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롭슨 금속유기골격체, 금속 이온과 유기분자를 이어 속이 빈 결정을 설계한다
리처드 롭슨은 금속 이온을 이음매로, 팔이 여러 개 달린 유기분자를 막대로 삼으면 원하는 모양의 결정을 사람이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그 결정 안에는 다이아몬드에는 없는 큰 빈 공간이 생기는데, 이 빈 공간이 오늘날 금속유기골격체, 줄여서 MOF라 부르는 물질의 출발점입니다.
리처드 롭슨은 누구일까
2025년 노벨 화학상은 세 사람에게 돌아갔습니다. 리처드 롭슨, 교토대학의 스스무 기타가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의 오마르 야기입니다. 수상 이유는 금속유기골격체를 개발했다는 것이었어요. 그중 롭슨은 이 물질의 설계 원리를 가장 먼저 연 사람입니다.
롭슨은 1937년 6월 4일 영국 잉글랜드의 글러스번에서 태어났습니다. 옥스퍼드대학교 브레이즈노스 칼리지에서 1959년에 화학 학사, 1962년에 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과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를 했어요. 1966년에 호주 멜버른대학교 무기화학과 강사로 부임한 뒤 2004년 은퇴할 때까지 그 대학에 머물렀습니다. 즉 그의 대표 연구는 화려한 대형 연구소가 아니라, 오래 한자리를 지킨 교수의 책상에서 나온 셈입니다.
나무 공과 막대에서 시작한 발상
이야기의 출발점은 뜻밖에도 강의 준비였습니다. 1974년, 학과장이던 돈 스트랭크스 교수가 롭슨에게 1학년 화학 수업에 쓸 결정 구조 모형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나무로 깎은 공을 원자로 삼고, 막대를 꽂아 결합을 표현하는 그 모형이요. 과학관에서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모형을 만들며 롭슨은 한 가지에 주목했습니다. 구조를 결정하는 건 공 자체가 아니라 공에 뚫린 구멍의 위치와 개수라는 점이었어요. 구멍이 네 방향으로 나 있으면 어떻게 조립해도 결과는 정해진 모양이 됩니다. 여기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회고합니다. "공 대신 분자를, 막대 대신 화학결합을 쓰면 어떨까?"
레고를 떠올리면 쉽습니다. 레고 블록은 돌기와 홈의 자리가 정해져 있어서, 눈을 감고 끼워도 어긋나지 않아요. 분자에도 팔이 뻗은 방향이 정해져 있다면, 사람이 원하는 구조를 미리 그려 놓고 조립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다이아몬드를 흉내 내되 속을 비웠다
다만 이 생각이 실제 물질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1974년의 깨달음이 논문으로 이어진 건 1989년이니, 약 15년이 지난 뒤였어요. 어느 날 번쩍 떠오른 영감이 곧장 발명이 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1980년대 후반, 롭슨은 다이아몬드의 구조에서 힌트를 얻습니다.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 하나가 다른 탄소 네 개와 결합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구조예요. 롭슨은 그 연결 방식만 빌려 왔습니다. 탄소 자리에는 구리 이온을 놓고, 짧은 탄소끼리의 결합 대신 팔이 네 개 달린 긴 유기분자를 끼운 거죠.
결과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연결 방식이면서 전혀 다른 물건이었습니다. 이음매 사이의 막대가 길어졌으니, 그 사이에 커다란 빈 방이 생긴 겁니다. 다이아몬드는 속이 꽉 찬 돌덩이지만 롭슨의 결정은 구멍이 숭숭 뚫린 구조물이었어요. 정글짐을 떠올리면 됩니다. 쇠막대만 있고 대부분은 공기죠.
이 성과는 1989년 버나드 호스킨스와 함께 미국화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으로 세상에 나왔고, 1990년 후속 논문에서 구조가 상세히 밝혀졌습니다. 롭슨은 훗날 이때를 돌아보며, 자신은 결정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호스킨스는 그 구조를 밝혀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1998년에는 스튜어트 배튼과 함께 골격끼리 서로 얽히는 현상을 정리한 논문도 발표했어요.
왜 노벨상을 셋이 나눠 받았을까
롭슨의 결정에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빈 방 안에 들어 있던 손님 분자를 빼내면 골격이 쉽게 주저앉았어요. 텐트에서 지지대를 뽑으면 천이 폭삭 내려앉는 것과 비슷합니다. 빈 공간이 계속 유지되는 성질, 즉 영구 다공성을 증명하지는 못한 겁니다.
그 문제를 푼 사람이 기타가와와 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1992년부터 2003년 사이에 각자 독립적으로 연구하며 골격의 안정성과 영구 다공성 문제를 해결했어요. 금속유기골격체라는 이름도 1995년쯤 야기가 만든 말입니다. 롭슨 본인은 자신의 물질을 배위 고분자라고 불러 왔어요.
| 인물 | 시기 | 해결한 문제 |
|---|---|---|
| 리처드 롭슨 | 1989년부터 1990년까지 | 금속 이온과 유기분자로 원하는 골격을 설계하는 원리를 열었다 |
| 스스무 기타가와, 오마르 야기 | 1992년부터 2003년까지 | 골격이 무너지지 않고 빈 공간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
세 사람이 동시에 같은 것을 발견한 게 아니라, 먼저 문을 연 사람과 그 뒤의 난제를 각각 푼 사람들의 관계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 빈 공간이 왜 쓸모 있을까
금속유기골격체의 매력은 내부 표면적이 압도적으로 넓다는 데 있습니다. 티스푼 하나 분량의 가루가 축구장 넓이에 맞먹는 내부 표면적을 가질 수 있어요. 스펀지가 물을 많이 머금는 이유와 같은 원리인데, 규모가 훨씬 극단적입니다.
그래서 기체를 붙잡아 두는 일에 잘 맞습니다.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거나, 사막의 마른 공기에서 물을 거둬들이거나, 위험한 가스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이야기됩니다. 화학 반응을 돕는 촉매, 의료 영상과 약물 전달, 수술실에서 마취가스를 회수하는 일까지 응용 분야로 거론돼요.
롭슨은 1998년 왕립호주화학연구소 무기화학분과의 버로우상을 받았고, 2000년에 호주과학아카데미 펠로우, 2022년에 영국왕립학회 펠로우로 뽑혔습니다. 2024년에는 자신의 연구 과정을 직접 정리한 회고 논문도 발표했어요. 노벨상 발표 뒤 이 분야가 이렇게 커질 줄 놀라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전혀요. 그렇게 될 게 분명했으니까요."
정리
리처드 롭슨이 한 일은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금속 이온을 이음매로, 팔 달린 유기분자를 막대로 삼으면 사람이 원하는 구조의 결정을 설계할 수 있고, 그 결정 안에는 커다란 빈 공간이 남는다는 것. 이 원리는 1974년 강의용 나무 모형을 만들다 떠올라 1989년에 논문이 되었습니다.
다만 그의 골격은 여전히 쉽게 무너졌고, 무너지지 않게 만든 건 기타가와와 야기였습니다. 금속유기골격체라는 이름조차 롭슨의 말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2025년의 상은 한 사람의 발명이 아니라 순서대로 이어진 세 사람의 작업에 주어진 것에 가깝습니다.
지금 이 물질은 공기에서 물을 얻고 이산화탄소를 붙잡는 연구의 재료가 되어 있습니다. 그 시작에는 1학년 학생들에게 결정 구조를 보여 주려고 나무 공에 구멍을 뚫던 한 교수의 손이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