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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천삼백 년쯤 전, 중국에 마조 도일이라는 스님이 있었어요. 젊은 시절 그는 매일 다리를 꼬고 앉아 좌선에만 매달렸어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언젠가 부처가 될 거라 믿었거든요.
그 모습을 본 스승 회양이 곁에서 벽돌 하나를 돌에 슥슥 갈기 시작했어요. 마조가 묻죠. "스님, 벽돌은 왜 가세요?" 회양이 답해요. "거울을 만들려고." 마조가 어이없어하며 말해요. "벽돌을 아무리 갈아도 거울이 되진 않잖아요." 그러자 회양이 되받아요. "그래. 그럼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부처가 되겠느냐?"
이 한마디가 마조의 인생을 바꿨어요. 깨달음은 특별한 자세나 장소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그제야 본 거예요.

마조가 평생을 걸고 던진 말이 바로 '평상심이 곧 도'예요. 한자로는 평상심시도라고 읽어요. 어렵게 들리지만, 풀어 보면 아주 단순해요.
'평상심'은 말 그대로 평소의 마음이에요.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는, 그 별것 아닌 마음이요. 특별히 거룩해지려 애쓰지도 않고,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며 따지지도 않고, 잘 보이려 꾸미지도 않는 마음. 마조는 바로 그 마음이 곧 '도'라고 했어요.
도라고 하면 보통 깊은 산속이나 두꺼운 경전 안에 숨어 있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마조는 정반대를 말한 거예요. 도는 멀리 있지 않고, 지금 당신이 차 한 잔 마시는 그 순간에 이미 들어 있다고요.

그래도 '평소 마음이 도다'라는 말은 손에 잘 안 잡히죠. 장면으로 그려 볼게요.
누군가 밥을 먹으면서도 머릿속으론 아까 들은 욕을 곱씹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내일 걱정을 굴려요.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늘 딴 데 가 있어요. 마조가 말한 평상심은, 밥 먹을 때는 그냥 밥을 먹고 잠잘 때는 그냥 자는 마음이에요. 지금 하는 일에 마음이 통째로 가 있는 상태죠.
그러니 평상심은 '아무 생각 없이 산다'는 뜻이 아니에요. 오히려 매 순간을 또렷이 산다는 뜻에 가까워요. 깨달음을 따로 붙잡으려 두리번거리는 그 조급함을 내려놓는 것, 그게 마조가 가리킨 길이었어요.

마조의 이 한마디는 당시 불교 안에서 꽤 큰일이었어요.
그 전까지 수행은 '저 멀리 있는 부처를 향해 나아가는 길고 고된 길'처럼 여겨졌어요. 그런데 마조는 "이 마음이 곧 부처다"라고 못 박았어요. 부처가 되려고 어딘가로 갈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가 백 명을 훌쩍 넘었고, 그들이 중국 곳곳으로 퍼지면서 선종, 즉 일상 속 깨달음을 강조하는 흐름의 큰 줄기가 되었어요.
물론 여기엔 함정도 있어요. '평소 마음 그대로면 된다'는 말을 '그럼 게으르게 살아도 되겠네'로 오해하기 쉽거든요. 마조가 말한 건 게으름이 아니라, 꾸밈과 조급함을 뺀 또렷함이었어요. 그 미묘한 차이를 놓치면 말만 남고 알맹이는 사라져요.

마조 도일은 깨달음을 멀고 특별한 것으로 만들던 분위기를, '평상심이 곧 도'라는 한마디로 가까이 끌어당긴 사람이에요.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 수 없듯, 도는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지금 이 평범한 순간 속에 이미 있다는 거죠. 밥 먹을 때 밥을 먹고, 잠잘 때 잠을 자는 그 또렷한 마음. 다음에 차 한 잔을 마실 때, 그 한 모금에만 마음을 둬 보세요. 마조가 가리킨 길이 어떤 느낌인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한 조각 잡힐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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