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아르가 평생 거절한 결혼 서약과 51년 계약
보부아르는 14살에 신을 잃은 가톨릭 소녀였다
20세기 가장 유명한 무신론 페미니스트는 어릴 적 수녀가 되는 게 꿈이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파리의 부르주아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매일 미사를 드릴 만큼 독실했고, 집안은 온통 신앙으로 가득했다.
어린 보부아르도 신앙 안에서 자라며 수녀의 삶을 진지하게 꿈꿨다.
그런데 14살 어느 날, 그녀는 혼자 결론에 이르렀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생각은 평생 바뀌지 않았다.
가장 종교적인 환경이 가장 급진적인 무신론자를 길러낸 것이다.
신앙을 가장 깊이 들여다본 사람이 결국 그 신앙을 가장 먼저 내려놓는 아이러니였다.
보부아르는 21살에 아그레가시옹 사상 최연소였다
심사위원들은 1등을 사르트르에게 줬지만, 진짜 철학자는 보부아르였다고 나중에 인정했다.
아그레가시옹은 프랑스에서 가장 어렵기로 악명 높은 교사 자격시험이다.
한국의 사법고시처럼 합격하면 국가가 평생 교직을 보장해주는 관문이었다.
특히 철학 분야는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사실상 최고 학문 자격증이나 다름없었다.
1929년, 21살의 보부아르가 이 시험을 처음 응시해 최연소 합격자가 됐다.
2등으로.
1등을 차지한 장폴 사르트르는 그해 두 번째 도전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나중에 이렇게 증언했다.
"진짜 철학자는 보부아르였다."
그해 두 사람은 만났고, 결혼은 하지 않되 서로를 삶의 가장 중심에 두겠다는 '계약 연애'를 시작했다.
『제2의 성』은 출간 즉시 바티칸 금서가 됐다
책이 나온 그 주에 바티칸은 금서로 지정했고, 가장 친했던 카뮈는 절교를 통보했다.
1949년에 출간된 『제2의 성』은 여성 억압의 역사를 정면으로 분석한 1000페이지짜리 철학서였다.
출간 첫 주에만 2만 부가 팔렸다.
그리고 바티칸은 즉시 금서 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에 올렸다.
금서 목록이란 가톨릭 교회가 "이 책은 읽어서는 안 된다"고 공식 선언한 목록이다.
한번 여기에 오르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 위험한 책으로 낙인찍혔다.
다르게 말하면, 바티칸의 금지는 곧 전 세계에 뿌려진 가장 강력한 홍보이기도 했다.
책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이것이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여성성이란 본래 타고나는 게 아니라, 사회가 강요해서 만들어지는 거라는 뜻이다.
하지만 가장 아팠던 반응은 바티칸이 아니었다.
오랜 친구였던 알베르 카뮈는 "이 책은 프랑스 남성을 모욕했다"며 절교했다.
가장 가까운 동료 작가가 가장 먼저 등을 돌린 것이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무덤 옆에 묻혔다
결혼식을 평생 거부한 두 사람이 결국 같은 묘비 아래 누웠다.
1980년 사르트르가 세상을 떠났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가 미국 연인 돌로레스에게서 받았던 반지를 가져다 손가락에 끼고 6년을 더 살았다.
자기 연인의 또 다른 연인이 준 반지를 간직한 것이다.
1986년, 그 반지를 낀 채로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의 사르트르 옆에 묻혔다.
두 사람은 51년간 결혼하지 않았다.
같이 살지도 않았고, 각자 다른 연인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결국 같은 묘비에 나란히 새겨졌다.
"우리는 부부가 아니다"라고 평생 선언했던 두 사람.
그 고집이 어디에 닿았는지는, 파리의 두 무덤이 지금도 나란히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