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교과서에 틀린 문장이 하나 있다고 생각해 봐요. 그런데 아무도 고치지 않아요. 선생님도, 그 위의 선생님도, 수백 년 동안 모두가 "원래 그렇게 적혀 있으니까" 하고 그냥 넘어가요. 옛날 의학에 꼭 이런 교과서가 있었어요. 갈레노스라는 그리스 의사가 남긴 책이에요. 갈레노스는 알 라지보다 약 700년 먼저 살았던 사람인데, 그가 쓴 의학책은 너무 훌륭해서 그 뒤로 의사들이 거의 천 년 동안 "갈레노스가 그렇게 말했으니 맞다"라며 외우기만 했어요. 의사가 환자를 보다가 책과 다른 걸 발견해도, 자기 눈을 의심했지 책을 의심하진 않았죠. 책이 곧 정답이고, 사람은 그 정답을 외우는 학생일 뿐이었어요.

그런데 한 사람이 "잠깐, 정말 그럴까?" 하고 멈춰 섰어요. 이름은 알 라지예요. 지금부터 약 1100년 전, 854년 무렵 지금의 이란 땅 라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나 925년 무렵 세상을 떠난 사람이에요. 그는 바그다드와 라이의 큰 병원을 책임지던 당대 최고의 의사였어요. 환자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봤죠. 그러다 보니 책에 적힌 말과 자기 눈앞 환자가 자꾸 어긋나는 걸 느꼈어요. 보통 사람이라면 "위대한 갈레노스가 틀릴 리 없지" 하고 넘어갔을 텐데, 알 라지는 반대로 생각했어요. 책이 아니라 환자가 진짜라고요. 길을 잃었을 때 낡은 지도와 눈앞 풍경이 다르면, 지도를 믿을지 내 눈을 믿을지 골라야 하잖아요. 알 라지는 망설임 없이 눈앞 풍경을 골랐어요.

그래서 그는 아예 책을 한 권 썼어요. 제목이 그대로 '갈레노스에 대한 의심'이에요. 천 년 동안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한 큰 어른에게, 조목조목 "이 대목은 제 경험과 다릅니다" 하고 적은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게 있어요. 알 라지는 갈레노스를 미워하거나 무시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를 존경했고, 그에게 많이 배웠다고 분명히 말했어요. 다만 그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의학은 한 사람이 끝내는 게 아니라, 뒷사람이 앞사람의 틀린 곳을 고치며 조금씩 자라는 것이다." 스승을 존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틀린 곳까지 그대로 물려받는 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라는 거죠. 좋아하는 운동선수의 기록이라도 후배가 깨라고 있는 것처럼요.

알 라지가 책을 의심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왔을까요. 짐작이나 고집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보고 적은 기록에서 왔어요. 그는 환자 한 명 한 명의 증상과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를 꼼꼼히 적어 두는 의사였어요. 요즘으로 치면 관찰 일지를 차곡차곡 쌓아 둔 셈이죠. 예를 들어 천연두와 홍역은 둘 다 열이 나고 몸에 붉은 게 돋아서 옛날엔 같은 병으로 여겼는데, 알 라지는 둘을 또렷이 구분해 설명한 글을 남겼어요. 직접 많이 보고 비교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구분이에요. 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바그다드에 새 병원 자리를 정할 때 여러 곳에 고기를 매달아 두고 어디가 가장 천천히 상하는지를 본 다음 그 자리를 골랐다고 해요. 가장 덜 상한 곳이 공기가 깨끗한 곳일 테니까요. 사실인지 전설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이야기예요. 머릿속 권위가 아니라 눈앞의 증거로 판단하는 사람이요.

이런 태도는 의학에만 머물지 않았어요. 알 라지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스스로 따져 볼 수 있는 이성이 있다"는 걸 무척 중요하게 여겼어요. 그래서 전해지기로는, 특별한 사람의 말이나 권위를 무조건 따르기보다 누구나 가진 그 이성으로 직접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해요. 이건 마치 "정답은 선생님 머릿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너도 생각할 줄 아니까 같이 따져 보자"고 말하는 것과 비슷해요. 이 주장은 당시로서는 무척 과감해서 많은 반발을 샀고, 지금 우리가 아는 그의 생각 상당 부분은 그를 반박하려던 사람들의 글을 통해 전해질 정도예요. 반대편 기록에 그의 말이 인용되며 겨우 살아남은 거죠. 그만큼 위험을 무릅쓴 의심이었어요. 핵심은 늘 같았어요. 누가 말했느냐가 아니라, 그 말이 정말 맞느냐를 보라는 것.

오늘 우리에겐 "책이 틀릴 수도 있지" "직접 확인해 보자"가 당연하게 들려요. 하지만 모두가 한 사람의 말을 천 년 동안 외우기만 하던 시대에,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던 의사가 그 분위기를 깬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자기 권위를 스스로 위태롭게 만드는 일이니까요. 그래도 알 라지는, 존경과 의심이 서로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같이 갈 수 있다는 걸 보여 줬어요. 앞사람을 존경하기 때문에, 더 정확히 보려고 의심하는 거예요. 의심은 미움이 아니라,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죠. 그가 살던 시절은 그리스의 옛 책들을 부지런히 번역하고 따져 묻던 활기찬 때이기도 했는데, 알 라지는 그 흐름에서도 가장 멀리까지 의심을 밀고 간 사람이었어요. 우리가 지금 "그거 확인해 봤어?"라고 묻는 그 습관의 아주 오래된 뿌리 하나가 여기 있는 셈이에요.

알 라지는 천 년 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갈레노스의 의학책을, 자기가 직접 본 환자들의 기록을 무기로 조목조목 의심한 사람이에요. 미워서가 아니라, 의학은 뒷사람이 앞사람을 고치며 자란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그 의심의 기준은 늘 "누가 말했느냐"가 아니라 "정말 맞느냐"였고, 이 태도는 의학을 넘어 권위 전체로 향했어요. 다음에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 천 년 전에 한 의사가 책 대신 환자를 봤다는 걸 떠올려 봐요. 의심은 가끔, 가장 정직하게 존경하는 방법이거든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