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평등주의, 어디서 시작됐을까
한용운의 평등주의는 모든 생명이 부처가 될 씨앗을 똑같이 품고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나왔어요. 그는 이 믿음을 사람 사이 차별을 없애는 일로, 또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일로 이어 갔습니다.
평등주의가 무슨 뜻일까
교실에서 자리를 정할 때, 누구는 앞자리에 누구는 뒷자리에 앉지요.
그런데 만약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더 훌륭하다"고 누군가 미리 정해 둔다면 어떨까요?
좀 이상하지요.
자리는 그냥 자리일 뿐인데요.
한용운(1879년~1944년)이 살던 시대의 조선이 꼭 그랬어요.
양반과 상놈, 남자와 여자, 스님과 일반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자리표가 정해져 있었고, 사람들은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지요.
어떤 집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평생의 자리가 거의 정해지던 시대였어요.
한용운이 말한 평등주의는 생각보다 간단해요. "그 자리표는 가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높고 낮음이 정해진 게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귀하다는 뜻이에요.
만해(萬海)라는 호로도 불린 그는 이 생각을 평생 붙들고 살았습니다.
글로 쓰기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고요.
이제 그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따라가 볼게요.
이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
한용운은 승려였어요.
그래서 그의 평등주의는 멀리 부처님의 가르침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불교에는 "모든 생명에게는 부처가 될 씨앗이 있다"는 말이 있어요.
어려운 말로 불성(佛性)이라고 해요.
사과 씨앗 하나하나가 다 사과나무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임금이든 거지든 마음속에 똑같은 씨앗을 품고 있다는 거예요.
어떤 씨앗은 좋은 흙에서, 어떤 씨앗은 메마른 땅에서 자라지만, 씨앗 자체에 높고 낮음이 있는 건 아니지요.
자, 씨앗이 다 똑같은데 누가 누구보다 높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용운은 바로 이 지점을 붙잡았어요.
사람을 위아래로 나누는 일은 불교의 가르침과 애초에 맞지 않는다고 본 거예요.
그는 1913년에 『조선불교유신론』이라는 책을 펴냈어요. '유신'은 낡은 것을 새롭게 고친다는 뜻이에요.
그는 이 책에서 당시 불교가 세상과 동떨어진 채 게으르고 낡았다고 따끔하게 비판했어요.
그리고 절도 깊은 산속에만 숨어 있지 말고, 사람들이 사는 세상 속으로 내려와 평범한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종교가 높은 자리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 곧 평등이라고 본 셈이에요.
부처가 될 씨앗이 모두에게 있다면, 그 씨앗이 잘 자라도록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을 열어 주는 게 마땅하다는 거였지요.

차별과 평등, 무엇이 달랐을까
말로만 평등을 외치긴 쉬워요.
한용운이 특별했던 건, 그 생각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자고 했다는 점이에요.
그가 바꾸자고 한 것들을 표로 나란히 볼까요.
| 그때의 모습 | 한용운이 바란 모습 |
|---|---|
| 스님은 산속에만 머물러야 했어요 |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과 함께 살아요 |
| 종교가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어요 | 누구나 쉽게 다가가 배워요 |
| 여자와 가난한 이는 배움에서 밀려났어요 | 누구나 똑같이 배우고 깨달아요 |
이런 주장은 그때로선 깜짝 놀랄 만큼 앞선 거였어요.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던 자리표를 향해 "왜 꼭 그래야 하죠?"라고 되물은 셈이니까요.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주변에서 욕을 먹거나 미움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한용운은 그 미움을 무릅쓰고, 모두가 입을 다물 때 먼저 목소리를 낸 사람이었어요.
평등이 어떻게 독립으로 이어졌을까
여기서 한용운은 한 걸음 더 나아가요.
생각해 보세요.
사람과 사람이 평등하다면, 나라와 나라도 평등하겠지요.
그렇다면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짓누르고 함부로 지배하는 일은, 평등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일이 돼요.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힘으로 누르며 "넌 내 말만 들어"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한용운에게 독립운동은 단순한 정치 싸움이 아니었어요.
모든 사람이 똑같이 귀하다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일이었지요.
그는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어요.
이 일로 감옥에 갇혀서도 그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1926년에 펴낸 시집 『님의 침묵』에는 떠나간 '님'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이 담겨 있는데, 그 '님'에는 빼앗긴 나라와 지키고 싶은 진리가 함께 겹쳐 있어요.
평등을 믿었기에 누구도 다른 누구를 함부로 지배할 수 없다고 본 것, 그것이 그의 독립 정신의 밑바탕이었어요.
오늘 우리에게 무슨 뜻일까
백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보이지 않는 자리표는 곳곳에 남아 있어요.
누구는 잘사는 동네에서, 누구는 그렇지 못한 곳에서 태어나지요.
출신이나 겉모습, 가진 것으로 사람을 슬그머니 줄 세우려는 마음도 여전하고요.
한용운의 평등주의는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요. "그 줄, 정말 진짜인가요?" 씨앗은 모두 같다는 것, 그래서 함부로 누구를 낮춰 봐선 안 된다는 것.
친구를 사는 동네나 성적으로 줄 세우지 않고 한 사람으로 봐 주는 것, 새로 전학 온 친구를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한용운이 말한 평등의 작은 시작이에요.
이건 멀고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곁에서도 그대로 살아 있는 생각이에요.
정리
한용운의 평등주의는 "모든 생명에게 부처가 될 씨앗이 똑같이 있다"는 불교 가르침에서 출발했어요.
그는 이 믿음을 들고 낡은 불교를 고치자고 했고(『조선불교유신론』), 차별 없는 세상을 바랐으며, 끝내 나라의 독립까지 외쳤어요.
사람을 위아래로 줄 세우는 자리표가 가짜라는 그의 물음은, 우리가 누군가를 무심코 낮춰 볼 때 다시 한번 떠올려 볼 만한 생각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