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모어가 서명 하나로 죽은 날, 유토피아 저자의 마지막
토마스 모어가 만든 단어 유토피아는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그 말이 '없는 곳'이라는 뜻인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1516년, 영국의 학자 토마스 모어는 라틴어로 쓴 얇은 책을 한 권 출간했다.
책의 이름은 《유토피아》, 완벽한 이상사회를 묘사한 풍자 소설이었다.
그런데 제목을 뜯어보면 이상하다.
'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어 'ou(없다)'와 'topos(장소)'를 합친 말이다.
직역하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친구가 "완벽한 회사 얘기를 해줄게"라며 건넨 책 표지에 회사 이름이 '없는회사'라고 적혀 있는 격이다.
모어는 이상 사회를 그리면서도 제목에다 '그런 데는 없어'라는 자조를 새겼다.
그가 모순적이었던 게 아니다.
그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의 저자가 신교도 6명을 화형에 처했다
유토피아를 쓴 작가는 정작 자기 시대의 이단자들에게 한 줌의 관용도 없었다.
책 속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종교적 견해를 관용한다"고 모어 본인이 썼다.
하지만 1529년 영국 최고 법관인 대법관 자리에 오른 그는, 신교도 6명을 이단으로 화형에 처했다.
대법관이란 오늘날로 치면 대법원장과 법무부장관을 합친 자리다.
당시 유럽에는 종교개혁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 교회의 부패에 반기를 들었고, 그 영향으로 영국에도 개신교를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모어는 이들을 정면으로 탄압했다.
영어 성경을 소지한 사람들을 직접 심문하고, 불태웠다.
회사 비전 선언문에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직접 쓴 임원이 회의실에서는 다른 의견을 가진 직원을 한 명씩 해고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모어는 그 모순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에게 가톨릭 신앙은 이상이 아니라 질서였다.
유토피아는 소설 속의 꿈이었고, 지금 이 땅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곧 드러난다.
헨리 8세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종이 한 장을 거절했다
헨리 8세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는 토마스 모어였다.
그리고 그를 죽인 것도 헨리 8세였다.
두 사람은 정원을 함께 산책하며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를 만큼 친밀한 사이였다.
모어가 대법관 자리까지 오른 것도 왕의 전폭적인 신임 덕분이었다.
하지만 1532년, 모어는 그 자리를 스스로 내놓았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헨리 8세가 왕비와 이혼하고 새 여인과 결혼하려 했는데, 가톨릭 교회가 이를 허락하지 않자 왕은 교회를 통째로 바꿔버리기로 했다.
1534년, 그는 수장령(Act of Supremacy)을 선포했다.
수장령이란 '가톨릭 교황이 아닌 영국 국왕이 영국 교회의 수장'이라는 선언이다.
오늘날로 치면 한 나라 대통령이 "앞으로 우리나라 교회는 바티칸이 아니라 내가 관할한다"고 법으로 못 박은 것이다.
왕은 모어에게 그 선언문에 서명을 요구했다.
종이 한 장에 이름 한 줄만 쓰면 됐다.
모어는 거절했다.
모든 직위, 재산, 자유를 잃었고, 가족까지 거리에 나앉았다.
회장이 가장 신임하던 임원에게 "정관 한 줄만 동의해 달라"고 했는데, 그 한 줄 때문에 사표 내고 가족까지 거리에 나앉은 격이다.
왕의 오랜 친구였던 사람이 왜 그랬을까.
모어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왕의 충신이지만, 하느님의 충신이 먼저다."
토마스 모어는 단두대에 오르며 농담을 남겼다
1535년 7월 6일, 단두대 앞에서 토마스 모어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농담이었다.
처형장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며 그는 호송 관리에게 말했다.
"올라가는 건 좀 도와주시오, 내려오는 건 내가 알아서 하리다."
단두대에 올라서는 도끼를 든 사형집행인에게 또 한 마디를 건넸다.
"내 수염은 반역죄를 짓지 않았으니 잘리지 않게 해주시오."
그리고는 수염을 옆으로 비켜놓고 목을 댔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죽기 5분 전에 두 번이나 농담을 했다.
이 일화는 16세기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훗날 가톨릭 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죽는 방식이 삶 전체를 요약한 사례였다.
모어는 옳고 그름에 관해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신교도를 불태운 것도, 왕의 서명 요구를 거절한 것도, 죽음 앞에서 유머를 잃지 않은 것도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자기 기준이 너무 명확해서, 두려움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남는 질문은 하나다.
그 기준이 옳았느냐가 아니라, 우리는 과연 죽음 앞에서 농담을 할 수 있을 만큼 자기 삶을 믿고 있느냐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