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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한 소녀가 책보다 예절을, 판단보다 순종을 더 오래 배우는 방을 떠올려 봐요.<br>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1759년 런던 스피탈필즈에서 태어나 1797년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고, 1792년 『여성의 권리 옹호』로 가장 잘 알려져 있어요.<br>
이 책은 여성을 가정교육에 묶어두려는 구상에 맞서는 글이기도 했어요.<br>
핵심은 단순히 학교 문을 열자는 말이 아니었어요.<br>
여성을 장식적 교양으로 다듬을 것인가, 아니면 이성과 판단을 지닌 인간으로 기를 것인가의 문제였죠.<br>
그래서 울스턴크래프트의 첫 질문은 능력 부족이 아니라, 능력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교육의 모양을 향했어요.<br>

사람들은 여성이 의존적이라고 말하며 더 좁은 교육을 허락했어요.<br>
그런데 좁게 길러진 결과를 다시 “원래 약하다”는 증거로 삼는다면, 그건 닫힌 방에 오래 둔 식물을 보고 햇빛을 못 견딘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해요.<br>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권리 옹호』에서 여성도 이성, 덕, 독립성을 기르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보았어요.<br>
덕은 얌전함이 아니라 판단하고 자신을 다스리는 힘에 가까웠고, 독립성은 남의 판단에만 매달리지 않는 상태였죠.<br>
그래서 반전은 분명해요.<br>
문제는 여성의 본성이 아니라 훈련된 열등함일 수 있다는 점이에요.<br>
그렇다면 이 교육론은 곧 정치적 권리와 시민성의 문제로도 이어지게 돼요.<br>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은 결혼 뒤 더 쉽게 의존의 자리로 밀려났어요.<br>
18세기 영국의 기혼 여성은 대체로 커버처라는 법리 아래 남편의 권위에 놓였고, 재산과 돈, 자녀에 대한 독자적 권리도 크게 제한되었어요.<br>
그러니 교육은 교양 문제가 아니었어요.<br>
울스턴크래프트가 프랑스혁명 논쟁 속에서 권리를 말하고, 1792년 『여성의 권리 옹호』로 나아간 흐름은 여기서 중요해져요.<br>
영국도서관은 이 책이 여성 교육 개혁론을 넘어, 여성의 권리를 남성과 같은 기반 위에 놓으려 했다고 설명해요.<br>
결국 핵심은 교육에서 시민성으로 옮겨가요.<br>
여성에게 예절을 더 가르치자는 말이 아니라, 권리를 감당할 이성적 시민으로 인정하라는 요구였던 거예요.<br>
그렇다면 왜 그녀는 곧바로 안정적인 철학자로 기억되지 못했을까요?<br>

한 사람을 “최초”라고 부르면 기억하기는 쉬워요.<br>
하지만 그 말이 때로는 최초보다 중요한 질문을 가려요.<br>
울스턴크래프트는 1797년 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 훗날 메리 셸리를 낳은 뒤 출산과 관련된 감염으로 세상을 떠났어요.<br>
NPG에 따르면 고드윈의 1798년 회고록은 매우 솔직한 서술로 이후 그녀의 대중적 인식에 큰 영향을 주었어요.<br>
그래도 20세기, 특히 1960년대 이후 영어권 페미니즘 속에서 그녀는 중요한 선구자로 다시 읽혔어요.<br>
다만 더 오래 남는 것은 표지가 아니라 질문이에요.<br>
여성이 낮아 보인다면, 정말 능력이 없어서일까요.<br>
아니면 그런 모습이 나오도록 교육과 관습이 먼저 길을 좁힌 걸까요.<br>
그녀의 급진성은 바로 이 능력 판단의 조건을 의심한 데 있었어요.<br>
울스턴크래프트가 바꾼 것은 “여성도 배워야 한다”는 문장 하나가 아니었어요.
그녀는 『여성의 권리 옹호』에서 여성을 장식적 교양에 맞추는 대신, 이성, 덕, 독립성을 기르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그녀의 급진성은 여성도 이성을 지녔다는 선언에만 있지 않고, 여성이 열등해 보이도록 만드는 교육과 관습의 구조를 의심한 데 있었어요.
평등을 말하려면 먼저 누가 어떤 배움의 조건 속에서 능력을 기를 기회를 얻는지 물어야 한다는 것, 그 질문이 오늘까지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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