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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로티가 처음 붙잡은 문제는 진리가 아니라, 정의와 난초를 한 삶에 함께 넣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어요.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가예요.
로티 부모 세대의 급진 좌파에게 그는 “세상을 더 공정하게 바꿀 수 있다”는 상징 같은 이름이었죠.
집에서 그 이름이 오간다는 건, 오늘날 식탁에서 매일 정치 뉴스와 사회 개혁 이야기가 오가는 집에 산다는 뜻이에요.
로티는 그런 미국 좌파 지식인 가정에서 자랐어요.
이 말은 어려운 말 같지만, 쉽게 말해 집 안의 평범한 대화가 “학교 끝나고 뭐 먹을래?”만이 아니라 “불평등을 어떻게 고칠까?”까지 가는 환경이에요.
그래서 어린 로티에게 정의는 책 속 단어가 아니라 집 안 공기였어요.
그런데 로티에게는 또 하나의 사랑이 있었어요.
야생 난초예요.
로티가 어린 시절 좋아한 이 꽃은, 거대한 사회 정의와 상관없어 보이는 아주 개인적인 아름다움의 상징이에요.
여기서 이상한 균열이 생겨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데, 동시에 나만 좋아하는 아름다운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거죠.
“정의로운 사람이 되려면, 내가 사랑하는 사소한 기쁨까지 설명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로티 안에 남아요.
훗날 그는 이 긴장을 「트로츠키와 야생 난초」라는 에세이로 돌아봐요.
제목부터 거의 고백이에요.
“나는 혁명가도 필요했고, 난초도 필요했어”라고 말하는 사람의 제목이니까요.
그래서 로티의 출발점은 차가운 논문이 아니에요.
친구 생일 선물을 고르면서도 뉴스의 고통이 마음에 걸리는 사람의 갈등에 가까워요.
그는 처음부터 “진짜 세계의 공식”보다 “어떻게 살아야 내 삶이 찢어지지 않을까”를 묻고 있었어요.

로티가 철학의 거울을 깬 것은, 그 거울을 가장 오래 닦아 본 뒤였어요.
그는 바깥에서 돌을 던진 반항아가 아니에요.
시카고대와 예일대 박사과정을 거치며 전문 철학자가 되는 공식 코스를 밟아요.
예일대 박사과정은 말하자면 철학자 자격증을 받기 위한 가장 높은 훈련장 중 하나였어요.
젊은 로티가 익힌 세계는 분석철학이었어요.
분석철학은 말을 아주 정확히 나누고 따지면 철학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는 흐름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회사의 모든 문제를 “매뉴얼 문장부터 정확히 고치자”로 해결하려는 엘리트 문화에 가까워요.
그런데 로티는 그 매뉴얼을 대충 읽지 않았어요.
오히려 누구보다 열심히 읽었어요.
그래서 1967년에 『언어적 전환』을 편집할 수 있었죠.
『언어적 전환』은 철학 문제가 세계 그 자체보다 우리가 쓰는 말에서 생긴다고 보는 글들을 묶은 책이에요.
쉽게 말해 “창밖을 보자”가 아니라 “우리가 창밖이라고 부르는 말을 먼저 보자”는 흐름을 정리한 책이에요.
로티는 그 논쟁의 한복판에서 지도까지 그린 사람이었어요.
바로 여기서 반전이 생겨요.
그는 규칙을 몰라서 의심한 게 아니에요.
규칙을 너무 잘 알게 된 뒤, “그런데 이 게임판 자체가 너무 좁은 것 아닌가?”라고 묻기 시작해요.
회사로 치면 이런 장면이에요.
최고 성과를 낸 직원이 어느 날 회의실에서 조용히 말해요.
“이 매뉴얼은 완벽한데, 우리가 사람을 매뉴얼 안에 가두고 있는 것 같아요.”

로티가 깨뜨린 거울은 유리 조각이 아니라, 철학자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특권이었어요.
1979년 로티는 『철학과 자연의 거울』을 내요.
이 책은 철학이 진리를 비추는 특별한 거울이라는 생각을 공격한 대표작이에요.
말하자면 철학자들이 오래 들고 있던 “우리가 현실을 가장 정확히 비춰 줄게”라는 인증 도장을 의심한 책이에요.
그가 겨눈 생각은 표상주의였어요.
표상주의는 마음이나 언어가 바깥세계를 사진처럼 정확히 옮겨야 지식이 된다고 보는 생각이에요.
시험 답안처럼 “현실과 딱 맞으면 정답, 아니면 오답”이라고 보는 태도에 가까워요.
하지만 사진도 현실 전체는 아니잖아요.
어디서 찍었는지, 왜 찍었는지, 무엇을 잘라냈는지에 따라 같은 사람도 전혀 다르게 보여요.
로티는 지식도 그렇게 봐야 한다고 밀어붙여요.
그래서 그는 철학을 재판관 자리에서 끌어내려요.
철학이 “이것이 최종 진리다”라고 판결하는 법원이 아니라, 사람들이 더 나은 말과 습관을 만들어 가는 대화일 수 있다는 거예요.
이 말은 철학과 안에서는 꽤 위험한 말이에요.
여기서 신실용주의가 나와요.
신실용주의는 진리를 하늘 어딘가에 있는 완벽한 기준으로 보지 않고, 사람들이 문제를 풀며 만들어 낸 유용한 말과 습관으로 보려는 로티식 흐름이에요.
망치가 “우주의 본질”이라서 좋은 게 아니라, 못을 박고 집을 고치는 데 쓸모가 있어서 좋은 것과 비슷해요.
결국 로티의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요.
“우리 생각이 세계를 정확히 복사했나?”가 아니에요.
“이 말은 우리를 덜 잔인하게 만들고, 더 자유롭게 대화하게 하나?”에 가까워져요.
로티는 철학을 버린 것이 아니라, 철학이 혼자 왕 노릇을 하는 자리를 버렸어요.
그는 프린스턴 철학과 교수였어요.
프린스턴 철학과는 20세기 미국 철학에서 아주 높은 권위를 가진 중심 무대예요.
오늘날로 치면 업계 최고 회사의 핵심 부서에서 이미 인정받은 사람에 가까워요.
그런데 로티는 그 중심에서 조금씩 멀어져요.
버지니아대 인문학 교수가 되고, 이후 스탠퍼드대 비교문학 교수로 옮겨요.
인문학 교수는 한 전공의 울타리만 지키기보다 문학, 역사, 정치, 철학을 함께 다루는 자리예요.
비교문학은 여러 언어와 문화의 문학을 함께 읽으며 인간이 어떤 말로 자신을 설명하는지 보는 분야예요.
쉽게 말해 한 나라 교과서만 보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일기와 소설과 연설을 나란히 펼쳐 놓는 일이에요.
로티에게는 이 넓은 책상이 더 맞았던 거죠.
그의 후기 대표작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도 이 이동을 보여줘요.
이 책은 확실한 진리보다 우리가 우연히 배운 말, 스스로를 의심하는 태도, 타인과 함께 서려는 마음을 강조해요.
“내가 가진 말이 절대 기준은 아닐 수 있어”라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하지는 말자”는 쪽으로 가요.
그래서 로티는 철학을 작게 만든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철학을 문학과 정치와 일상의 대화 속으로 풀어 놓은 사람이에요.
철학자가 왕좌에 앉아 명령하는 장면보다, 여러 사람이 긴 테이블에 앉아 말을 고쳐 가는 장면을 택한 셈이에요.
처음의 소년 로티를 다시 떠올리게 돼요.
트로츠키와 난초를 한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요.
그 아이는 끝내 거울을 닦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덜 외롭게 부를 수 있는 말을 찾는 사람이 된 것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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