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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플로티노스는 이름보다 먼저 얼굴을 지우려 한 철학자였다.
요즘으로 치면 프로필 사진도 싫고, 신분증 사진도 싫고, 단체 사진에서 늘 뒤돌아서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말한 주제는 놀랍게도 “세계 전체가 어디서 왔는가”였다.
제자 포르피리오스는 스승의 전기를 남긴 사람이다.
그 기록에 따르면 플로티노스는 자기 몸을 부끄러워했다고 해요.
몸은 진짜 내가 아니라, 잠깐 걸치고 있는 낡은 옷에 가깝다고 본 거죠.
그래서 초상을 그리자는 말도 거절해요.
“이미 몸이라는 그림자 속에 갇혀 있는데, 왜 그 그림자를 또 그리려 하느냐.”
이런 식의 생각이었을 거예요.
이 장면이 이상하게 강렬한 이유가 있어요.
우리는 보통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얼굴부터 찾잖아요.
검색창에 이름을 넣고, 사진을 보고, 그제야 “아,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마음속에 저장합니다.
하지만 플로티노스는 그 가장 쉬운 저장 방식을 거부했어요.
자기를 기억하려면 얼굴이 아니라 생각의 방향을 따라오라는 듯이요.
그래서 그의 철학은 처음부터 조금 불편합니다.
그는 세상을 아래에서 위로 보지 않았어요.
“나는 누구고, 이 세상은 뭐지?”에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반대로 물었어요.
“모든 것이 흘러나온 첫 근원은 무엇일까?”
그 첫 근원을 플로티노스는 일자라고 불렀습니다.
일자는 숫자 1이 아니라, 모든 것이 나오기 전의 가장 깊은 샘 같은 존재예요.
수돗물의 수도꼭지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물길이 시작되는 지하수맥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 샘을 말한 사람이 자기 얼굴이라는 작은 웅덩이는 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의 시작은 말하면서, 자기의 흔적은 지우려 한 사람.
여기서 플로티노스라는 인물은 철학책 밖으로 걸어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떠올리는 플로티노스의 얼굴은 거절에서 태어났다.
스승은 초상을 싫어했어요.
하지만 제자 포르피리오스는 그냥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화가 카르테리오스에게 부탁합니다.
카르테리오스는 플로티노스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 화가였어요.
포르피리오스는 그에게 말하죠.
“강의실에서 본 얼굴을 기억해 봐요. 그 기억으로 그려 주세요.”
이건 몰래카메라와 비슷합니다.
사진 찍히기 싫어하는 친구가 있는데, 결국 모두가 그 친구를 기억하는 사진은 누군가 몰래 남긴 한 장뿐인 상황이죠.
조금 미안하고, 동시에 이상하게 고맙습니다.
스승은 이미지를 거절했어요.
제자는 이미지를 보존했어요.
그래서 플로티노스의 얼굴은 순종이 아니라 작은 배신 덕분에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이 배신은 가벼운 배신이 아니에요.
포르피리오스는 스승을 유명하게 만들려고 초상을 남긴 게 아닙니다.
그는 사라지는 사람을 붙잡고 싶었을 거예요.
강의실의 플로티노스는 단순히 말 잘하는 선생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말은 학생들에게 방향을 바꾸게 하는 힘이 있었어요.
눈앞의 돈, 몸, 명예가 전부가 아니라면 무엇을 향해 살아야 하는지 묻게 했습니다.
플로티노스에게 세상은 벽돌처럼 조립된 물건이 아니었어요.
세상은 빛처럼 흘러나온 것이었습니다.
해가 빛을 억지로 짜내지 않듯, 일자도 세계를 일부러 제작한 장인이 아니라 넘쳐흐르는 근원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철학에서 중요한 말은 “만들었다”가 아니라 “흘러나왔다”입니다.
컵에 물이 차고 넘치면 바깥으로 흐르죠.
플로티노스가 본 세계도 그런 식이었어요.
일자에서 정신이 나오고, 정신에서 영혼이 나오고, 영혼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가 펼쳐집니다.
어렵게 들리지만, 손전등을 떠올리면 쉬워요.
가장 밝은 불빛에서 멀어질수록 빛은 약해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빛에서 온 것입니다.
제자는 그 빛을 말로만 남기기 아쉬웠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금지된 얼굴을 붙잡았습니다.
그림 한 장은 철학자의 뜻을 어겼지만, 철학자를 잊히지 않게 했습니다.
플로티노스의 일자는 도서관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세상을 낮게 본 사람처럼 보입니다.
몸을 부끄러워했고, 얼굴을 남기기 싫어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는 현실 정치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플로티노스는 갈리에누스 황제에게 청합니다.
갈리에누스는 로마 제국을 다스리던 황제였어요.
플로티노스는 그에게 이탈리아의 버려진 도시를 되살려 달라고 말합니다.
그 도시의 이름은 플라토노폴리스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뜻은 “플라톤의 도시”예요.
플라톤은 플로티노스보다 훨씬 앞서 살았던 그리스 철학자로, 좋은 나라와 좋은 삶을 함께 묻던 사람이었습니다.
플로티노스의 제안은 단순한 학원 설립이 아니었습니다.
“철학자들끼리 조용히 공부할 방 하나 주세요”가 아니었어요.
버려진 도시 하나를 통째로 바꾸자는 말이었습니다.
오늘로 치면 폐허가 된 지방 도시를 받아서, 그곳에 새로운 법과 생활 방식으로 움직이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책상 위의 이상을 지도 위의 땅으로 옮기려 한 거죠.
어? 진짜 철학자가 그런 일을 했다고? 싶어지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플로티노스가 더 흥미로워집니다.
그는 세상을 탈출하려는 사람만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세상이 근원에서 멀어졌다면, 다시 방향을 맞춰 볼 수 있다고 믿은 사람에 가깝습니다.
그에게 철학은 머릿속 체조가 아니었습니다.
삶의 배치를 바꾸는 일이었어요.
누가 무엇을 갖고, 어떻게 살고, 무엇을 귀하게 여기는지를 다시 짜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플라토노폴리스는 결국 세워지지 못합니다.
황제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다고 전해져요.
현실은 늘 생각보다 끈질깁니다.
그래도 이 실패는 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플로티노스의 진짜 욕망이 드러나니까요.
그는 더 깨끗한 영혼을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좋은 삶이 가능하다면, 그 삶이 실제 거리와 집과 법 안에서도 가능해야 하잖아.”
몸을 낮게 본 철학자가 도시를 꿈꿨습니다.
얼굴을 지우려 한 사람이 사람들이 함께 살 공간을 구상했습니다.
그 모순 때문에 플로티노스는 죽은 철학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플로티노스가 남긴 것은 얼굴이 아니라 세계가 흘러나오는 방향이었다.
그는 젊을 때부터 글을 쏟아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늦게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말로 가르치던 사람이 어느 순간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그 글들은 스스로 깔끔한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온 게 아닙니다.
사후에 제자 포르피리오스가 정리했습니다.
여기서 다시 제자의 손이 등장해요.
포르피리오스는 스승의 글을 여섯 묶음으로 나눴습니다.
각 묶음에는 아홉 편씩 들어갔어요.
그래서 그 책은 엔네아데스라고 불립니다.
엔네아데스는 “아홉 편씩 묶은 논문집”이라는 뜻입니다.
제목만 들으면 딱딱하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의 사유가 제자의 편집을 거쳐 살아남은 사건이에요.
원본 파일보다 편집본이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 경우와 비슷합니다.
플로티노스는 얼굴을 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이상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세계는 버려진 물건 더미가 아니라, 하나의 근원에서 흘러나온 것이라고요.
우리는 완전히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어딘가를 잊어버린 존재에 가깝다고요.
그래서 삶은 새로 얻는 일이 아니라 돌아가는 일일 수 있다고요.
여기서 “돌아간다”는 말도 거창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정신없이 알림을 따라가다 문득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내가 지금 뭘 향해 살고 있지?” 하고 묻는 순간입니다.
플로티노스에게 철학은 바로 그 방향 전환이었습니다.
바깥의 소음에서 안쪽의 빛으로.
흩어진 것들에서 하나의 근원으로.
그가 말한 일자는 붙잡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이름표를 붙일 수도 없고,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는 자기 얼굴도 남기고 싶지 않았을지 몰라요.
얼굴은 사람을 한 장면에 묶어 둡니다.
하지만 플로티노스가 남기고 싶었던 것은 장면이 아니라 흐름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멀어졌고,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흐름 말이에요.
그의 제자는 몰래 얼굴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글도 묶어 남겼습니다.
스승이 지우려 한 것과 스승이 전하려 한 것이 함께 살아남은 셈입니다.
그래서 플로티노스를 읽는 일은 한 철학자의 사상을 외우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 얼굴을 지우려 한 사람이 끝내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일입니다.
그 흔적 끝에서 그는 아직도 묻고 있는 듯합니다.
“너는 지금, 빛에서 멀어지는 중이야. 아니면 돌아가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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