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제임스가 영매를 평생 좇은 이유와 흰 까마귀의 비밀
하버드 의학박사 윌리엄 제임스는 환자를 한 명도 안 봤다
윌리엄 제임스는 1869년 하버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는 평생 단 한 명의 환자도 본 적이 없어요.
오늘날로 치면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흰 가운을 옷장에 넣어두고 전혀 다른 길로 간 사람이에요.
당시에도 이건 흔한 선택이 아니었어요.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주방에 한 번도 안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이야기니까요.
1872년, 그는 하버드에서 생리학 강사로 처음 교단에 섰어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심리학으로, 다시 철학으로 계속 옮겨갔어요.
그에게 의학 학위는 목적이 아니라 출발점에 불과했어요.
환자 몸을 고치는 대신 그가 들여다보기로 한 것은 '의식 그 자체'였어요.
사람이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연구하기로 한 거예요.
제임스는 자살 직전 한 프랑스 철학자의 책으로 살아남았다
1870년 봄, 28살의 제임스는 매일 자살을 생각하며 일기를 썼어요.
그를 살린 건 의사도 약도 아닌 한 줄의 문장이었어요.
그날 그는 프랑스 철학자 샤를 르누비에의 자유의지 에세이를 읽고 있었어요.
르누비에의 주장은 단순했어요. 인간은 환경이나 운명에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 문장이 제임스를 멈추게 했어요.
그날 밤 일기에 제임스는 이렇게 썼어요.
"나의 첫 번째 자유의지 행위는 자유의지를 믿는 것으로 하겠다."
번아웃으로 무너지기 직전, 누군가 해준 말도 아닌 책 한 줄이 다음 날을 살게 한 것과 같아요.
외부의 처방이 아니라 스스로 내린 결심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걸 그는 자기 몸으로 증명한 셈이에요.
그런데 이 순간은 그냥 개인적인 위기 극복으로 끝나지 않아요.
'믿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달라졌다'는 경험이 훗날 프래그머티즘의 씨앗이 됐거든요.
프래그머티즘이란 진리는 어딘가에 고정돼 있는 게 아니라 실제 삶에서 작동하는 것이라는 사상이에요. 믿음이 행동을 바꾸고, 행동이 현실을 바꾼다는 거예요.
심리학 창시자 제임스가 25년 좇은 영매는 보스턴 가정주부였다
1885년 가을, 미국 심리학을 창시한 교수가 보스턴의 평범한 주부 집을 찾아갔어요.
그곳엔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영매가 있었어요.
영매란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를 연결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심령술사에 해당하는 존재예요.
그 주부의 이름은 레오노라 파이퍼였어요.
제임스는 이미 1884년 미국 심령연구회를 공동 창립한 상태였어요.
초자연 현상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겠다는 목적의 단체였어요.
동료 과학자들은 이 행동을 부끄러워했어요.
하지만 제임스는 물러나지 않았어요.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비과학적인 거예요."
그리고 1910년 사망 직전까지 25년간 파이퍼를 추적하고 실험하고 기록했어요.
한 분야 최고 권위자가 동료들이 '미신'이라 비웃는 현상을 끝까지 실험실에 들이는 상황이에요.
진짜 과학은 결과를 먼저 정해놓고 그것만 믿는 게 아니라 불편한 현상 앞에서도 데이터를 모으는 태도라고 그는 믿었어요.
제임스는 흰 까마귀 한 마리로 회의주의를 무너뜨렸다
제임스는 25년 동안 한 영매를 추적했지만, 끝내 그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결론을 내리지 않았어요.
대신 그는 한 줄의 비유로 과학계 전체를 흔들었어요.
1890년 미국 심령연구회 회장 연설에서 제임스는 이렇게 말했어요.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법칙을 뒤집고 싶다면 모든 까마귀가 검지 않다는 걸 보일 필요가 없어요."
"흰 까마귀 한 마리만 보이면 돼요. 나의 흰 까마귀는 파이퍼 부인이에요."
파이퍼가 진짜 초능력자라는 걸 증명하겠다는 말이 아니었어요.
예외적인 현상이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가정 전체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뜻이었어요.
그리고 제임스는 끝까지 판단을 보류했어요.
모두가 '예스 오어 노'를 요구하는 자리에서 "아직 모른다"고 25년간 버텼어요.
답을 내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가장 정직한 과학자의 태도라고 그는 믿었거든요.
이 태도는 결국 그의 프래그머티즘과 연결돼요.
진리란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 검증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에요.
하버드 의학박사, 심리학 창시자, 영매 추적자, 프래그머티즘 철학자.
이 모든 호칭이 한 사람에게 붙는다는 게 어색해 보이죠.
하지만 어쩌면 그게 당연해요. 그에게 '아직 모른다'는 건 도망이 아니라 가장 용기 있는 답이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