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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길을 가다 아이가 소를 보고 "소!"라고 외치는 장면을 떠올려 볼게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런데 그 짧은 순간, 아이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아이는 '소'라는 말로 정확히 무엇을 붙잡은 걸까요?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해요. '소'라는 말에는 모든 소가 공통으로 가진 어떤 알맹이, 말하자면 '소다움'이 들어 있고, 아이는 그 알맹이를 콕 집어낸 거라고요. 눈앞의 누렁이든 얼룩소든 다 다르게 생겼지만, 그 안에 공통된 무언가가 있어서 똑같이 '소'라 부른다는 거예요. 너무 당연해 보이죠. 그런데 천 년쯤 전 인도에서는 이 '당연함'을 두고 큰 싸움이 벌어졌어요.

당시 불교 논리학자들은 깜짝 놀랄 답을 내놨어요. '소다움' 같은 공통 알맹이는 세상에 진짜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소 한 마리 한 마리는 다 제각각일 뿐, 모두에게 똑같이 박혀 있는 '소 도장' 같은 건 없다는 거죠.
그럼 우리는 어떻게 다 '소'라고 부를까요? 불교의 답이 바로 '아포하'예요. 우리말로 풀면 '다른 것을 빼기'쯤 돼요. 즉 '소'라는 말은 소를 직접 가리키는 게 아니라, '소가 아닌 것들'을 전부 지우고 남은 것이라는 거예요. 말, 개, 돌, 나무처럼 소가 아닌 걸 싹 지우면, 남는 게 곧 소라는 거죠.
스무고개 놀이를 떠올리면 쉬워요. "그건 강아지가 아니야, 고양이도 아니야" 하고 아닌 걸 하나씩 지워 가다 보면 답에 다가가잖아요. 불교는 말의 뜻이 바로 이런 '지우기'로 생긴다고 본 거예요.

이 생각에 정면으로 맞선 사람이 자얀타 바타예요. 9세기 무렵, 지금의 인도 북쪽 카슈미르 지역에서 활동한 철학자예요. 그는 '냐야'라는 학파에 속했는데, 냐야는 '바른 논리와 앎이란 무엇인가'를 따지는 데 일생을 건 사람들이었어요. 자얀타 바타는 『냐야만자리』라는 두꺼운 책을 써서, 불교 논리학자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따져 물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공들여 비판한 게 바로 이 '아포하'였죠.

자얀타 바타의 첫 번째 반격은 이거예요. "'소가 아닌 것'을 지우려면, 애초에 '소'가 뭔지 먼저 알아야 하잖아요?"
생각해 보면 정말 그래요. 누군가 "소 아닌 걸 다 지워 봐"라고 하면, 우리는 이미 머릿속에 소가 어떤 건지 알고 있어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울지 정할 수 있어요. 소를 모르면 '소 아닌 것'도 가려낼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불교는 거꾸로, '소'의 뜻이 '소 아닌 것을 지워서' 생긴다고 했죠. 이러면 생각이 빙글빙글 돌아요. 소를 알려면 '소 아닌 것'을 알아야 하고, '소 아닌 것'을 알려면 다시 소를 알아야 하고요. 자얀타 바타는 이걸 두고 서로 기대다 함께 넘어지는 꼴이라고 꼬집었어요. 출발점이 없는 거예요.

두 번째 반격은 우리 경험에 관한 거예요. 아이가 소를 보고 "소!"라고 할 때, 그 아이는 정말 '말도 아니고 개도 아니고 돌도 아니고' 하면서 세상 모든 것을 하나씩 지운 걸까요?
그럴 리 없죠. 아이는 그냥 소를 보고 곧장 '소다!'라고 느껴요. 무언가를 콕 집어 알아본 거지, 끝없이 빼기를 한 게 아니에요. 자얀타 바타는 말해요. 우리 마음이 무언가를 알 때는 '이건 무엇이다'라고 긍정으로 다가가지, '이건 저것도 저것도 아니다'라는 부정만으로 시작하지 않는다고요. 게다가 부정에는 늘 바탕이 필요해요. '소가 아니다'라고 말하려면, 먼저 '소'라는 긍정의 그림이 마음에 있어야 하니까요.

언뜻 보면 '소를 어떻게 아느냐'는 사소한 말장난 같아요. 하지만 이건 사실 '말은 어떻게 뜻을 갖는가',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아는가'라는 큰 물음이에요.
불교는 세상에 고정된 알맹이는 없다는 자기 철학을 지키려고, 이름이란 결국 '빼기'일 뿐이라고 봤어요. 자얀타 바타는 그 반대편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곧장 긍정으로 알아본다는 일상의 감각을 지키려 했고요. 어느 쪽도 어리석지 않았어요. 둘 다 '우리가 안다는 게 대체 무엇인가'를 끝까지 파고든 거예요.

자얀타 바타는 9세기 카슈미르의 냐야 학파 철학자로, 불교의 '아포하' 이론에 맞섰어요. 불교는 '소'라는 말이 '소 아닌 것을 모두 지워서' 생긴다고 봤지만, 자얀타 바타는 두 가지로 되물었죠. 하나, '소 아닌 것'을 지우려면 이미 소를 알아야 하니 출발점이 없다. 둘, 우리는 실제로 무언가를 곧장 긍정으로 알아보지 세상 전부를 빼면서 알지 않는다. 결국 이 다툼은 '이름이 무언가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나머지를 지우는가'라는 물음이었어요. 다음에 무언가를 보고 이름을 떠올릴 때, 내 마음은 콕 집은 걸까 아니면 지운 걸까 한번 들여다보면 재미있을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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