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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눈을 감았다 떠도 책상은 늘 그 자리에 있어요. 너무 당연해서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죠. 그런데 누가 옆에서 "그 책상이 네 마음 바깥에 진짜로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 어쩌면 다 네 머릿속 생각일 뿐일지도 몰라" 하고 물으면, 이상하게 말문이 막혀요. 분명히 거기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진짜'라는 걸 증명해 보라니 갑자기 막막해지거든요. 우리는 보통 세상이 있다는 걸 그냥 믿고 살지, 그걸 따져 본 적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약 천 년 전 인도에서, 바로 이 막막한 질문을 정면으로 붙잡고 늘어진 철학자가 있었어요.

그 사람 이름이 우다야나예요. 인도에서 냐야-바이셰시카라고 부르는, 꽤 오래된 학파를 이어받은 철학자였죠. 이름이 길고 낯설지만 겁먹을 필요 없어요. 냐야는 '차근차근 따져 보는 법', 바이셰시카는 '세상을 이루는 알갱이를 하나하나 살피는 법' 정도로 생각하면 돼요. 우다야나가 살던 시절 인도에는 "세상은 사실 꿈같은 것이라, 우리 마음이 잠깐 만들어 낸 그림자일 뿐"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어요. 우다야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어요. 세상은 내가 보든 안 보든, 내 마음과 상관없이 단단하게 거기 있다고 믿었거든요. 그리고 그걸 그냥 우기는 게 아니라 논리로 한 걸음씩 보여 주려 했어요. 이렇게 '바깥 세상은 마음과 따로, 진짜로 있다'고 보는 입장을 어려운 말로 실재론이라고 불러요.

그럼 그 단단한 세상은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요. 우다야나가 속한 전통은 꽤 재미있는 답을 내놨어요. 빵 한 조각을 반으로 자르고, 그 반을 또 반으로, 계속 잘라 본다고 해봐요. 칼이 아무리 잘 들어도 어느 순간 더는 못 자르는 가장 작은 알갱이에 닿을 거예요. 이렇게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알갱이를 산스크리트로 '파라마누', 우리말로 옮기면 원자라고 해요. 흙도, 물도, 불도, 바람도 저마다 이런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고 봤죠. 눈에 보이는 온갖 것들은 결국 이 작은 알갱이들이 잔뜩 모여서 만들어진 거예요. 마치 모래성이 셀 수 없이 많은 모래알로 이루어진 것처럼요.

그런데 왜 꼭 '더는 못 자르는 알갱이'가 있어야 할까요. 그냥 끝없이 계속 잘리면 안 되는 걸까요. 우다야나 쪽 사람들은 여기서 아주 똑똑한 생각을 했어요. 만약 무엇이든 끝없이 쪼갤 수 있다면, 손톱만 한 겨자씨 한 알도 무한히 많은 조각으로 이루어진 셈이고, 거대한 산도 무한히 많은 조각으로 이루어진 셈이에요. 그런데 둘 다 똑같이 '무한 개의 조각'이라면, 겨자씨랑 산이 결국 같은 크기여야 한다는 황당한 결론이 나와요. 그건 누가 봐도 말이 안 되죠. 그러니 쪼개는 데에는 반드시 끝이 있어야 하고, 그 끝에 진짜로 버티고 있는 것이 바로 원자예요. 너무 작아서 눈에는 안 보이지만, 없는 게 아니라 분명히 있다는 거죠. 이것이 바로 '원자론적 실재론'이라는 말의 속뜻이에요. 세상은 진짜로 있고, 그 세상의 바탕에는 진짜 알갱이가 깔려 있다는 이야기예요.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생겨요. 원자가 그렇게 작아서 안 보인다면, 어떻게 모이고 모여서 눈에 보이는 책상이 될까요. 우다야나가 이은 전통은 이것도 차근차근 설명했어요. 원자 하나는 외톨이로 있지 않고 먼저 둘씩 짝을 지어요. 그 짝이 다시 셋쯤 모이면, 그제야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올 때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 한 점만큼 작은 덩어리가 돼요. 그 먼지 알갱이가 또 모이고 쌓여서 마침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이 되는 거죠. 안 보이던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이렇게 단계마다 차곡차곡 그려 놓은 셈이에요. 세상을 대충 뭉뚱그리지 않고 알갱이 단위까지 따져 보려 한 태도가 잘 드러나죠.

우다야나의 생각은 한 걸음 더 멀리 나아가요. 원자 하나하나는 그저 작은 알갱이일 뿐, 스스로 움직이거나 "자, 우리 모여서 나무가 되자" 하고 약속하지는 못해요. 레고 조각이 아무리 많이 쌓여 있어도 저절로 멋진 성이 되지는 않잖아요. 누군가 손으로 하나하나 맞춰야 비로소 모양이 생기죠. 우다야나는 이 세상이 흩어진 알갱이 더미가 아니라 산과 강과 사람으로 질서 있게 짜여 있는 걸 보면서, "이 알갱이들을 이렇게 맞춰 놓은 지혜로운 존재가 있어야 한다"고 논증했어요. 그렇게 원자 이야기에서 출발해 신의 존재까지 논리로 이어 붙였죠. 그가 남긴 책 한 권은 제목부터가 '논리로 엮은 꽃다발'이라는 뜻이었다고 해요. 세상이 진짜냐는 물음에서 시작해, 그 세상을 누가 빚었느냐는 물음까지 한 줄로 꿰려 한 거예요.

우다야나는 "세상이 정말 있느냐"는 막막한 질문에, 빵을 끝까지 자르면 마지막에 남는 알갱이라는 아주 손에 잡히는 답을 내놓은 사람이에요. 더는 못 쪼개는 원자가 분명히 있고, 그 원자들이 둘씩 셋씩 모여 만든 바깥 세상은 내 마음과 상관없이 단단하게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원자론적 실재론이에요. 그리고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 많은 알갱이를 누가 이토록 질서 있게 맞췄을까 묻다가 신의 존재에까지 닿았죠. 다음에 책상을 손으로 톡톡 두드려 볼 때, 그 단단함 속에 천 년 전 사람이 골똘히 들여다본 작은 알갱이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면, 익숙한 책상이 조금은 새롭게 느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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