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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누가 "나는 이걸 믿어"라고 말하면 우리는 보통 더 캐묻지 않아요. 믿음은 마음의 일이고, 증명하는 건 수학이나 과학의 일이라고 여기니까요. 그런데 800년쯤 전 페르시아에 살던 한 학자는 생각이 달랐어요. 그는 믿음도 따져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죠. 마음이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한 단계씩 이유를 밟아 가며 "그래서 이게 맞다"고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 사람이 바로 나시르 알딘 투시예요.

투시는 1201년부터 1274년까지, 일흔세 해를 산 페르시아 학자예요. 지금의 이란 동북부 투스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죠. 한 가지만 잘한 사람이 아니라 윤리와 논리, 그리고 별을 관찰하는 천문학까지 두루 깊었던 만능형 학자였어요. 요즘으로 치면 철학 교수이면서 동시에 천문대 대장을 겸한 셈이죠.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산속 요새에 자리 잡은 한 종파의 보호 아래 학문을 했는데, 1256년 몽골 군대가 그 요새를 무너뜨려요. 투시는 이때 몽골의 지배자 훌라구의 곁으로 자리를 옮겨, 오히려 그를 설득해 큰 학문 사업을 벌이게 돼요.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공부를 멈추지 않은 사람이었던 거죠. 그리고 그는 시아파 무슬림이었어요. 시아파는 이슬람 안의 한 갈래인데, 투시는 이 시아파의 신학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정리한 사람으로 기억돼요.

요리를 떠올려 볼게요. 할머니가 손맛으로 끓이던 국이 있어요. 맛은 분명히 좋은데, 왜 맛있는지 말로 설명하긴 어렵죠. 그런데 누군가 그 국을 "소금은 몇 그램, 끓이는 시간은 몇 분"처럼 레시피로 적어 두면, 다른 사람도 똑같이 만들고 어디가 맞는지 따져 볼 수 있게 돼요.
투시가 신학에 한 일이 이것과 비슷해요. 그전까지 신앙은 "이렇게 믿는다"는 마음에 가까웠어요. 투시는 여기에 철학을, 그러니까 한 걸음씩 이유를 잇는 논리의 사고법을 더했어요. "이것이 참이면 저것도 참이다" 하는 식으로 차근차근 쌓아 올린 거죠. 그가 쓴 『타지리드 알이티카드』라는 책은 시아 신학을 이렇게 논리로 정리한 첫 교과서가 됐어요. 놀랍게도 이 책은 8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란의 신학교에서 읽히고 있어요.

그렇다면 투시는 그 논리를 어디서 가져왔을까요. 그는 자기보다 200년 가까이 앞서 살았던 위대한 철학자 이븐 시나의 사상을 깊이 파고들었어요. 이븐 시나는 유럽에 아비센나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의학과 철학을 아우른 대학자였죠.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요. 투시보다 한 세대 앞선 어떤 학자가 이븐 시나의 대표작을 조목조목 비판한 적이 있어요. 그러자 투시는 그 비판을 하나하나 다시 따져 가며, 이븐 시나를 변호하는 주석서를 써냈어요. 마치 토론에서 친구의 빈자리를 대신 메우며 상대의 반박을 되받아치듯이요. 이렇게 갈고닦은 철학의 도구를, 투시는 다시 신학으로 가져와 믿음을 설명하는 데 썼던 거예요.

투시의 머리는 한 곳에 머물지 않았어요. 그는 『아흘라크 나시리』라는 윤리학 책도 썼는데,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사람이 되는지를 차근차근 풀어낸 책이에요. 좋은 삶도 그때그때의 기분이 아니라 이치로 설명하려 한 거죠. 이 책은 페르시아어로 쓰인 윤리학의 대표작으로 오래 읽혔어요.
별을 보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는 1259년 마라가라는 곳에 큰 천문대를 세웠어요. 거기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학자들이 모였고, 딸린 도서관에는 장서가 수십만 권에 이르렀다고 전해져요. 웬만한 시립도서관 여러 개를 합친 분량이죠. 학자들은 그곳에서 별의 움직임을 오랫동안 다시 측정해 새로운 천문표를 만들었어요. 또 투시는 '투시 커플'이라 불리는 수학 장치를 고안했는데, 두 개의 원운동을 겹치면 곧은 직선 운동이 나오는 아이디어였어요. 이 생각은 훗날 유럽의 천문학자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투시가 한 일을 한마디로 하면, '믿는 것'과 '따지는 것'을 갈라놓지 않은 거예요. 신앙은 신앙대로, 과학은 과학대로 따로 노는 게 아니라, 같은 머리로 함께 다룰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 줬죠. 윤리를 논리로 풀고, 신학을 철학으로 받치고, 별을 수학으로 계산하면서요. 흩어져 있던 이슬람 세계의 철학과 과학이 한 사람 안에서 만난 셈이에요. 그래서 그는 오늘날까지 이슬람 지성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으로 남아 있어요.

투시는 믿음도 이유를 들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페르시아 학자예요. 손맛으로 끓이던 국을 레시피로 적듯이, 그는 시아 신학에 한 걸음씩 따지는 철학의 방법을 더했어요. 그 철학은 이븐 시나 같은 앞선 학자에게서 빌려 와 갈고닦은 것이었고요. 윤리는 윤리대로, 별은 별대로 따로 보지 않고 같은 논리의 머리로 풀어냈어요. 믿는 것과 따지는 것은 원수가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다는 것, 그게 800년이 지나도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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