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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프로타고라스의 가장 위험한 말은 신을 부정한 문장이 아니라, 인간을 기준으로 세운 한 문장이었어요.
그 말은 이겁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이 문장은 플라톤의 대화편 『테아이테토스』에 나와요.
『테아이테토스』는 "도대체 지식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철학 대화예요.
오늘로 치면 한 교실에서 선생과 학생이 "안다는 게 뭐야?"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장면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프로타고라스는 여기서 판을 바꿔버려요.
진리는 하늘 어딘가에 걸려 있는 금메달이 아니라는 거예요.
각 사람이 손에 들고 재는 자기만의 자에 가깝다고 말한 셈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바람을 맞아도 한 사람은 "춥다"고 해요.
다른 사람은 "시원하다"고 하죠.
프로타고라스라면 이렇게 말했을지 몰라요.
"둘 중 하나만 진짜라고 왜 정해야 하지? 그 사람에게 그렇게 느껴졌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게 현실이야."
이게 무서운 지점이에요.
그 시대 사람들은 대개 신, 자연, 전통에서 답을 찾으려 했어요.
프로타고라스는 고개를 돌려 사람의 감각과 판단을 보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각자 다른 뉴스 피드를 보고 사는 모습과 닮았죠.
같은 사건을 봐도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안도하고, 누군가는 음모라고 믿어요.
알고리즘이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우리는 이미 각자 다른 자로 세상을 재고 있거든요.
그래서 프로타고라스의 문장은 오래된 말인데도 이상하게 새롭습니다.
그는 "진리는 없다"고만 말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보다 더 불편하게, "네가 진리라고 부르는 것 안에는 네가 들어 있다"고 말한 사람에 가깝습니다.

프로타고라스가 위험해진 순간은 무언가를 단정했을 때가 아니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을 때였어요.
그는 『신들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신에 대해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책은 신이 있는지 없는지, 인간이 그것을 알 수 있는지 묻는 글이에요.
전해지는 그의 문장은 차갑고 짧습니다.
"신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이 말은 오늘 들으면 조심스러운 문장처럼 보여요.
그런데 당시 아테네에서는 폭탄처럼 들렸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회의실에서 "정답은 이겁니다"라고 말하길 기다리는데,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말한 셈이에요.
"증거가 부족합니다."
그는 "신은 없다"고 외친 게 아니에요.
오히려 더 까다로운 말을 했습니다.
"나는 모른다."
그런데 사람은 때로 틀린 확신보다 정직한 모름을 더 싫어해요.
확신은 편을 만들지만, 모름은 의자를 흔들거든요.
후대 기록은 아테네에서 그의 책이 불태워졌다고 전합니다.
두루마리 책이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것은 단순한 검열이 아니에요.
도시가 한 사람의 문장을 두려워했다는 뜻입니다.
프로타고라스는 여기서도 같은 태도를 보입니다.
신에 대해서도, 진리에 대해서도, 그는 쉽게 무릎 꿇지 않아요.
그는 믿음을 공격했다기보다 확신의 속도를 늦췄습니다.
그래서 더 미움을 샀을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종종 거짓말보다 망설임을 더 불온하게 보니까요.
프로타고라스는 지혜를 공짜로 나누는 현자가 아니라, 지혜를 값비싼 수업으로 만든 교사였어요.
그는 대표적인 소피스트였습니다.
소피스트는 젊은이들에게 말하기, 논쟁하기, 도시에서 판단하기를 가르치고 돈을 받던 교사들이에요.
오늘로 치면 입시 논술, 면접, 토론, 정치 컨설팅을 한꺼번에 가르치는 스타 강사에 가깝습니다.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성공하고 싶었어요.
시민들이 모여 말로 결정하는 도시에서는, 잘 말하는 사람이 힘을 얻었거든요.
그래서 부모들은 돈을 냈고, 젊은이들은 프로타고라스에게 갔습니다.
그는 단순히 말을 번지르르하게 꾸미는 법만 가르친 게 아니에요.
더 깊은 곳을 찔렀습니다.
"무엇이 옳은가?"
"그 옳음은 누구의 기준인가?"
이 질문은 수업을 듣는 학생을 이상한 곳으로 데려갑니다.
처음에는 재판에서 이기려고 왔어요.
그런데 듣다 보니 재판의 기준 자체가 흔들립니다.
입시 논술 선생이 글 잘 쓰는 법을 가르치다가 갑자기 말하는 셈이에요.
"그런데 채점 기준은 누가 정했지?"
여기서 프로타고라스는 불편한 교사가 됩니다.
그는 도시에서 성공하는 기술을 팔았어요.
하지만 동시에 도시가 당연하다고 믿는 옳고 그름도 흔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필요로 하면서도 불안해했을 겁니다.
그의 수업을 들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듣고 나면, 이긴다는 말의 뜻마저 다시 묻게 되니까요.
프로타고라스에게 가장 유명한 반격은 적이 아니라, 수업료를 미룬 제자에게서 왔어요.
후대 전승에 따르면 그 제자의 이름은 에우아틀로스입니다.
그는 프로타고라스에게 변론술, 즉 재판에서 말로 다투는 기술을 배운 젊은이예요.
둘의 약속은 기묘했습니다.
에우아틀로스가 첫 재판에서 이기면 수업료를 내기로 했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입니다.
실력이 증명되면 돈을 낸다.
오늘로 치면 "취업 성공하면 수강료를 내겠습니다" 같은 계약이죠.
그런데 에우아틀로스는 재판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러자 프로타고라스가 수업료를 받으려고 그를 고소합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갑자기 칼처럼 접혀요.
프로타고라스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기면 판결 때문에 돈을 받아야 한다. 네가 이겨도 너는 첫 재판에서 이긴 것이니 약속대로 돈을 내야 한다."
완벽한 덫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에우아틀로스도 배운 게 있죠.
그는 이렇게 받아칠 수 있습니다.
"제가 이기면 판결 때문에 돈을 안 내도 됩니다. 제가 지면 첫 재판에서 이긴 게 아니니 약속대로 돈을 안 내도 됩니다."
어? 진짜로 누가 이겨도 이상합니다.
스승이 이겨도 모순이 생기고, 제자가 이겨도 모순이 생겨요.
논쟁을 가르친 사람이 자기 수업료 때문에 논쟁의 미로에 갇힌 겁니다.
이 이야기가 실제로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조심해서 봐야 합니다.
하지만 전승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분명해요.
프로타고라스라는 인물을 너무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의 힘으로 도시를 흔든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그의 인생도 결국 말의 덫 안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됩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이 문장을 다시 읽으면 처음과 다르게 들립니다.
그 척도가 돈을 재고, 신을 재고, 옳고 그름을 재고, 스승과 제자의 계약까지 재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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