다.
문제는 수학이 전부였다는 것이다.
영어 시험에서 낙제했다.
역사에서도 낙제했다.
장학금이 사라졌다.
두 번째 대학에서는 중퇴했다.
그는 학위도, 지도 교수도, 논문 심사도 없이, 그저 공책 위에 홀로 정리들을 쌓아갔다.
1913년의 라마누잔은 마드라스 항만청 회계 서기였다.
월급은 25루피.
당시 인도의 평범한 하급 공무원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해 1월 16일, 그는 편지 한 통을 영국으로 보냈다.
수신인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G.H. 하디.
당대 영국에서 가장 날카롭다는 평가를 받던 수학자였다.
편지는 9쪽이었다.
그 안에 120개의 정리가 적혀 있었다.
하디는 편지를 받은 날 저녁, 동료 리틀우드를 불렀다.
두 사람은 밤새 그 정리들을 들여다봤다.
일부는 이미 알려진 것이었다.
일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머지가 문제였다.
참인지 거짓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하디의 결론은 하나였다.
'저 사람이 직접 저것들을 만들어냈다면, 최고 수준의 천재다.'
라마누잔이 처음부터 하디에게 편지를 쓴 건 아니었다.
케임브리지의 다른 교수 두 명에게도 먼저 연락했었다.
베이커도, 홉슨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하디는 답장을 썼다.
1914년 3월, 라마누잔은 배를 탔다.
그는 브라만 가문의 채식주의자였다.
바다를 건너는 것은 힌두 전통에서 금기에 가까웠다.
카스트를 잃는다고 여겨졌다.
그는 그 금기를 깨고 영국으로 향했다.
케임브리지는 그가 상상하던 곳과 달랐다.
4월이 되어도 공기가 차가웠다.
그리고 그해 여름, 전쟁이 터졌다.
제1차 세계대전은 물자의 흐름을 끊었다.
인도에서 오던 식재료가 들어오지 않았다.
채식 식단을 유지하려면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라마누잔은 영국 채소를 삶아 먹었다.
추운 기숙사 방에서, 전쟁 중인 나라의 한 귀퉁이에서, 직접 냄비를 올렸다.
하디와의 공동 작업은 그 5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분할함수의 점근공식을 비롯한 28편의 논문이 그 시간에서 나왔다.
분할함수란 어떤 숫자를 더 작은 자연수들의 합으로 나타내는 방법의 수를 세는 함수다.
예를 들어 4는 4, 3+1, 2+2, 2+1+1, 1+1+1+1로 나눌 수 있으니 분할 수는 5다.
숫자가 커질수록 이 값은 폭발적으로 불어난다.
라마누잔과 하디는 이 폭발을 정밀하게 예측하는 공식을 만들었다.
영양 상태는 나빠지고 있었다.
폐결핵이 찾아왔다.
1729라는 숫자는 특별히 기억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소수도 아니고, 어떤 유명한 공식의 결과도 아니다.
런던 거리를 달리는 택시의 번호판일 뿐이다.
1918년, 하디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라마누잔을 찾아갔다.
할 말이 마땅치 않았던 그는 타고 온 택시 번호를 꺼냈다.
"1729번이었는데, 별로 흥미롭지 않은 숫자더군."
라마누잔이 대답했다.
그 수는 흥미롭다.
두 세제곱수의 합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두 가지 있는 수 중에서 가장 작은 수이기 때문에.
1³ + 12³ = 1 + 1728 = 1729.
9³ + 10³ = 729 + 1000 = 1729.
병상에 누운 채로, 즉석에서.
같은 해 라마누잔은 영국 왕립학회 펠로(FRS)로 선출되었다.
인도인으로서는 최초였다.
트리니티 칼리지 펠로십도 받았다.
수학계가 그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1920년, 라마누잔은 인도로 돌아왔다.
서른둘에 사망했다.
그가 남긴 것 중에는 공책 하나가 있었다.
그 공책은 오랫동안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다.
1976년, 수학자 조지 앤드루스가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의 서류 더미를 뒤지다 그것을 발견했다.
600여 개의 공식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증명은 없었다.
결과만 있었다.
이것은 라마누잔의 작업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물건이었다.
그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했는지를 적지 않았다.
도달한 곳만 적었다.
수학자들은 수십 년에 걸쳐 그 목적지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하나씩 확인해야 했다.
그 공책 안에 모의 세타 함수라 불리는 이론이 있었다.
라마누잔이 죽기 직전 하디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 언급한 개념이었다.
수학계는 오랫동안 이것이 무엇인지, 어디에 속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2012년, 물리학자들이 블랙홀의 엔트로피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이 함수가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블랙홀이 품고 있는 정보의 양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데, 1920년에 사망한 인도 수학자의 공식이 필요했다.
라마누잔은 블랙홀을 몰랐다.
블랙홀의 엔트로피를 계산할 생각도 없었다.
그는 숫자들 사이의 패턴을 따라갔을 뿐이다.
그 패턴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아직도 전부 알 수 없다.
공책의 공식 중 일부는 지금도 증명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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