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 소라이가 47인의 죽음을 결정한 날 - 에도 유학자의 역설
오규 소라이는 충신장 47인의 할복을 명한 사람이었다
47명 사무라이의 죽는 방식은 칼이 아니라 한 사람의 붓이 정했어요.
1703년, 일본 전국이 한 사건으로 술렁였어요.
47명의 낭인들이 주군의 원수를 갚고 자수한 거예요.
배경은 이래요.
주군이 궁중 예절을 몰랐다는 이유로 고위 관리 기라 요시나카에게 모욕을 당하고, 격분해서 칼을 뽑았다가 오히려 할복을 명받았어요.
그 주군을 잃은 47명의 가신들이 2년을 기다려 기라를 베고, 주군 무덤 앞에 그 머리를 바쳤죠.
그런데 여기서 막부에 진짜 골치 아픈 질문이 생겼어요.
"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의로운 행동이지만 명백한 불법"인 케이스에 법학자에게 자문을 구하는 상황이에요.
막부는 당대 최고 학자 오규 소라이(荻生徂徠)에게 의견을 물었어요.
소라이는 자문서에 이렇게 썼어요.
"그들의 행동은 의(義)이지만, 그것은 사사로운 의입니다. 법은 천하의 법이니 처형이 아닌, 무사의 신분에 걸맞은 할복을 명하십시오."
그 글 한 장이 결말을 결정했어요.
47인은 죄인이 아니라 무사로 죽었어요.
오늘날 영화와 연극으로 남은 그 장면, 흰 옷을 입고 조용히 칼을 드는 그 결말이 사실은 한 유학자의 붓끝에서 나온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