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투스 엠피리쿠스, 의학을 부정한 의사이자 회의주의자
의사 섹스투스는 환자를 보며 의학을 부정했다
섹스투스 엠피리쿠스는 환자를 진찰하면서, 같은 손으로 의학은 진리가 아니라고 적었어요.
2~3세기 무렵 그리스에서 활동한 의사이자 철학자인데, 이름부터가 이미 모순을 품고 있어요.
'엠피리쿠스(Empiricus)'는 '경험주의자'라는 뜻이에요.
그가 속한 경험학파(Empiric school)는 이론 대신 실제 관찰과 경험을 따르는 의사 집단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는 직접 환자를 보고, 약초를 쓰고, 결과를 확인하는 실천적 의사였죠.
그런데 그가 남긴 『피론주의 개요』를 펼치면 의외의 주장이 나와요.
이 책은 "어떤 것도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고대 회의주의 사상을 집대성한 저작이에요.
그는 그 책에서 의학 이론이 확실한 지식이 될 수 없다고 적었어요.
요리사가 "어떤 레시피도 정답일 수 없어요"라고 매일 외치면서 식당을 운영하는 상황이에요.
손님은 밥을 먹고 나가는데, 주방에서는 아무 레시피도 믿지 않는 사람이 요리하고 있는 거죠.
섹스투스가 정확히 그런 사람이었어요.
섹스투스가 학자들에게 던진 열 가지 함정
그는 진리를 찾으려 한 적이 없어요.
진리를 찾는 일을 그만두는 방법을 가르쳤어요.
『피론주의 개요』에는 '10가지 논법(ten modes)'이 정리돼 있어요.
같은 물이 사람마다 차갑게도 미지근하게도 느껴지고, 같은 행동이 한 문화에서는 미덕이고 다른 문화에서는 죄가 된다는 예시들이에요.
이 논법들은 진리를 발견하려고 만든 게 아니라, "판단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함정이었어요.
SNS에서 똑같은 음식 사진을 두고 누구는 "최고의 맛집", 누구는 "그냥 평범한 데"라고 평가하는 광경을 본 적 있죠?
두 사람 중 누가 맞는지 우리는 결코 결론 낼 수 없어요.
섹스투스는 이 장면을 2000년 전에 이미 수십 가지 버전으로 적어뒀어요.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학자들을 반박함』(Adversus Mathematicos)에서는 수학자, 문법학자, 음악가를 차례로 논리적으로 해체했어요.
수학의 숫자 개념부터 문법의 규칙까지, 그는 모든 학문의 기초에 "그게 정말 확실해요?"라는 질문을 꽂았어요.
섹스투스는 의심에서 평화를 발견했다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이 우리를 가장 지치게 만든다고, 그는 1800년 전에 이미 적어두었어요.
그의 해답은 '에포케(epoché)'였어요.
판단을 내리지 않고 그냥 보류해 두는 것, 어느 쪽이 맞는지 결정하지 않고 그냥 두는 태도예요.
그러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평정 상태에 이른다는 게 그의 주장이에요.
그 상태를 그는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불렀어요.
직역하면 '흔들림 없음', 오늘 말로 하면 내면의 고요예요.
보통 우리는 반대로 생각해요.
"모르겠다"고 하면 불안하고, 확신이 있어야 편하다고요.
하지만 섹스투스는 정반대였어요.
억지로 결론을 내리려는 강박이 오히려 불안의 원인이라고 봤거든요.
요즘 뉴스를 보면 매일 "어느 편이냐"는 질문을 받아요.
정치든 사회든 문화든, 모든 곳에서 입장을 밝히라는 압박이 있어요.
그때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게 도망이 아니라 처방일 수 있다고, 섹스투스는 1800년 전에 이미 써뒀어요.
섹스투스의 책이 데카르트를 깨운 1562년
1562년, 라틴어 번역본 한 권이 유럽을 흔들었어요.
1400년 전 잊혀 있던 그리스 의사가 쓴 책이었어요.
섹스투스의 저작은 중세 내내 유럽에서 거의 읽히지 않았어요.
그러다 프랑스 인쇄업자이자 학자인 앙리 에티엔(Henri Estienne)이 『피론주의 개요』를 라틴어로 번역해 출판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어요.
잊혔던 인디 밴드의 앨범이 수십 년 뒤 재발견되어 차세대 음악가 모두의 교본이 된 것과 같았어요.
가장 먼저 흔들린 사람은 프랑스 수필가 몽테뉴(Michel de Montaigne)였어요.
그는 자신의 좌우명을 섹스투스에서 직접 가져왔어요.
"내가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 그 유명한 문장이에요.
그리고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섹스투스의 회의론에 정면으로 답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어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주장을 이기려면, 반박할 수 없는 단 하나의 확실한 것을 찾아야 했어요.
그렇게 탄생한 문장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예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고 선언한 고대 의사의 책이, 결국 근대 철학의 출발점을 만들었어요.
섹스투스는 아마 그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니, 예상했다 해도 그걸 확실하다고는 말하지 않았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