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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500여 년 전 인도 북부의 어느 마당을 떠올려 볼게요.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바닥에 길게 한 줄로 나란히 앉습니다. 한쪽 끝에는 흙 묻은 옷을 입은 가난한 농부가, 그 옆에는 비단옷을 입은 부유한 상인이, 또 그 옆에는 사람들이 평생 곁에도 오지 않으려던 천대받는 신분의 사람이 앉아 있어요. 그리고 모두 똑같은 그릇에 똑같은 밥을 받아 함께 먹습니다.
지금 우리 눈에는 그냥 평범한 점심처럼 보이죠. 그런데 그 시대 인도에서는 거의 사건에 가까운 장면이었어요. 이 풍경을 일부러 만들어 낸 사람이 바로 구루 나나크입니다. 그는 말로만 평등을 외치지 않고, 사람들을 한 밥상에 앉히는 방법으로 평등을 보여 주려 했어요.

먼저 카스트가 뭔지부터 쉽게 풀어 볼게요. 운동회에서 팀을 나누는데, 한 번 들어간 팀을 평생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게다가 어떤 팀은 다른 팀과 손도 못 잡고, 같이 물도 못 마신다고요. 인도의 카스트가 딱 그랬어요.
태어나는 순간 부모의 신분이 그대로 내 신분이 됩니다. 그게 직업도 정하고, 결혼할 상대도 정하고, 심지어 누구 옆에 앉을 수 있는지까지 정했어요. 맨 아래에는 '닿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불리던 이들이 있었는데, 다른 신분은 이들과 밥은커녕 그림자조차 섞기 싫어했어요. 한번 정해진 줄을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세상, 그게 나나크가 살던 인도였습니다.

나나크는 1469년, 지금의 파키스탄 라호르 근처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부터 그는 한 가지가 이상했습니다. 사람을 태어난 집안으로 위아래를 나누는 게 정말 옳은 일일까, 하는 거였죠.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을 쉽게 옮기면 이래요. '힌두도 없고 무슬림도 없다.' 종교를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어떤 신을 믿든 사람은 결국 다 같은 한 사람이라는 뜻이었어요. 그는 이 생각을 바탕으로 시크교라는 새로운 신앙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나나크가 특별했던 건, 이 평등을 멋진 설교로만 두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그는 아주 구체적인 장치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 장치가 바로 '랑가르', 즉 공동 부엌이에요. 시크교 사원에는 누구나 공짜로 밥을 먹을 수 있는 부엌이 딸려 있어요. 규칙이 하나 있는데, 기도를 하거나 스승을 만나기 전에 먼저 바닥에 한 줄로 앉아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 줄을 '팡가트'라고 불렀어요.
왜 하필 밥이었을까요? 카스트 사회에서 가장 센 금기가 바로 '누구와 함께 먹느냐'였기 때문이에요. 같은 솥의 음식을 나눠 먹는다는 건, 너와 내가 같은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가장 강한 행동이었거든요. 나나크는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던 바로 그 지점을 정면으로 찔렀어요. 높은 신분이든 낮은 신분이든 똑같이 바닥에 앉아, 똑같은 높이에서, 똑같은 음식을 먹게 한 거죠. 머리로 이해하는 평등이 아니라 몸으로 겪는 평등이었어요. 한 번 같이 먹고 나면, 벽은 이미 조금 무너져 있었습니다.

랑가르에는 또 하나의 규칙이 있었어요. 밥을 먹는 사람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돌아가며 직접 요리하고, 나르고, 설거지를 한다는 거예요. 이걸 '세바', 봉사라고 불렀어요.
여기서 나나크 생각의 또 다른 축이 보여요. 그는 신앙과 평등에 더해 '정직하게 일하라, 그리고 나누라'는 노동 윤리를 하나로 묶었어요. 남이 차려 준 밥을 받아먹는 게 아니라, 내 손으로 일해서 만든 음식을 모두와 나누는 거예요. 신분이 높다고 일을 면제받지도 않고, 낮다고 천한 일만 하지도 않아요. 함께 일하고 함께 먹는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신분의 선이 흐려졌습니다.

놀라운 건 이 밥상이 지금도 차려진다는 거예요. 인도 암리차르의 황금 사원에 가면, 매일 수만 명이 종교도 국적도 신분도 묻지 않고 공짜로 함께 밥을 먹어요. 500여 년 전 나나크가 만든 그 한 줄짜리 밥상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죠.
돌이켜 보면 그의 전략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었어요. 법을 바꾸거나 사람들을 설득하는 대신, 그냥 '같이 앉아 밥 먹자'고 한 거예요. 작아 보이는 이 한 가지가, 누구도 못 건드리던 카스트의 벽을 조용히 흔들었습니다.

구루 나나크는 평등을 말로만 가르치지 않았어요. 그는 카스트 사회에서 가장 강한 금기였던 '함께 먹기'를 일부러 깨뜨려, 신분이 다른 사람들을 한 줄에 앉히고 같은 밥을 나누게 했어요. 거기에 함께 일해서 나눈다는 노동 윤리까지 더했죠. 평등은 멋진 구호가 아니라, 옆 사람과 같은 밥을 먹는 아주 구체적인 행동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 그게 나나크가 밥상으로 보여 준 답이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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