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코 페르미: 종이 조각으로 핵폭발을 계산한 물리학의 교황
무오류의 교황이라 불리던 천재가 알루미늄 호일 한 장 때문에 인류의 운명을 놓쳤다
세상의 모든 물리 문제를 암산으로 풀어내던 엔리코 페르미는 동료들 사이에서 '물리학의 교황'이라 불렸습니다.
교황의 판결이 틀릴 수 없듯, 페르미가 내놓은 답은 언제나 정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도 인생에서 딱 한 번, 인류 역사를 바꿀 뻔한 거대한 발견을 눈앞에서 놓치고 맙니다.
1934년 로마에서 페르미는 원자핵에 중성자를 쏘아 보내는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성자는 전기를 띠지 않아 원자핵이라는 성벽을 쉽게 뚫고 들어가는 아주 작은 총알 같은 입자입니다.
그는 우라늄이라는 무거운 원소에 이 총알을 쏘면 더 무거운 '초우라늄' 원소가 만들어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실험 중 방해 신호를 막으려고 씌워둔 얇은 알루미늄 호일 한 장이 문제였습니다.
그 호일은 우라늄 핵이 반으로 쪼개지며 튀어나오는 강력한 에너지를 교묘하게 가로막아 버렸습니다.
페르미는 핵이 쪼개지는 '핵분열'이 일어났다는 증거를 보고도, 그것이 새로운 원소인 줄로만 착각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어. 호일 때문에 거대한 걸 못 본 거야."
나중에 이 사실을 깨달은 페르미는 허탈하게 웃으며 동료들에게 고백했습니다.
만약 그가 그때 핵분열을 발견했다면,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은 미국이 아닌 파시스트 치하의 이탈리아나 독일에서 먼저 태어났을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