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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오늘날 우리는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검색해서 답을 찾아요. 그런데 80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특히 신에 관한 일은 더 그랬지요. 신께 무언가를 빌고 싶으면, 반드시 글을 아는 사제를 거쳐야 했어요. 사제만 읽을 수 있는 어려운 옛 언어로, 정해진 순서대로 제사를 지내야 신이 들어 준다고 믿었거든요.
쉽게 비유하면 이런 거예요. 옆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은데, 나는 글을 못 쓰니 꼭 대서소 아저씨한테 돈을 내고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요. 게다가 그 아저씨가 어느 집 자식이냐에 따라 줄을 설 수 있는지 없는지가 갈렸어요. 인도 남부에 살던 한 사람은 바로 이 점이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그 사람이 바사바예요.

바사바는 지금으로부터 약 900년 전, 12세기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이에요. 짐작하기로 1105년쯤 태어나 1167년쯤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놀랍게도 그는 세상을 등진 수행자가 아니라, 왕 밑에서 나라 살림을 맡았던 관리였어요. 요즘으로 치면 정부의 회계 책임자쯤 되는 자리였지요.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는 한 가지 질문을 놓지 않았어요. 신은 모두를 사랑한다는데, 왜 어떤 사람은 태어난 집안 때문에 신 앞에도 못 나가는 걸까. 당시 인도에는 카스트라는 신분 제도가 있었어요. 태어날 때 정해진 신분이 평생, 심지어 자식에게까지 대물림되는 제도였지요. 바사바는 이걸 그냥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바사바가 택한 방법은 뜻밖에도 시였어요. 이 시를 바차나라고 불러요. 바차나는 '말한 것', '뱉은 말'이라는 뜻에 가까워요.
바차나가 특별한 건 두 가지예요. 첫째, 사제만 아는 어려운 옛 언어가 아니라, 동네 사람 누구나 쓰는 일상 말, 즉 칸나다어로 썼어요. 시장에서 물건값을 흥정하던 그 말로 신 이야기를 한 거예요. 둘째, 길고 복잡한 운율 대신 짧고 솔직한 산문처럼 썼어요. 마치 일기장에 적는 혼잣말 같았지요.
예를 들어 바사바는 이런 시를 남겼어요. 부자들은 신을 위해 으리으리한 돌 사원을 짓는다, 그런데 가난한 나는 무엇을 바칠까. 그러더니 답해요. 내 두 다리가 기둥이고, 내 몸이 신전이며, 내 머리가 황금 지붕이라고요. 그러면서 덧붙여요. 가만히 서 있는 것은 언젠가 무너지지만, 살아 움직이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고요. 비싼 건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이 진짜 신전이라는 뜻이지요.

바사바의 생각에서 또 하나 멋진 부분은 일에 대한 태도예요. 그는 정직하게 하는 일이 곧 기도라고 봤어요. 이걸 카야카라고 불렀어요.
빨래하는 사람, 가죽신 만드는 사람, 밭 가는 사람. 당시에는 천한 일로 여겨지던 노동이었어요. 하지만 바사바는 그 손에 흙과 물이 묻는 일이야말로 신을 섬기는 거룩한 행동이라고 말했어요. 따로 절에 가서 비싼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오늘 내가 맡은 일을 속이지 않고 해내면, 그게 바로 신께 드리는 선물이라는 거지요.

말로만 그친 게 아니에요. 바사바는 아누바바 만타파라는 모임을 열었어요. '체험의 광장'쯤으로 옮길 수 있어요.
이곳에서는 신분이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여자도 남자도 똑같이 한자리에 앉아 신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신분으로 자리가 갈리던 그 시대에, 모두가 같은 바닥에 둘러앉았다는 건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어요. 마치 교장 선생님과 1학년 학생이 같은 책상에 앉아 똑같이 손들고 발표하는 교실 같았지요. 여기 모인 사람들이 쓴 바차나가 수백 편 넘게 오늘날까지 전해져요.

바사바를 따르던 사람들의 흐름은 뒷날 링가야트라는 이름으로 이어졌어요. 이들은 작은 신의 상징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멀리 있는 사원이 아니라 자기 몸과 마음 안에서 신을 만났어요. 사제도, 거창한 의례도 거치지 않고요.
바사바가 던진 질문은 사실 단순했어요. 신 앞에서 사람을 나누는 게 옳은가. 그는 어려운 교리로 답하지 않고, 누구나 알아듣는 짧은 시와 함께 사는 방식으로 답했어요. 그래서 그의 말은 학자뿐 아니라 글 모르는 농부의 입에서도 오래 살아남았지요.

바사바는 800여 년 전 인도에서, 신을 만나는 데 특별한 신분이나 사제가 필요하지 않다고 본 사람이에요. 그는 동네 말로 쓴 짧은 시 바차나로 그 생각을 전했고, 정직한 노동을 기도로 여겼으며, 누구나 평등하게 앉는 토론장을 열었어요. 거창한 건물보다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이 진짜 신전이라던 그의 말 한마디만 기억해도, 바차나 시 운동이 무엇을 바꾸려 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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