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코 델라 미란돌라가 독살된 진짜 이유, 23세 천재의 짧은 생애
피코는 23세에 모든 학자를 로마로 불러 모았다
피코는 23살에 모든 지식을 한 권으로 정리했다고 선언했어요.
1486년,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당시 알려진 모든 지식을 900개의 논제로 묶어 출판했어요.
철학, 신학, 자연과학, 카발라(유대 신비주의 사상), 아랍 철학까지 전부 담았어요.
그리고 선언했어요. "유럽의 모든 학자들, 로마로 오세요. 제가 여비를 부담하겠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대학원 1년차가 박사논문을 쓰면서 "전 세계 교수님, 저랑 토론하러 오세요. 비행기표는 제가 끊겠습니다"라고 공고를 올린 것과 같아요.
그것도 23살에.
900개의 명제(Conclusiones Nongentae)는 단순한 논제 목록이 아니었어요.
피코는 기독교 신학과 이교 철학, 동양 신비주의가 사실 하나의 진리를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다고 믿었어요.
그 통합을 증명하겠다는 게 이 토론회의 목적이었어요.
피코는 어린 시절부터 비범했어요.
14살에 대학에 입학했고, 20대 초반에 이미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랍어를 읽었어요.
가장 어린 도전자가 가장 거대한 논쟁을 제안한 거예요.
교황 인노첸시오 8세는 피코의 책을 금서로 만들었다
피코의 토론회는 열리지 못했어요.
교황이 그 책을 인쇄술 시대 최초의 금서로 만들었거든요.
1487년, 교황 인노첸시오 8세는 피코의 900개 명제 중 13개를 이단으로 판정했어요.
그리고 책 전체를 금서로 지정했어요.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지 불과 수십 년, 교황이 인쇄된 책을 공식으로 금서로 지정한 최초의 사례가 됐어요.
학회 발표를 준비하고 갔더니 시작도 전에 "당신 발표는 금지됐습니다. 학회장도 폐쇄됩니다"라는 통보를 받은 상황이에요.
그것도 온 세상에 "이 사람은 이단자"라는 공고까지 붙여서.
피코는 프랑스로 도망쳤어요.
하지만 국경을 넘다 체포되어 잠시 수감됐어요.
교황청의 시선에서 피코의 죄목은 분명했어요.
기독교 신학이 유대 신비주의나 이교 철학과 같은 수준의 진리를 공유한다는 주장은,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었거든요.
하지만 피코는 물러서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써내려갔어요.
피코는 인간이 신도 짐승도 될 수 있다고 썼다
이단으로 낙인찍힌 그 책의 서문 한 단락이, 500년 뒤 르네상스를 정의하는 문장이 됐어요.
피코는 토론회 개회사로 쓴 글이 있었어요.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연설」(Oratio de hominis dignitate)이라는 짧은 글이었어요.
토론회가 열리지 못하면서 그 연설도 낭독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 안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신은 인간을 어떤 정해진 형태 없이 빚었어. 그러니 인간은 짐승으로도 될 수 있고, 천사로도 될 수 있어."
다른 모든 피조물은 태어날 때부터 역할이 정해져 있어요.
나무는 나무로, 새는 새로, 천사는 천사로.
하지만 피코에 따르면 인간만은 달랐어요. 자신이 무엇이 될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어요.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진다"는 생각이 그 시대에는 위험한 선언이었어요.
교회는 인간의 역할을 신이 정해준다고 가르쳤으니까요.
그러니까 피코의 이 문장은 신학적 반란이었어요.
결말이 역설적이에요.
이단으로 금지됐던 그 책의 서문은, 지금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설명하는 교과서마다 첫 페이지에 인용돼요.
검열로 묻히려 했던 글이, 오히려 그 시대 전체를 대표하는 문장이 된 거예요.
피코의 유골에서 500년 만에 비소가 검출됐다
2007년, 이탈리아 연구팀이 500년 만에 피코의 무덤을 열었어요.
유골에는 치명적인 양의 비소가 남아 있었어요.
1494년 11월 17일, 피코는 31세로 갑자기 죽었어요.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프랑스 왕 샤를 8세가 군대를 이끌고 피렌체에 입성했어요.
피렌체가 혼란에 빠진 날, 피코도 사라졌어요.
오랫동안 자연사로 처리됐어요.
500년 동안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2007년, 이탈리아 연구팀이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유골을 발굴해 성분을 분석했어요.
결과는 충격적이었어요.
유골에서 치명적인 농도의 비소(arsenic)가 검출됐어요.
비소는 자연적으로 그 농도로 쌓이지 않아요. 누군가 의도적으로 먹였다는 뜻이에요.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는 피코의 비서가 지목됐어요.
동기는 아직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어요.
500년 동안 자연사로 정리됐던 이야기가, 21세기 과학 검사 하나로 뒤집힌 거예요.
피코는 31년을 살았어요.
23살에 온 유럽을 상대로 토론을 선언했고, 금서로 낙인찍힌 글이 르네상스의 얼굴이 됐고, 독살됐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가 "인간이여,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쓴 게 23살이었다는 게, 어쩐지 자꾸 마음에 걸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