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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할머니 두 분이 계신다고 생각해 볼게요. 한 분은 채소를 알맞게 데치는 법을 알고, 다른 한 분은 그 채소로 어떤 마음을 담아 밥상을 차려야 하는지를 알아요. 두 솜씨를 한 식탁에 모으면, 따로 있을 때보다 훨씬 든든한 한 끼가 나오겠죠. 오늘 이야기할 나시르 알딘 투시라는 학자가 한 일이 딱 이거예요. 한쪽에는 옛 그리스 사람들이 정리해 둔 '잘 사는 법'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그가 자란 이슬람 세계의 믿음과 마음가짐이 있었어요. 투시는 이 둘을 한 그릇에 담아 보려 했답니다.

투시는 지금의 이란 땅, 투스라는 도시에서 1201년에 태어났어요. 이름 뒤에 붙은 '투시'가 바로 그 고향 이름이에요. 그는 한 가지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따지는 윤리학, 생각을 어긋나지 않게 잇는 논리학, 그리고 밤하늘 별의 움직임을 재는 천문학까지 두루 깊이 팠어요. 한 사람이 마음공부와 별 관측을 함께 했다는 게 신기하죠. 게다가 그가 산 시절은 몽골 군대가 온 세상을 휩쓸던 때라, 그는 무너지는 도시들 사이에서 책과 지식을 지켜낸 사람이기도 해요. 1274년에 73년의 삶을 마칠 때까지요.

투시보다 1500년쯤 앞서 살았던 그리스 사람들, 그중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학자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행복할까'를 오래 고민했어요. 그가 내놓은 답은 의외로 단순해요. 좋은 성품을 꾸준히 길러서 몸에 배게 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 좋은 성품은 늘 '한가운데'에 있다고 봤어요. 예를 들어 볼게요. 무서워서 벌벌 떨기만 하면 비겁한 거고, 앞뒤 안 가리고 덤비면 무모한 거예요. 그 사이 알맞은 자리에 '용기'가 있어요. 돈을 너무 움켜쥐면 인색하고, 마구 쓰면 헤픈 거고, 그 가운데에 '베풂'이 있고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가운데를 찾는 연습, 그게 그리스 사람들이 말한 잘 사는 법이었어요.

투시는 이 그리스식 설명서를 그냥 베끼지 않았어요. 자기가 자란 이슬람 세계의 눈으로 다시 풀어 썼어요. 그렇게 나온 책이 '나시르 윤리학'이에요. 1230년대에 쓴 이 책에서 그는 말해요. 좋은 성품을 기르는 건 그저 남보기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맑게 다듬어 신께 더 가까이 가는 길이라고요. 그리스 사람들이 '가운데를 지켜라'라고 한 자리에, 투시는 '왜 그래야 하는가'라는 믿음의 이유를 채워 넣은 셈이에요. 또 그는 사람이 혼자서는 좋아질 수 없고, 집안과 이웃과 나라 안에서 서로를 다듬으며 자란다고 봤어요. 마음 다스리기에서 시작해 함께 사는 법까지 한 줄로 이어 놓은 거죠.

투시는 1259년부터 마라가라는 곳에 큰 천문대를 세워 별을 관측했어요. 행성의 움직임을 더 정확히 설명하려고 새로운 수학 장치까지 고안했는데, 후대 사람들이 이걸 '투시의 쌍바퀴'라고 불러요. 그런데 별을 재던 사람이 왜 사람 마음까지 이야기했을까요. 투시에게는 둘이 따로가 아니었어요. 밤하늘이 어긋남 없이 질서 있게 도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에도 알맞은 질서가 있다고 믿었거든요. 별의 길을 읽는 눈과 마음의 길을 읽는 눈이, 그에게는 같은 눈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는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윤리를 말하는 사람일 수 있었어요.

투시는 그리스 사람들이 다듬어 둔 '좋은 성품을 길러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이슬람의 믿음과 함께 사는 삶 위에 다시 올려놓은 학자예요. 남의 지식을 그대로 옮긴 게 아니라, 두 세계의 좋은 부분을 한 식탁에 차려 새로운 한 끼로 만든 셈이죠. 윤리와 논리와 천문학을 한 사람 안에 담았던 그를 기억한다면, 서로 다른 두 생각도 정성껏 이으면 더 단단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까지 함께 기억해 두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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