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옛날 중국에 한 젊은 스님이 있었어요. 이름은 도일, 훗날 마조 도일이라 불린 사람이에요. 지금으로부터 1300년쯤 전, 709년부터 788년까지 살았던 분이죠. 젊은 시절 그는 매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참선을 했어요. 부처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것도 아주 간절하게요.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어느 날 스승인 회양이 곁에서 벽돌 하나를 집더니 바닥돌에 대고 박박 갈기 시작했대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요. 보다 못한 도일이 물었어요. "스님, 벽돌은 왜 그렇게 가세요?" 회양이 답했죠. "거울을 만들려고." 도일이 어이없어하며 말했어요. "벽돌을 아무리 간들 어떻게 거울이 됩니까?" 그러자 회양이 되물었어요. "그럼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어떻게 부처가 되느냐?"
이 한마디에 도일은 멍해졌어요. 부처가 되겠다고 몸을 비틀어 앉아 있던 자기 모습이,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겠다는 것과 똑같아 보였거든요. 애초에 벽돌은 거울이 될 재료가 아니었던 거예요.

여기서 도일이 깨달은 생각이 바로 '마음이 곧 부처'예요. 한자로는 즉심시불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내 마음이 그대로 부처다'라는 뜻이에요.
조금 더 쉽게 그려 볼게요. 온 집 안을 뒤지며 휴대폰을 찾는데, 알고 보니 그 휴대폰을 손에 쥔 채로 손전등 삼아 어두운 구석을 비추고 있었던 적 없으세요? 안경을 이마에 올려놓고 안경을 찾는 일도 비슷하고요. 찾는 물건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나한테 있는 거죠.
도일은 부처도 그렇다고 봤어요. 부처는 저 먼 하늘이나 깊은 산속, 몇십 년 수행 끝에 겨우 닿는 어떤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는 바로 이 마음 안에 있다는 거예요. 새로 만들어 낼 게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걸 알아보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죠.

그럼 그 부처 같은 마음은 어떤 특별한 마음일까요? 도일의 답은 의외로 싱거워요. '평상심이 곧 도'라는 말, 평상심시도예요. 평상심은 말 그대로 '평소의 마음', 우리가 늘 쓰고 있는 보통 마음이에요.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고, 추우면 옷을 껴입는 그 마음이요. 도일은 바로 이 평범한 마음 그대로가 진리로 가는 길이라고 했어요. 도를 닦겠다고 일부러 안 먹고 안 자며 몸을 괴롭히거나, 머릿속에 거창한 깨달음을 따로 지어낼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이건 생각보다 마음이 놓이는 이야기예요. 어딘가 멀리 가서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만 진리에 닿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밥 먹고 일하고 사람을 만나는 이 자리가 곧 수행의 자리라는 뜻이니까요.

도일이 살던 시절, 불교 수행은 보통 멀고 험한 길로 여겨졌어요. 경전을 오래 읽고, 계율을 빈틈없이 지키고, 몇 년이고 앉아 참선해서 저 멀리 있는 부처의 자리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는 그림이었죠. 부처는 늘 '아직 멀리 있는 목표'였던 거예요.
그런데 도일은 그 방향을 거꾸로 돌려 버렸어요. 부처는 멀리 있는 목표가 아니라 지금 여기 내 마음이고, 수행은 그걸 알아차리는 일이라고요. 멀리 떠나는 이야기가 갑자기 발밑의 이야기로 바뀐 셈이에요.
이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말 덕분에 도일 곁에는 배우러 오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어요. 기록에 남은 제자만 해도 백수십 명에 이를 만큼요. 이 흐름은 훗날 중국 선종의 큰 줄기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깨달음을 일상의 언어로 끌어내린 전환점으로 이야기되곤 해요.

재미있는 건, 도일이 나중에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비심비불이라는 말도 했다는 거예요. 방금까지 '마음이 곧 부처'라더니 갑자기 말을 뒤집은 것처럼 보이죠.
이유가 있어요. 사람들이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을 듣고는, 이번엔 그 말 자체에 매달리기 시작한 거예요. "마음이 부처래, 마음이 부처래" 하고 외우면서요. 멀리 있는 부처에 집착하던 사람이, 이제 '마음이 부처'라는 새로운 문구에 집착하게 된 거죠. 우상이 하나 바뀌었을 뿐인 거예요.
그래서 도일은 그 문구마저 손에서 놓으라고 비심비불이라 한 거예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만 붙들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마음이 곧 부처'도 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 그 말에 갇히지 말라는 뜻이었어요.

마조 도일은 부처를 멀리 있는 목표에서 지금 내 마음으로 끌어내린 선사예요.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 수 없듯, 억지로 앉아 있다고 부처가 되는 게 아니라 이미 가진 마음을 알아보는 게 핵심이라고 봤죠. 그래서 '마음이 곧 부처'라 했고, 그 마음은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 평소의 마음이라며 '평상심이 곧 도'라 했어요. 그러면서도 그 말에 사람들이 새로 매달리자 '마음도 부처도 아니다'라며 문구마저 내려놓게 했고요. 결국 도일이 던진 건 하나예요. 진리는 먼 데 있지 않으니, 지금 이 자리의 마음을 그대로 살아 보라는 것.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