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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학교에서 물은 사실 H2O라는 말을 처음 들으면 좀 어리둥절해요. 매일 마시는 물과, 칠판에 적힌 알파벳과 숫자가 같은 거라니 잘 와닿지 않죠. 그런데 약 500년 전 인도에 살던 한 철학자는 이것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큰 이야기를 했어요. 세상의 근본인 브라흐만이 사실은 크리슈나라는 거였죠. 처음 들으면 외계어 같지만, 알고 보면 무척 따뜻한 이야기예요. 오늘은 이 한마디가 무슨 뜻인지, 발라바라는 사람을 따라 천천히 풀어 볼게요.

발라바는 1479년에 태어나 1531년까지, 그러니까 쉰둘 무렵까지 살았던 인도의 철학자예요. 지금으로부터 대략 500년 전 사람이죠. 그는 평생 한 가지 질문을 붙들었어요. 이 세상 모든 것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거였죠. 그는 옛 경전들을 깊이 파고들어 여러 권의 해설서를 남겼는데, 특히 크리슈나의 이야기를 담은 경전을 한 줄 한 줄 풀이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어요. 그리고 그 모든 탐구 끝에, 세상의 뿌리에 크리슈나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왜 하필 크리슈나인지 이해하려면, 먼저 브라흐만이라는 말부터 알아야 해요.

인도 철학에는 아주 오래된 생각이 하나 있어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 그러니까 나무도 돌도 사람도 별도, 그 밑바닥에는 단 하나의 근본이 깔려 있다는 거예요. 이 근본을 브라흐만이라고 불러요.
비유하자면 이래요. 바다에는 파도가 수천 개 일어요. 큰 파도, 작은 파도, 부서지는 파도까지 모양은 다 다르지만 결국 전부 같은 바닷물이죠. 브라흐만은 그 바닷물 같은 거예요. 세상 만물이 제각각 달라 보여도 바탕은 하나라는 거죠. 그런데 이 브라흐만은 너무 크고 막연해서 잘 잡히질 않아요. 모양도 없고 색도 없으니까요. 전기라는 말은 알아도 전기 자체를 손에 쥘 수 없는 것과 비슷해요.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는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렵죠.

발라바가 한 일이 바로 여기예요. 그는 막연한 브라흐만에 크리슈나라는 얼굴과 마음을 줬어요. 크리슈나는 인도에서 아주 사랑받는 신이에요. 피리를 불고, 장난기도 많고, 사람들을 따뜻하게 아끼는 신으로 그려지죠.
발라바는 이렇게 봤어요. 세상의 근본인 브라흐만은 차갑고 텅 빈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는 크리슈나 그 자체라고요. 전기와 등불을 떠올려 보세요. 전기라고 하면 멀고 추상적이지만, 곁에 켜 둔 등불은 만질 수도 있고 기댈 수도 있어요. 발라바에게 크리슈나는 그 등불 같은 존재였어요. 막연한 근본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사랑할 수 있는 따뜻한 상대였죠. 세상의 뿌리를 머리로 아는 것과, 그 뿌리를 사랑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니까요.

여기서 발라바는 한 발 더 나가요. 그의 생각을 순수불이론이라고 불러요. 말은 어렵지만 뜻은 단순해요. 둘이 아니다, 즉 세상과 신이 따로 떨어진 둘이 아니라 결국 하나라는 거예요.
발라바보다 앞선 철학자들 중에는, 우리가 보는 세상은 사실 꿈이나 착각 같은 것이라고 본 사람들도 있었어요. 진짜는 브라흐만뿐이고 세상은 허깨비라는 거죠. 발라바는 거기에 고개를 저었어요. 이 세상은 진짜라고요.
금반지를 떠올려 보세요. 반지는 금으로 만들어졌지만, 그렇다고 반지가 가짜는 아니죠. 진짜 금이 그저 반지 모양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발라바가 본 세상도 똑같아요. 세상은 크리슈나가 진짜로 모습을 바꿔 나타난 거예요. 불에서 불똥이 튀어 나오듯, 크리슈나에게서 이 세상이 진짜로 흘러나온 거죠. 그래서 앞에 순수라는 말이 붙어요. 착각이나 꿈을 끌어들이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진짜라고 봤기 때문이에요. 발 밑의 흙도, 마주 앉은 친구도 다 진짜이고, 동시에 다 크리슈나에게서 나온 거라는 이야기죠.

그럼 우리는 이 크리슈나에게 어떻게 다가갈까요? 발라바의 대답이 좀 뜻밖이에요.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해서 도달하는 게 아니라, 크리슈나가 먼저 내미는 은혜로 다가가는 거라고 했어요.
이 길을 푸쉬티라고 불러요. 기른다, 먹인다는 뜻이에요. 부모가 아이를 먹이고 돌보는 걸 떠올리면 돼요. 아이가 뭘 잘해서 사랑받는 게 아니라, 그냥 부모니까 먼저 사랑을 주잖아요. 발라바는 신과 사람 사이도 그렇다고 봤어요. 내 노력으로 점수를 따서 신을 얻는 게 아니라, 신이 먼저 베푸는 사랑에 마음을 여는 거라고요. 그래서 발라바의 길에서는 어려운 수행이나 복잡한 지식보다, 크리슈나를 향한 따뜻한 사랑과 믿음이 가장 중요해요.

발라바의 이야기를 곰곰이 보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지켜 내려는 마음이 보여요. 하나는 세상의 뿌리가 결국 하나라는 깊은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그 하나를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는 바람이에요. 보통은 이 둘이 잘 안 어울려요. 뿌리를 너무 거대하고 추상적으로 보면 사랑하기가 어렵고, 너무 사람처럼만 보면 세상의 근본이라는 무게가 가벼워지니까요.
발라바는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어요. 크리슈나는 온 세상의 뿌리만큼 크고 깊지만, 동시에 내가 마주 보고 사랑할 수 있을 만큼 가깝다고요. 그래서 그의 철학은 머리로 따지는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고,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야기로 이어져요. 어려운 형이상학과 따뜻한 신앙이 한 몸이 된 셈이죠.

발라바는 세상 모든 것의 뿌리인 브라흐만을, 우리를 사랑하는 크리슈나와 같은 것으로 봤어요. 막연한 근본에 따뜻한 얼굴을 준 셈이죠. 그리고 이 세상은 꿈이나 착각이 아니라, 크리슈나에게서 진짜로 흘러나온 진짜 세상이라고 했어요. 금이 반지가 되어도 여전히 금인 것처럼요. 마지막으로 그 신에게 다가가는 길은 내 노력이 아니라 신이 먼저 주는 은혜라고 봤고요. 어려운 이름들을 걷어 내면, 발라바의 이야기는 결국 한 문장으로 남아요. 세상의 근본은 차가운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를 먼저 사랑하는 따뜻한 존재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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