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분명 눈물까지 훔쳤는데, 극장을 나설 때 마음이 묘하게 후련했던 적 있을 거예요. 무서운 이야기를 일부러 찾아 읽고, 슬픈 노래를 골라 듣기도 하죠. 가만 보면 좀 이상해요. 진짜로 무섭거나 슬픈 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데, 이야기 속 무서움과 슬픔은 오히려 돈을 내고 찾아가니까요. 천 년쯤 전, 인도 북쪽 카슈미르 지방에 살던 한 사람이 바로 이 수수께끼를 평생 파고들었어요. 그 사람 이름이 아비나바굽타예요.

아비나바굽타는 950년쯤 태어나 1016년쯤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져요. 지금의 인도 북쪽, 히말라야 산자락에 자리한 카슈미르가 그의 고향이었어요. 그는 한 우물만 판 사람이 아니었어요. 깊은 종교 철학도 공부하고, 연극과 시와 음악 같은 예술도 파고들었죠. 스승도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을 찾아다니며 배웠다고 해요. 그래서 그의 글에는 큰 줄기가 두 개 흐릅니다. 하나는 '나는 누구인가' 같은 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은 왜 우리 마음을 흔드는가' 같은 미학이에요. 보통은 따로 노는 이 두 질문을, 그는 한 손으로 묶어 보려 했어요.

먼저 그의 철학부터 쉬운 장면으로 그려 볼게요. 안경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는 '안경 어디 갔지?' 하며 온 집을 뒤진 적, 다들 한 번쯤 있죠. 안경은 잃어버린 게 아니에요.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데, 그걸 깜빡 잊었을 뿐이에요. 누가 '머리 위에 있잖아' 하고 알려 주면 '아!' 하고 알아차리죠.
아비나바굽타가 이어받은 카슈미르 철학의 핵심이 딱 이거예요. 어려운 말로는 '프라티아비갸', 우리말로 풀면 '다시 알아차림'이에요. 그들은 이렇게 봤어요. 우리는 본래 우주의 큰 의식과 이어진 존재인데,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산다고요. 그러니 어디 멀리 가서 새로 얻어 와야 할 게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던 것을 '아, 이거였구나' 하고 다시 알아보면 된다는 거예요. 머리에서 안경을 내려 쓰듯이요.

이제 예술 이야기예요. 인도에는 오래전부터 '라사'라는 말이 있었어요. 그대로 옮기면 '맛' 또는 '즙'이에요. 음식에 단맛 짠맛이 있듯, 잘 만든 이야기에도 우러나는 감정의 맛이 있다는 뜻이죠.
아비나바굽타는 여기에 멋진 설명을 더했어요. 무대 위 주인공이 슬퍼할 때, 우리는 그 슬픔을 느끼긴 하지만 내 개인적인 슬픔으로 느끼지는 않아요. '내 가족이 다쳤다'가 아니라 '슬픔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슬픔 그 자체를 맛보는 거예요. 그래서 아프면서도 짓눌리지 않고, 오히려 후련해질 수 있어요. 내 좁은 사정에서 잠깐 풀려나, 누구나 느끼는 큰 감정의 바다에 몸을 담그는 셈이니까요.

여기서 두 줄기가 만나요. 알아차림의 철학은 '좁은 나를 넘어 큰 나와 다시 이어지는 것'이고, 예술의 즐거움도 '좁은 내 사정에서 잠깐 풀려나는 것'이죠. 아비나바굽타가 보기에 둘은 닮은 가족이었어요. 그는 잘 만든 예술을 맛보는 순간의 기쁨이, 깨달음의 기쁨을 살짝 미리 맛보는 일과 통한다고 봤어요. 슬픈 영화를 보고 후련했던 그 느낌이, 사실은 더 큰 무언가의 작은 미리보기였던 셈이에요. 그래서 그는 연극을 논하면서도 철학을 말하고, 철학을 논하면서도 예술을 끌어왔어요.

오늘날에도 우리는 종종 예술과 깊은 마음의 문제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해요. 영화는 영화, 종교는 종교, 철학은 철학, 이렇게요. 아비나바굽타가 흥미로운 건 그 칸막이를 천 년 전에 이미 허물어 봤다는 점이에요. 그는 노래 한 곡에 울컥하는 일과, 내가 누구인지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 전혀 다른 세계가 아니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인도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명상과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여태 그의 글로 돌아가곤 해요.

아비나바굽타는 천 년 전 카슈미르에서, 보통은 따로 떼어 놓는 두 질문을 한자리에 모은 사람이에요. 하나는 '나는 이미 가진 것을 잊고 사는 게 아닐까'라는 알아차림의 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왜 슬픈 이야기가 오히려 마음을 후련하게 할까'라는 예술의 맛, 라사예요. 그가 남긴 생각의 핵심은 뜻밖에 단순해요. 좋은 예술 앞에서 잠깐 나를 잊고 큰 감정에 잠기는 그 순간이, 본래의 나를 다시 알아보는 일과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이에요. 다음에 극장에서 눈물이 핑 돌 때, 그 후련함의 정체가 무엇일지 한 번쯤 떠올려 봐도 좋겠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4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