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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콰메 앤서니 아피아는 우리가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쓰는 시대에, 그 단어가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장 날카롭게 파헤친 철학자다. 인종, 민족, 종교, 성별, 국적 — 우리는 이 단어들로 서로를 규정하고, 때로는 공격하고, 때로는 보호하려 한다. 아피아는 이 모든 것이 ‘이야기’라는 점을, 그리고 그 이야기가 때로는 우리를 속인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의 대표작 《우리를 나누는 것들》(The Lies That Bind)에서 그는 “정체성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갈라놓는 거짓된 끈”일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오늘날처럼 정체성 정치가 극도로 양극화된 상황에서, 그의 목소리는 단순한 ‘다양성 찬양’도, ‘정체성 무시’도 아닌, 훨씬 더 미묘하고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아피아가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은, 정체성이 본질적·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서사(narrative)’라는 것이다. 우리는 특정 집단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내면화하며, 그 이야기에 맞춰 행동한다.
예를 들어 ‘흑인’이라는 정체성은 생물학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강력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때로는 억압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저항과 연대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 ‘이야기’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 통찰은 우리에게 큰 자유를 준다. 만약 정체성이 이야기라면, 우리는 그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바꿀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피아를 읽고 “그래, 결국 다 이야기구나”라고 단순화한다. 그러나 그가 진짜로 강조하는 것은 ‘명예(Honor)’와 ‘도덕 혁명’이다.
아피아는 《명예의 코드》에서, 과거에 노예제 폐지나 여성 참정권 같은 큰 도덕적 변화가 일어날 때, 단순한 ‘이성이 승리’한 것이 아니라, ‘명예’의 코드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사람들이 ‘이런 행동은 명예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감정 자체가 변한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통찰이다. 혐오와 배제의 언어가 다시 힘을 얻고 있는 시대에, 단순히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무엇을 ‘명예로운 일’로 느끼는지, 그 감정의 구조 자체를 바꿔야 진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아피아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실천적인 교훈은 이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으려는 태도, 그러나 그 이야기에 갇히지 않는 용기.
우리는 종종 ‘이해’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정체성을 고정시키려 한다. “너는 ~인이니까 이렇게 생각하겠지.” 아피아는 이런 태도가 오히려 타자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짜 존중은,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바꿀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코스모폴리터니즘은 뿌리 없는 세계시민주의가 아니다. 아피아의 코스모폴리터니즘은, 각자가 자신이 속한 이야기들을 소중히 하면서도, 그 이야기 너머에 있는 다른 인간을 끝까지 ‘이해하려 노력’하는 태도다.
그 노력은 때로는 실패할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것 — 그것이 아피아가 말하는 성숙한 인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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