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가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은 이유와 80년의 일상
칸트의 산책으로 동네 사람들은 시계를 맞췄다
18세기 쾨니히스베르크 사람들은 시계를 보고 시간을 안 게 아니었어요.
칸트가 집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 알았어요.
쾨니히스베르크는 지금의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자리에 있던 프로이센의 항구 도시예요.
이마누엘 칸트는 이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40년 가까이 매일 오후 정확히 같은 시각에 회색 코트를 입고 같은 길을 걸었어요.
19세기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이 풍경을 이렇게 적었어요.
"칸트가 회색 코트를 입고 집 문을 나서면 정확히 3시 반이었다."
그는 산책 시각만 고정한 게 아니었어요.
잠드는 시각, 글 쓰는 시각, 밥 먹는 시각까지 평생 거의 바꾸지 않았어요.
동네 사람들이 시계 대신 칸트를 쓸 수 있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반전이 있어요.
가장 단조롭고 좁은 일상을 살았던 이 사람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멀리 닿는 사상 중 하나를 썼어요.
그것도 평생 그 도시 밖을 거의 벗어나지 않은 채로요.
칸트의 40년 산책은 단 한 권의 책 앞에서 멈췄다
칸트가 40년 지킨 절대 규칙을 깬 것은 사람도 사건도 아닌, 한 권의 책이었어요.
1762년, 프랑스 철학자 장자크 루소가 『에밀』이라는 책을 펴냈어요.
어린이 교육과 자연 상태의 인간을 다룬 1000페이지짜리 철학서예요.
"인간은 본래 선하다, 하지만 사회가 망친다"는 주장이 핵심이었어요.
칸트가 이 책을 손에 들었어요.
그리고 며칠간 산책을 걸렀어요.
40년 동안 단 한 번도 빠진 적 없던 그 산책을요.
칸트는 평생 검소하게 살면서 서재에 초상화 하나만 걸어뒀어요.
루소의 초상화였어요.
그리고 이런 말을 직접 적었어요.
"루소가 나를 바로잡았다."
칸트는 원래 지식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학자였어요.
하지만 루소를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배운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 지식보다 도덕이 먼저라는 것을 루소에게서 배웠어요.
이 전환이 훗날 칸트 철학 전체의 뿌리가 돼요.
루소가 없었다면 칸트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칸트는 다른 도시의 교수 자리를 세 번 거절했다
칸트에게는 베를린도, 에를랑겐도, 예나도 갈 기회가 있었어요.
그가 가고 싶은 도시는 단 하나뿐이었어요.
1764년,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시학 교수직을 제안받았어요.
시학이란 시와 문학의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인데, 칸트는 이 자리가 자기 방향이 아니라고 보고 거절했어요.
5년 뒤인 1769년, 이번엔 독일 남부의 명망 있는 에를랑겐 대학에서 정교수 자리가 왔어요.
지금으로 치면 지방 연구소에 있다가 수도권 유명 대학 본교 정교수로 스카우트된 거예요.
칸트는 그것도 거절했어요.
그 다음 해에 예나 대학에서 또 제안이 왔어요.
이번에도 거절이었어요.
결국 같은 해, 칸트는 고향 쾨니히스베르크의 논리학·형이상학 정교수가 됐어요.
형이상학이란 "세상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따지는 철학의 핵심 분야예요.
세 번의 더 좋은 기회를 모두 거절하고, 태어난 도시의 교수가 된 거예요.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칸트는 11년을 조용히 쌓기 시작해요.
칸트는 57세에 같은 도시에서 첫 명저를 썼다
칸트는 50세까지 무명에 가까운 학자였어요.
죽을 때까지 같은 도시 안에 있었고요.
그 사이에 근대 철학이 다시 쓰였어요.
1770년 교수가 된 뒤, 칸트는 약 11년간 거의 책을 내지 않았어요.
강의만 했고, 논문도 드물었어요.
동료들 사이에선 "저 사람은 끝난 것 같다"는 말이 나돌았어요.
그리고 1781년, 57세의 칸트가 책 한 권을 내놨어요.
『순수이성비판』이에요.
인간이 "안다"고 할 때 그 앎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분석한 1000페이지짜리 철학서예요.
쉽게 말하면 이런 거예요.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만 알 수 있잖아요.
그런데 칸트는 "신이나 영혼이나 우주의 끝 같은 것은 감각 너머에 있어서 인간이 절대 알 수 없다"고 했어요.
당시로선 엄청난 도발이었어요.
"신은 존재한다"를 철학으로 증명하려던 모든 시도를 단번에 무력화했으니까요.
마지막 원고를 4, 5개월 만에 정리했다고 전해지지만, 그 내용을 10년 넘게 머릿속에서 쌓아온 거였어요.
1804년, 79세의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숨을 거뒀어요.
마지막 말은 독일어로 "Es ist gut"이었어요.
"이만하면 됐다"는 뜻이에요.
평생 같은 도시에서, 같은 시각에 산책하고, 같은 자리에서 글을 썼던 사람의 마지막 말이 "이만하면 됐다"라니.
그 담담함이 오히려 오래 남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