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이 81세 빗속 줄에서 죽은 진짜 이유
노벨상 철학자 베르그송이 빗속 등록 줄에서 죽었다
1941년 1월 새벽, 노벨상을 받은 81세 철학자가 영하의 파리 거리에서 유대인 등록을 위해 줄 서 있었어요.
앙리 베르그송은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지식인이었어요.
192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였고, 비시 정부는 조용히 면제권을 제안해왔어요.
하지만 그는 거절했어요.
이유는 하나였어요.
박해받는 유대인들이 줄 서는 곳에 자신도 같이 서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준 거예요.
그 줄에서 폐렴에 걸렸어요.
며칠 뒤 베르그송은 세상을 떠났어요.
명예도, 면제권도, 다 갖고 있었는데 스스로 포기한 거예요.
오늘로 치면 이런 상황이에요.
회사 구조조정 명단에서 임원만 제외된다는 통보를 받은 80대 선배가 "나도 같이 잘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후배들 줄에 합류한 것과 같아요.
그리고 그 결정이 그의 마지막이 됐어요.
1900년 파리는 베르그송 강의실 앞에 마차로 막혔다
당시 파리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자리는 오페라 좌석이 아니라 베르그송의 금요일 강의실이었어요.
1900년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 임명된 뒤 생긴 일이에요.
콜레주 드 프랑스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학술 기관 중 하나로, 강의가 일반인에게도 무료로 열려 있었어요.
그게 문제였어요.
강의 주제는 '시간'과 '직관'이라는 추상적인 철학 개념이었어요.
그런데 사교계 부인들, 외국 학자들, 일반 청중까지 두세 시간 전부터 자리를 잡으러 왔어요.
강의실 밖 거리에는 마차가 줄지어 막혔다는 신문 기사까지 실렸어요.
BTS 콘서트 입장권을 예매하듯 교양 철학 수업 자리를 차지하러 온 거예요.
사람들이 그 말에 끌린 건 이유가 있어요.
베르그송은 '시계가 재는 시간과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시간은 다르다'고 말했어요.
5분을 기다릴 때와 5분 동안 좋아하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 같은 5분인데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잖아요.
파리 시민들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맞아, 내가 매일 느끼던 게 바로 그거잖아"라고 느꼈을 거예요.
그러니까 어렵지 않았어요. 그냥 자기 이야기였으니까요.
아인슈타인은 한 문장으로 베르그송의 시간을 지웠다
1922년 4월 6일 저녁, 아인슈타인은 베르그송의 평생 작업을 단 한 문장으로 끝냈어요.
파리 프랑스철학회에서 두 사람이 직접 만났어요.
주제는 '시간이란 무엇인가'였어요.
둘 다 시간을 연구했지만 전혀 다른 방향이었어요.
베르그송은 시간이 우리 내면에서 경험되는 흐름이라고 했어요.
아인슈타인은 시간이란 측정 가능한 물리량이라고 했어요.
그날 아인슈타인이 내린 결론은 짧았어요.
"철학자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계 분위기는 즉시 아인슈타인 쪽으로 기울었어요.
상대성 이론을 막 발표한 물리학 천재 앞에서 '경험'과 '직관'을 이야기하는 철학자는 밀릴 수밖에 없었어요.
베르그송의 학문적 명성은 그날 이후 빠르게 추락했어요.
그런데 반전이 있어요.
그 논쟁에서 공개적으로 패배한 베르그송이 5년 뒤 노벨문학상을 받았어요.
학계가 외면한 자리에서 문학계가 그를 끌어올린 거예요.
평생 쌓아온 전문성을 옆 분야 천재 한 명이 공개 토론 한 번에 무너뜨린 것 같았는데, 결국 전혀 다른 곳에서 인정받은 거예요.
베르그송은 그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베르그송은 가톨릭 개종을 거절하고 원고를 태우라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자기 글을 직접 없애달라고 한 경우는 거의 없어요.
베르그송은 그 흔치 않은 경우였어요.
만년의 베르그송은 가톨릭 신앙에 깊이 끌렸어요.
하지만 정식 개종은 거절했어요.
이유는 하나, 박해받는 유대인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서였어요.
동시에 그는 아내 루이즈에게 유언을 남겼어요.
미발표 원고와 강의 노트를 모두 파기해달라는 것이었어요.
루이즈는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켰어요.
비슷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어요.
소설가 카프카도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원고를 다 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겼어요.
하지만 브로트는 그 유언을 거절했고, 덕분에 우리가 지금 《변신》과 《심판》을 읽을 수 있어요.
베르그송의 아내는 달랐어요.
약속대로 원고를 태웠어요.
그래서 그의 후기 사상 상당 부분은 영원히 사라졌어요.
빗속 등록 줄에 선 것, 개종을 거절한 것, 원고를 태우라고 한 것.
이 세 가지는 사실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나는 편의 때문에 내 자리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