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자누스가 평생 학문을 무지라 부른 이유
쿠자누스가 책 결론에 '나는 모른다'고 적었다
박사 학위 졸업식 단상에 오른 사람이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라고 고백한다면 어떨까요.
1440년, 유럽에서 가장 박식하다는 추기경이 실제로 그런 책을 썼어요.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는 《배운 무지(De Docta Ignorantia)》에서 평생 모은 학문의 결론을 한 줄로 정리했어요.
"인간은 신과 무한을 결코 다 알 수 없다."
진짜 지식인이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배운 무지"라는 제목 자체가 역설이에요.
무지는 보통 못 배웠다는 뜻이잖아요.
하지만 쿠자누스는 정반대라고 했어요.
많이 배울수록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거예요.
지도를 많이 볼수록 아직 가보지 못한 땅이 얼마나 넓은지 실감하는 것처럼요.
이 생각이 그의 철학 전체를 꿰뚫어요.
이 책을 쓸 당시 쿠자누스의 나이는 서른아홉이었어요.
더 놀라운 건, 이 고백이 그에게 이단 판결이 아니라 추기경 자리를 가져다줬다는 거예요.
쿠자누스는 코페르니쿠스보다 100년 먼저 지구를 돌렸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주장을 처음 한 사람이 코페르니쿠스가 아닐 수도 있어요.
《배운 무지》에는 이미 그 선언이 들어있었어요.
쿠자누스는 지구가 정지해 있지 않고, 저 하늘의 별들도 또 다른 태양일 수 있다고 적었어요.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를 펴낸 건 1543년이에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주장을 담은, 당시 유럽을 뒤흔든 책이에요.
쿠자누스의 선언보다 정확히 100년 뒤예요.
코페르니쿠스는 이단 논란에 시달렸어요.
반면 쿠자누스는 같은 주장을 했는데 오히려 추기경 자리에 올랐어요.
정설을 정면으로 뒤집었는데 승진한 거예요.
그 비결은 논리의 포장 방식에 있었어요.
쿠자누스는 천문학이 아니라 신학의 언어로 주장을 꺼냈어요.
신은 무한하고, 무한한 우주에는 중심이 없으니, 지구도 중심일 수 없다는 방식으로요.
그래서 교회가 이단이라고 잡을 구멍이 없었어요.
같은 결론인데 어떤 언어로 포장하느냐가 목숨을 가른 셈이에요.
쿠자누스는 모젤강 뱃사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추기경과 교황 사절이 된 이 인물의 출발점은 독일 시골 강변의 뱃사공 집이었어요.
니콜라우스 크렙스(Nikolaus Krebs), 이게 쿠자누스의 본명이에요.
1401년, 독일 모젤강 변의 작은 와인 마을 쿠스(Kues)에서 뱃사공 겸 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동네 식당집 아들이 청와대 비서실장이 된 격이에요.
신분의 최하층에서 출발해 교회 권력의 꼭대기까지 오른 사람이에요.
그리고 이 인물이 평생 매달린 주제가 대립자의 일치예요.
대립자의 일치란 반대되는 것들이 결국 하나로 만난다는 생각이에요.
낮과 밤, 시작과 끝이 무한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거예요.
쿠자누스는 이것을 신의 본성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봤어요.
뱃사공 아들과 추기경, 무지와 학문, 유한과 무한.
이 모든 대립이 하나로 만난다는 거예요.
그의 인생 자체가 그 명제의 살아있는 증명이었던 셈이에요.
쿠자누스가 전 재산을 가난한 33명에게 남겼다
평생 무한을 논한 사람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고른 숫자는 33이었어요.
1458년 무렵, 쿠자누스는 고향 쿠스에 쿠자누스 재단(Cusanusstift)을 세웠어요.
지금도 운영 중인 호스피스, 즉 노인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요양원이에요.
전 재산을 재단에 넘겼어요.
그리고 평생 모은 책 314권도 함께 기증했어요.
15세기에 개인이 책 314권을 소장했다는 건 지금으로 치면 작은 도서관을 통째로 가진 것과 같아요.
입소 정원은 딱 33명이었어요.
예수가 살았다고 전해지는 나이와 같은 숫자예요.
한 명도 더 받지 않았어요.
무한을 가르친 사람이 왜 하필 33명만 받았을까요.
그 질문에 쿠자누스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