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레티우스가 신을 지우려 쓴 6권의 시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생애는 거의 다 지워졌다
루크레티우스라는 시인에 대해 우리가 확실히 아는 건, 그가 7400행짜리 시 한 편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사실뿐이에요.
출생지가 어디인지, 어떤 신분이었는지, 언제 죽었는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요.
누군가의 인생 역작이 전해지는데, 그 사람의 위키백과 페이지가 거의 비어 있는 셈이에요.
우리에게 남은 흔적은 딱 두 개예요.
하나는 동시대를 살았던 철학자 키케로가 루크레티우스의 시를 편집했다고 짧게 언급한 한 줄.
다른 하나는 4세기 기독교 학자 성 히에로니무스가 남긴 전설적인 기록인데,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미쳐서 자살했다"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요?
우주 전체를 설명하려 한 시인의 인생이, 정작 한 페이지도 채워지지 않았다는 게요.
그 공백이 오히려 그를 더 미스터리하게 만들어요.
그는 우주 전체를 6권의 라틴어 시로 설명했다
그는 물리학 논문이 아니라 시를 썼어요.
그것도 우주의 모든 것에 관한 시를요.
루크레티우스의 유일한 작품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예요.
라틴어로 쓰인 6권짜리 서사시인데, 분량이 약 7400행에 달해요.
오늘날로 치면 두툼한 장편 소설 한 권 분량이에요.
내용도 놀라워요.
1권은 원자의 존재를 설명하고, 2권은 원자의 운동을 다뤄요.
3권은 영혼이 무엇인지, 4권은 감각과 사랑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5권은 우주와 인류 문명의 역사, 6권은 자연현상과 전염병까지 다뤄요.
그가 기반으로 삼은 건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이에요.
에피쿠로스는 "세상 모든 것은 아주 작은 입자인 원자가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 철학자예요.
루크레티우스는 이 차갑고 기계적인 학설을, 산문이 아니라 운율 있는 시로 옮겼어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거예요.
누군가가 양자역학 교과서 전체를 운율 있는 랩 가사로 다시 쓰겠다고 결심한 것과 같아요.
가장 딱딱한 내용을 가장 따뜻한 형식에 담은 거예요.
그는 신과 영혼을 부정해 죽음의 공포를 지우려 했다
신을 부정한 그의 시는, 무신론의 선언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에 떠는 인간에게 건네는 위로였어요.
루크레티우스는 시 전체에서 한 가지를 반복해서 주장해요.
신들은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영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어서, 몸이 죽으면 함께 흩어져 사라진다는 것이에요.
그가 시를 쓴 목적은 명확했어요.
당시 로마 사람들은 'religio(렐리기오)', 즉 종교가 심어준 죽음의 공포 때문에 평생을 두려움 속에서 살았어요.
루크레티우스는 그 공포의 뿌리를 잘라내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는 이렇게 썼어요.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죽음은 없고, 죽음이 왔을 때 우리는 없기 때문이다."
2000년 전에 쓰인 문장인데, 지금 읽어도 서늘할 만큼 선명해요.
어두운 방에서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귀신은 없어"라고 말해주는 어른과 비슷한 거예요.
단, 이 어른은 우주 전체를 근거로 그 말을 하고 있어요.
신도, 영혼도, 사후세계도 없으니까 지금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의 시는 1417년 한 권의 사본으로 부활해 르네상스를 깨웠다
루크레티우스의 시를 1500년의 침묵에서 깨운 사람은, 다름 아닌 교황의 비서였어요.
중세 1500년 동안 그의 시는 거의 잊혔어요.
신을 부정하는 내용 때문에 교회는 그를 이단으로 분류했고, 중세 최고의 시인 단테가 쓴 《신곡》에도 루크레티우스는 등장하지 않아요.
교회 입장에서 이 시는 그냥 없는 책이었어요.
그러다 1417년, 한 사람이 독일 남부의 한 수도원 도서관에서 먼지 쌓인 사본 한 권을 발견해요.
그 사람은 포조 브라치올리니(Poggio Bracciolini)라는 이탈리아 인문주의자였어요.
교황청의 비서이자, 잊혀진 고대 필사본을 유럽 전역에서 발굴해 다니던 일종의 '책 사냥꾼'이었죠.
회사가 폐기 처분한 비밀 보고서를, 그 회사의 비서실장이 직접 발굴해 출판한 격이에요.
신을 부정한 죄로 교회가 묻어둔 책을, 교황의 비서가 꺼내온 거예요.
이 한 권의 부활이 세상을 바꿨어요.
갈릴레오, 뉴턴, 그리고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까지 루크레티우스의 영향을 받았어요.
제퍼슨은 자기 서재에 다섯 가지 언어로 된 판본을 모아둘 정도였어요.
기원전 1세기에 사라진 한 시인의 목소리가, 1500년을 건너 르네상스의 불씨가 됐어요.
그 불씨는 지금도 꺼지지 않았어요.
우리가 "죽음이 두려워"라고 말할 때, 그 두려움을 가장 먼저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이 루크레티우스이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