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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과학자는 이미 존재하는 진실을 찾아내는 사람이라는 게 우리가 배워온 상식이에요. 파스퇴르가 세균을 '발견했고', 뉴턴이 중력을 '찾아냈다'는 식이죠. 그런데 브뤼노 라투르는 바로 이 지점을 의심했어요. 진실은 발견되는 게 아니라, 실험실이라는 공간에서 수많은 협상과 설득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봤거든요. 1979년 스티브 울거와 함께 쓴 《실험실 생활》은 라투르가 직접 소크 연구소에 들어가 과학자들을 인류학자처럼 관찰한 책이에요. 그가 목격한 건 논리적 탐구보다는 협상, 설득, 자원 확보의 과정이었어요. 과학이 사실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 특정 조건에서 '구성된다'는 생각의 출발점이었죠.
ANT, 즉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의 핵심은 단순해요. 세상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라투르는 행위자(actor)를 '다른 무언가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로 정의했는데, 여기엔 사람뿐 아니라 세균, 기계, 법률, 도로, 심지어 문 자동 닫힘 장치도 포함돼요. 이걸 '비인간 행위자'라고 불러요. 예를 들어 자동차 안전벨트는 그냥 물건이 아니에요. 안전벨트는 운전자의 행동을 바꾸고, 사고 통계를 바꾸고, 보험 제도까지 바꿔요. 이처럼 사물이 사회를 재구성한다는 게 ANT의 핵심이에요.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가 우리가 '사실'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거죠.

라투르의 가장 유명한 사례가 파스퇴르예요. 우리는 파스퇴르가 탄저균을 발견했다고 생각하지만, 라투르는 반대로 읽어요. 파스퇴르가 실험실이라는 공간을 설계하고, 농부와 군의관과 언론을 설득하고, 실험 결과를 공연하듯 시연하면서 '탄저균'이라는 행위자를 사회적으로 만들어냈다는 거예요. 세균이 먼저 존재한 게 아니라, 세균이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게 되는 과정 자체가 과학이라는 시각이에요. 이건 과학을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과학이 얼마나 복잡한 사회적 과정을 통해 작동하는지를 드러내는 작업이에요. 라투르는 과학을 공격한 게 아니라,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을 정직하게 보려 했던 거예요.

1991년 출간된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라투르의 가장 도전적인 책이에요. 근대인은 자연과 사회를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봐요. 자연은 객관적이고, 사회는 인간이 구성한 것이라는 이분법이죠. 그런데 현실에서 오존층 파괴, 에이즈 바이러스, GMO 작물 같은 문제들은 자연도 사회도 아닌, 둘이 뒤섞인 '혼성체(hybrid)'예요. 우리는 이걸 억지로 분리해서 이해하려다가 오히려 이해 못 하게 되는 거예요. 라투르는 근대성이 자연과 사회를 분리하는 '정화(purification)'를 이상으로 삼으면서, 실제로는 그 혼성체를 엄청나게 증식시켰다고 봐요. 분리하는 척하면서 더 많이 뒤섞어온 게 근대의 역설이라는 거죠.
라투르는 말년에 기후위기와 생태 문제에 집중했어요. 2017년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에서 그는 기후위기를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정치·존재론적 위기로 봤어요. 지구 자체가 하나의 행위자라는 거예요. 우리가 지구를 역사의 배경으로만 삼아왔지만, 이제 지구가 직접 반응하고 있다는 거죠. 그는 '가이아(Gaia)' 개념을 빌려, 지구를 단일 유기체가 아니라 수많은 행위자들이 얽힌 복잡한 네트워크로 보자고 제안했어요. 이 관점에서 기후 부정론자들은 단순히 무지한 게 아니라, 근대적 자연/사회 이분법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에요. 라투르에게 기후위기는 ANT 이론의 가장 실제적인 시험대였어요.

라투르가 평생 한 일을 한 줄로 압축하면 이렇게 돼요. '행위자는 인간만이 아니다.' 세균도, 기계도, 법도, 지구도 모두 네트워크 안에서 서로를 바꾸는 행위자예요. 이 생각은 과학철학, 사회학, 환경윤리, 디자인, 건축에까지 영향을 미쳤어요. 그가 불편하게 만드는 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구분들, 자연 vs 사회, 사실 vs 가치, 인간 vs 사물의 경계예요. 라투르를 읽고 나면 뉴스를 볼 때, 과학 기사를 읽을 때, 정책 논쟁을 들을 때 이런 질문이 생겨요. '이 사실은 누가 어떤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어낸 것인가?' 그 질문 하나만 가져가도 라투르를 읽은 값어치는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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