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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여러분, 기근이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이런 그림이 떠올라요. 비가 안 와서 농사가 망하고, 들판이 텅 비고, 먹을 게 아예 없어서 사람들이 굶는 모습이요. 그러니까 "먹을 게 없으니까 굶는 거지" 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 한 경제학자가 이 당연해 보이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어요. 창고에 쌀이 멀쩡히 쌓여 있는데도 바로 그 옆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거든요. 먹을 게 있는데 왜 굶을까요? 이 이상한 질문을 평생 붙잡은 사람이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이에요. 오늘은 센이 찾아낸 답을 같이 따라가 볼게요.
센은 1933년에 인도에서 태어났어요. 그가 아홉 살이던 1943년, 그가 살던 벵골 지역에 큰 기근이 닥쳤어요. 이때 2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굶어 죽었다고 해요. 웬만한 큰 도시 하나의 사람들이 통째로 사라진 셈이죠.
어린 센이 보기에 이상한 게 하나 있었어요. 굶어 죽는 사람은 거의 다 시골의 가난한 일꾼들이었거든요. 어부, 날품팔이, 남의 집 머슴 같은 사람들이요. 정작 도시의 시장과 가게에는 음식이 놓여 있었어요. 학자가 된 뒤에도 그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옛 기록을 꼼꼼히 뒤졌죠. 그랬더니 놀라운 사실이 나왔어요. 1943년 벵골의 식량은 그 전 몇 해와 비교해 크게 줄지 않았던 거예요. 쌀은 그대로 있었어요. 그런데 왜 그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요?

여기서 센의 핵심 생각이 나와요. 음식이 세상에 얼마나 있느냐보다, 그 음식을 내 손에 가져올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해 봐요. 편의점에 빵이 백 개 쌓여 있어도, 내 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으면 그 빵은 내 것이 아니에요. 빵이 없는 게 아니라, 빵을 가질 힘이 없는 거죠. 센은 이 "음식을 손에 넣을 수 있는 힘"이 사람마다 다르고, 또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데 주목했어요.
벵골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전쟁 중이라 물가가 갑자기 치솟았어요. 쌀값이 몇 배로 뛰었죠. 그런데 시골 일꾼들의 품삯은 그대로였어요. 어제까지는 하루 일해서 쌀 한 됫박을 샀다면, 오늘은 같은 돈으로 한 줌밖에 못 사는 거예요. 쌀은 시장에 분명히 있는데, 그걸 살 힘이 스르르 사라진 거죠. 그래서 굶었어요.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라, 먹을 걸 가질 수 없어서요. 센은 기근을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살 힘이 무너지는 일로 다시 본 거예요.

그럼 이런 일을 어떻게 막을까요? 센이 내놓은 답이 또 재미있어요. 그는 세계 곳곳의 기근을 쭉 살펴보다가 한 가지 규칙을 발견했어요. 선거가 제대로 치러지고 신문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나라에서는 큰 기근이 일어난 적이 없다는 거예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해요. 시골에서 사람들이 굶기 시작하면 신문이 그 소식을 알려요. 그러면 온 나라가 알게 되죠. 다음 선거에서 표를 잃기 싫은 정치인들은 부랴부랴 식량을 풀고 일자리를 만들어요. 굶는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 목소리가 윗사람한테 닿는 나라에서는 기근이 손쓸 수 없을 만큼 커지기 전에 멈춰요. 반대로 아무도 그 소식을 말하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윗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요. 그래서 센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멋진 구호일 뿐 아니라, 사람을 굶어 죽지 않게 막는 아주 현실적인 장치라고 봤어요.

센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어요. 그럼 잘산다는 건 대체 뭘까 하는 질문이에요. 보통은 돈이 얼마나 많으냐로 따지죠. 그런데 센은 돈은 수단일 뿐이라고 봤어요. 정말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느냐는 거예요.
예를 들어 볼게요. 똑같이 만 원을 가진 두 사람이 있어요. 한 명은 가까이에 학교도 있고 병원도 있어요. 다른 한 명은 글을 배운 적이 없고 아파도 갈 곳이 없어요. 지갑 속 돈은 같아도 두 사람이 살 수 있는 삶은 전혀 달라요. 센은 이렇게 사람이 실제로 누릴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게 진짜 발전이라고 했어요. 굶지 않는 것, 글을 읽는 것, 아프면 치료받는 것, 이런 자유가 하나씩 늘어나는 게 잘사는 거라고요. 이 생각으로 그는 1998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어요.

기근은 먹을 게 없어서 일어나는 일처럼 보이지만, 센은 그게 다가 아니라고 알려 줬어요. 음식이 있어도 그걸 살 힘을 잃으면 사람은 굶어요. 그래서 품삯과 물가, 그리고 굶는 사람의 목소리가 윗사람한테 닿느냐가 중요하죠. 잘산다는 것도 지갑의 두께가 아니라, 굶지 않고 배우고 치료받을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넓은가의 문제예요. 다음에 "먹을 게 모자라서 굶는다"는 말을 들으면, 한 번쯤 이렇게 물어봐도 좋겠어요. 정말 음식이 모자란 걸까, 아니면 그걸 가질 힘이 사라진 걸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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