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가 자기 철학 이름을 추하게 만든 진짜 이유
기호학 창시자 퍼스는 사생활 때문에 학계에서 추방됐다
1884년 봄, 미국 최고의 논리학자는 강의실에서 자기 책을 직접 싸들고 나와야 했어요.
찰스 샌더스 퍼스는 그 시절 존스홉킨스대학 논리학 강사였어요.
하버드 수학과 교수의 아들로 태어나, 당대 미국에서 기호학과 논리학을 가장 깊이 이해한 사람이었죠.
그런데 이사회가 그를 내쫓기로 결정한 이유는 논리학과 전혀 상관이 없었어요.
첫 부인과 이혼이 아직 확정되기 전에 두 번째 아내 줄리엣과 동거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거예요.
그게 전부였어요.
이사회는 즉시 그를 해고했고, 이후 어떤 미국 대학도 퍼스에게 정규직 자리를 주지 않았어요.
오늘로 치면 이런 상황이에요.
능력은 모두가 인정하는데, 인사 검증에서 한 줄 걸려 어느 회사도 정직원으로 안 써주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이 그 분야에서 역대 가장 독창적인 인물이라면요.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퍼스의 철학을 대신 유명하게 만들었다
자기 철학을 세상에 알린 사람은 정작 자기 자신이 아니었어요.
1898년,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강연에서 이 이름을 처음 대중 앞에 꺼냈어요.
"이 사상은 내 친구 찰스 퍼스가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서 프래그머티즘이라는 단어를 소개했어요.
프래그머티즘은 쉽게 말하면 "어떤 생각이 현실에서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가 그 생각의 의미"라는 철학이에요.
그런데 제임스가 대중에 전한 버전은 훨씬 단순했어요.
"쓸모 있으면 진리다"라는 식으로 요약된 거예요.
퍼스가 만든 철학이 맞는데, 퍼스가 의도한 내용은 아니었어요.
학계 바깥에 있던 퍼스는 강하게 반대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어요.
결국 친구의 호의 어린 소개가 평생의 고통이 된 거예요.
내가 만든 제품을 더 유명한 동료가 무대에서 단순화해 발표하고, 그 단순화된 버전이 업계 표준이 되어버린 창업자의 상황이에요.
퍼스는 정확히 그 자리에 있었어요.
퍼스는 자기 철학 이름을 일부러 못생긴 단어로 바꿨다
퍼스는 1905년 자기 철학 이름에 음절 하나를 더 붙여 일부러 발음을 망가뜨렸어요.
그해 미국 철학 잡지 The Monist에 실린 글에서 퍼스는 선언했어요.
"나는 내 철학을 지금부터 'pragmaticism(프래그머티시즘)'이라 부르겠다."
이유도 직접 썼어요.
"납치범들로부터 안전할 만큼 충분히 못생긴 이름이라 좋다."
자기가 만든 이름을 지키기 위해, 그 이름을 일부러 망가뜨린 거예요.
자식에게 일부러 못생긴 이름을 붙여 아무도 데려가지 못하게 한 부모와 같아요.
퍼스가 생각하는 프래그머티즘은 "편하면 진리"가 아니었어요.
진리는 실험과 검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훨씬 엄밀한 주장이었어요.
"쓸모 있으면 진리"로 요약해버린 제임스 버전은 퍼스에게는 왜곡이었던 거예요.
그러니 새 이름을 만들었어요.
발음하기도 불편하고, 외우기도 어렵고, 기억하기도 싫은 그 이름으로요.
"아무도 이 이름을 빼앗아 함부로 쓰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퍼스는 굶주리며 10만 페이지를 남기고 죽었다
퍼스가 죽었을 때 그의 책상에는 출간되지 못한 원고 10만 페이지가 쌓여 있었어요.
1887년, 퍼스는 펜실베이니아 밀포드 외곽의 낡은 집으로 이사했어요.
그 집에 Arisbe라는 이름을 직접 붙였어요.
하지만 그게 평생 떠나지 못할 마지막 거처가 될 줄은 몰랐겠죠.
난방비도 못 낼 만큼 가난했어요.
그나마 윌리엄 제임스가 친구들에게 직접 호소해 만든 익명 후원금 덕분에 겨우 끼니를 이었어요.
이 모금은 나중에 'Peirce Fund'라고 불렸어요.
1914년 4월 19일, 퍼스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책상에는 아무도 읽지 않은 원고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어요.
하버드대학은 이 원고 전체를 단돈 500달러에 인수했어요.
오늘날 물가로 환산해도 우스울 만큼 적은 금액이에요.
그리고 그 원고는 10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정리가 끝나지 않았어요.
어쩌면 퍼스는 아직 말이 끝나지 않은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