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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순자는 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에 활동한 유가 사상가로, 본명은 순황(荀況)이고 당대에 "가장 존경받는 스승"(最爲老師)으로 불렸습니다. 사람이 타고난 성(性)을 그대로 따르면 다툼과 약탈로 흘러가므로 스승의 가르침과 예(禮)로 그 성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 입장이 흔히 성악설로 불립니다. 그가 가르친 한비(韓非)와 이사(李斯)가 훗날 법가와 진(秦)나라 정치로 나아가면서 순자의 평판은 후대에 크게 훼손됐습니다.
| 항목 | 내용 |
|---|---|
| 본명 | 순황(荀況). 당대 호칭은 "가장 존경받는 스승"(最爲老師) |
| 생몰 | 확정된 사실 없음. 스탠퍼드 철학백과는 기원전 310년경 출생으로 추정하고, 후원자가 암살된 기원전 238년 이후 사망으로 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기원전 298년경에서 238년경으로 제시합니다(모두 학계 추정) |
| 출신과 활동지 | 조(趙)나라 출생, 제(齊)나라 직하학궁(稷下學宮) 유학, 초(楚)나라 난릉(蘭陵) 현령(令) 역임 후 그곳에 묻힘 |
| 전통 | 유가 |
| 대표 저작 | 《순자》. 전한(前漢)의 유향(劉向)이 순자의 것으로 확인한 죽간 322편에서 중복 290편을 덜어내고 편집한 것이 현존 판본의 기원 |
| 핵심 개념 | 성(性)과 인위(僞), 화성기위(化性起僞), 예(禮), 지천(知天)과 지도(知道)의 구분, 마음(心)의 허(虛)·일(壹)·정(靜) |
| 1차 자료 문제 | 주요 전기인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유명 철학자를 다룰 때 심각한 왜곡을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성악〉편의 저자 진위 자체가 논쟁 중 |
순자는 전국시대 말기에 활동한 유가 사상가로,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기원전 221년) 직전 시기의 사상계에서 활약했습니다. 조(趙)나라에서 태어나 열서너 살 무렵인 기원전 297년에서 295년경 제(齊)나라의 직하학궁(稷下學宮)으로 유학했는데, 이곳은 제나라 선왕이 세운 당대 가장 중요한 철학 중심지였습니다(영어 위키백과).
순자의 생몰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스탠퍼드 철학백과는 그가 직하학궁에 간 나이를 쉰 살로 보는 설보다 열다섯 살로 보는 설이 타당하다고 판단해 출생을 기원전 310년경으로 추정하고, 후원자 춘신군(春申君)이 암살된 기원전 238년에는 생존해 있었으므로 사망은 그 이후라고 봅니다(스탠퍼드 철학백과).
순자가 받은 대우는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나라로 돌아온 순자에게 양왕(襄王)은 세 차례 술을 올리게 했는데, 이는 가장 존경받는 학자에게만 허락되는 예우였습니다. 기원전 240년에는 초나라 재상 춘신군의 초빙으로 난릉(蘭陵) 현령이 되었지만, 2년 뒤 춘신군이 정적에게 암살되자 관직을 잃고 은퇴해 난릉에서 여생을 보내고 그곳에 묻혔습니다. 초나라에 머무는 동안에는 부(賦) 시체에 능통해져 그의 시집이 오랫동안 높이 평가받았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습니다(영어 위키백과).
순자의 성악설은 사람이 타고난 대로 살면 사회가 무너진다는 주장이지, 사람 안에 지울 수 없는 죄가 박혀 있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순자의 핵심 명제는 사람의 성(性)이 악(惡)하며 "선한 것은 인위다"(其善者偽也)라는 것입니다(스탠퍼드 철학백과).
《순자》 23.1a는 이 논증을 이렇게 폅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익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 그것을 그대로 따르면 다툼과 약탈이 일어나고 사양과 예의가 무너지므로, 스승의 방법과 예의의 도가 가져오는 변화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래야 질서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Human xing is evil; what is good is artifice. Now human xing is as follows. At birth there is fondness for profit in it. If one follows this, contention and robbery arise, and deference and courtesy are destroyed. … There must be the transformation brought about by] the methods of a teacher and the Way of ritual and morality; this will result in deference and courtesy, converge on refinement and principles, and come to rest in order. Using these [considerations] to see it, human xing is clearly evil; what is good is artifice." (《순자》 23.1a, [스탠퍼드 철학백과)
여기서 성(性)이 무엇을 가리키는지가 결정적입니다. 순자가 정의한 성은 "태어나면서 그러한 것"(《순자》 22.1b)입니다. 재료이자 출발점이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닙니다. 그래서 순자의 도덕적 자기수양은 본성을 없애거나 버리는 일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化性)이며, 이를 한 구절로 묶은 명제가 화성기위(化性起僞), 곧 본성을 변화시켜 인위를 일으킨다는 말입니다(위키백과).
순자와 맹자는 흔히 정반대의 인간관을 가진 것으로 대비되지만, 최근 연구는 두 사람의 차이가 상당 부분 용어 정의의 차이에서 왔다고 재평가합니다. 스탠퍼드 철학백과에 따르면 순자와 맹자 모두 "사람은 노력하면 선해질 수 있다"는 데는 동의했고, 갈라진 지점은 성(性)이라는 한 글자를 서로 다르게 정의해 쓴 데 있습니다(스탠퍼드 철학백과).
순자에게 성은 "태어나면서 그러한 것"입니다. 반면 맹자는 성을 "도달해야 할 이상적 상태"라는 의미로 썼습니다. 같은 글자를 두고 한쪽은 출발점을, 다른 쪽은 목적지를 가리킨 셈이니, 결론이 정반대로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흥미로운 방증도 있습니다. 궈뎬(郭店)에서 나온 유가 문헌 《성자명출(性自命出)》은 대략 기원전 300년경 것으로 추정되는데, 성을 순자와 비슷한 방식으로 정의합니다. 이는 오히려 맹자 쪽의 용법이 당대에는 이례적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순자에게 예(禮)는 사람들이 우연히 합의한 관습이 아니라, 욕망이 부딪히는 세계에서 사회를 성립시키는 조건입니다. 순자는 예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人之所以為人者)에 부합하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스탠퍼드 철학백과).
논증의 출발은 자원의 유한함입니다. 《순자》 4.12는 사람들이 욕망을 그대로 따르면 어떤 경계로도 그들을 담을 수 없고 어떤 물건으로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선왕들이 그들을 제어하고 예와 도덕을 세워 나눴다고 말합니다.
예를 지키느냐 마느냐는 통치의 성패와 직결됩니다. 《순자》 15.4는 왕과 공이 예를 따르면 그것으로 천하를 얻고, 따르지 않으면 그것으로 사직을 잃는다고 말합니다. 예를 개인의 몸가짐 문제로 축소하지 않고 정치의 조건으로 놓은 것이 순자의 특징입니다.
순자는 하늘을 인간사에 개입해 뜻을 내려보내는 존재로 읽는 태도를 정면으로 거부했습니다. 순자는 "하늘을 아는 것"(知天)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한 시도이지만 "도를 아는 것"(知道)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구분했습니다(스탠퍼드 철학백과).
그래서 순자는 유성이 떨어지거나 나무가 우는 소리 같은 기이한 현상을 하늘의 경고로 해석하는 데 반대했습니다. 그런 일은 "천지의 변화, 음양의 조화, 물질적 이변"일 뿐이라고 규정했고, 이런 현상을 가리켜 요(祅)라고 불렀습니다.
의례를 대하는 태도도 같은 논리를 따릅니다. 《순자》 17.8은 기우제를 지내고 비가 왔다고 해서 그게 무슨 뜻이겠느냐고 묻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어도 비는 왔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군자는 이런 의식을 꾸밈으로 여기고 백성은 신령한 것으로 여기는데, 꾸밈으로 여기면 길하고 신령한 것으로 여기면 흉하다고 덧붙입니다. 의례를 폐지하자는 말이 아니라, 의례의 효력을 초자연이 아니라 사람 쪽에 두자는 말입니다.
순자에게 마음(心)은 몸의 다른 기관과 결정적으로 다른 기관, 곧 스스로 명령을 내리되 남의 명령은 받지 않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순자》 21.6a는 마음이 몸의 주인이며 명령을 내리지만 명령을 받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스탠퍼드 철학백과).
순자는 이 마음이 허(虛), 일(壹), 정(靜)이라는 세 능력을 지닌다고 보았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 세 용어가 《장자》에서 빌려온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학파의 경계를 넘어 개념을 가져다 자기 체계에 배치한 셈입니다.
마음이 이렇게 특별한 기관이기 때문에 성악설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타고난 성이 이익을 좋아하더라도, 명령을 받지 않는 마음이 있으므로 사람은 스승과 예를 통해 자기 성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순자》 21.1은 세상에 두 개의 도는 없고 성인은 결코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순자는 음악(樂)이 사회적 조화와 도덕적 교화의 도구라고 논증했습니다. 이는 묵자(墨翟)를 겨냥한 주장입니다. 묵자는 음악을 낭비로 여겼는데, 순자는 이에 정면으로 반대했습니다(스탠퍼드 철학백과, 영어 위키백과).
이 논쟁은 예를 보는 관점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예와 음악을 비용으로 계산하면 둘 다 없애는 편이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순자는 그것들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장치라고 보았으므로, 낭비라는 계산 자체가 잘못된 항목을 세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현존 《순자》는 순자가 한 권으로 써서 남긴 책이 아니라, 사후 편집을 거쳐 성립한 문헌입니다. 전한(前漢)의 궁정 서지관 유향(劉向, 기원전 79년에서 8년)이 순자의 것으로 확인한 죽간 322편을 모은 뒤, 그중 290편을 중복으로 제외하고 편집한 것이 현존 판본의 기원입니다(스탠퍼드 철학백과).
편집 흔적은 본문에도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병議兵〉 같은 편은 순자를 "손경자(孫卿子)"라고 부르는데, 이는 순자 생전에 그 자신이 쓰지 않았을 존칭입니다. 즉 어떤 편은 제자나 후대 사람이 정리한 기록일 가능성이 큽니다.
주석의 역사도 상당히 늦게 시작됩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순자》 주석은 818년 무렵 활동한 양경(楊倞)이 남긴 것입니다. 한편 순자의 생애를 전하는 주요 전기 자료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인데, 이 책은 특히 유명 철학자들을 다룰 때 심각한 왜곡을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전기 정보를 다룰 때 주의가 필요합니다.
순자의 제자 중에는 훗날 법가 사상가가 된 한비(韓非)와 진(秦)나라 승상이 된 이사(李斯)가 있었고, 이 사제관계가 후대에 순자의 평판을 크게 훼손했습니다(스탠퍼드 철학백과, 영어 위키백과).
논리는 단순합니다. 제자가 법가로 갔으니 스승의 사상에 이미 법가의 씨앗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송(宋)대의 주희(朱熹, 1130년에서 1200년)는 순자의 철학이 신불해(申不害)나 상앙(商鞅) 같은 비유가 사상가와 유사하다고 평했고, 진나라의 파국에 순자가 간접적 책임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후 순자는 오랫동안 유가 주류에서 배척되었습니다.
다만 스탠퍼드 철학백과는 순자가 법가를 열었다는 식의 통설을 "지나치게 반복된 상투적 비판"이라고 명시적으로 지적합니다. 제자의 행로로 스승의 사상을 규정하는 방식 자체가 논증이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순자에 대한 평가는 시대마다 크게 흔들렸습니다. 사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는 진지한 철학자로 다뤄졌습니다.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98년경에서 107년경)는 순자를 기리는 글을 썼고(지금은 전하지 않습니다), 왕충(王充, 27년에서 100년경)과 반고(班固, 32년에서 92년)도 그를 진지하게 다뤘습니다(스탠퍼드 철학백과).
전환점은 송대입니다. 주희가 순자를 비유가 사상가와 묶어 비판한 뒤 순자는 유가 주류에서 오래 밀려났습니다.
청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또 다른 각도의 비판이 쏟아집니다. 캉유웨이(康有爲, 1858년에서 1927년), 탄쓰퉁(譚嗣同, 1865년에서 1898년), 량치차오(梁啟超, 1873년에서 1929년) 등은 순자를 공자와 맹자의 본래 사명을 뒤틀어 중국을 이천 년 넘는 권위주의와 부패의 순환에 빠뜨린 장본인으로 지목했습니다. 근대 중국의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 한 사람에게 묶는 방식의 비판이었습니다.
통념: 성악설의 "악"은 서구의 evil, 곧 원죄 같은 악이다.
실제로는 다릅니다. 스탠퍼드 철학백과는 악(惡, e)의 본래 뜻이 "혐오스러운, 바람직하지 못한"에 가까우며, 이 글자를 evil이 아니라 bad로 옮기는 학자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성악설"이라는 이름이 주는 종교적 울림은 원문에 없는 것입니다.
통념: 순자와 맹자는 인간관이 정반대다.
실제로는 두 사람 모두 사람이 노력하면 선해질 수 있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스탠퍼드 철학백과에 따르면 최근 연구의 재평가는, 차이가 성(性)이라는 용어를 서로 다르게 정의해 쓴 데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통념: 〈성악〉편은 순자 사상의 확실한 근거다.
실제로는 그 편의 진위 자체가 논쟁 대상입니다. 저우츠청(Zhou Chicheng, 2015년)의 연구는 인간 본성이 악하다고 말하는 23장이 순자 본인이 쓴 것이 아니며 그의 실제 입장을 왜곡한다고 주장합니다.
통념: 순자는 도(道)를 인간이 만들어낸 것으로 본 구성주의자다.
근거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은 《순자》 8.3, 곧 도는 하늘의 도도 땅의 도도 아니고 사람이 도라고 여기는 것이며 군자가 그것을 따른다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스탠퍼드 철학백과는 이 해석이 순자 철학 전체와 모순되며, 가장 오래된 주석가 양경(楊倞)도 이를 완화해 해석했다고 설명합니다. 한 구절만으로 순자를 도의 구성주의자로 단정하는 것은 학계에서도 논쟁적입니다.
통념: 순자가 법가를 열었다.
스탠퍼드 철학백과는 이런 통설을 "지나치게 반복된 상투적 비판"이라고 명시적으로 지적합니다. 한비와 이사가 그의 제자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이 순자를 법가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통념: 순자의 저작은 당(唐)나라 때 유향이 정리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이렇게 서술하지만, 스탠퍼드 철학백과와 영어 위키백과는 유향을 기원전 79년에서 8년의 인물, 곧 전한 말 사람으로 명시합니다. 이 부분은 출처 사이에 명백히 상충하며, 두 영어권 출처 쪽이 서로 일치합니다.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는 뜻인가요?
순자가 말하는 성(性)은 "태어나면서 그러한 것", 곧 사람이 손대기 전의 재료입니다. 순자는 이 성을 그대로 따르면 다툼과 약탈이 일어난다고 보았고, 그래서 스승의 가르침과 예로 성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없애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점이 핵심이며, 이를 화성기위(化性起僞)라고 부릅니다.
순자의 생몰연대는 언제인가요?
확정된 사실이 없습니다. 스탠퍼드 철학백과와 영어 위키백과는 출생을 기원전 310년경으로 추정하고, 후원자 춘신군이 암살된 기원전 238년 이후에 사망했다고 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기원전 298년경에서 238년경으로 제시합니다. 어느 쪽도 확정된 사실이 아니며 모두 학계 추정입니다.
《순자》는 순자가 직접 쓴 책인가요?
현존 《순자》는 전한의 유향이 죽간 322편을 모아 중복 290편을 덜어내고 편집한 것에서 출발합니다. 일부 편은 순자를 "손경자(孫卿子)"라는 존칭으로 부르는데, 이는 순자 자신이 쓰지 않았을 표현이라 그 편들이 후대 정리본임을 시사합니다.
순자가 법가를 만들었다는 말은 사실인가요?
한비와 이사가 순자의 제자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스탠퍼드 철학백과는 순자가 법가를 열었다는 통설을 지나치게 반복된 상투적 비판이라고 지적합니다. 송대 주희가 순자를 신불해나 상앙과 묶어 평가한 뒤 이런 인식이 굳어졌습니다.
순자는 하늘의 뜻을 믿었나요?
순자는 "하늘을 아는 것"(知天)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지만 "도를 아는 것"(知道)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구분했습니다. 유성이나 나무가 우는 소리를 하늘의 경고로 읽는 데 반대했고, 그런 현상은 천지의 변화이자 음양의 조화, 물질적 이변일 뿐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순자를 읽을 때 붙잡을 것은 "성악"이라는 이름표가 아니라 성(性)이라는 글자의 정의입니다. 순자에게 성은 사람이 손대기 전의 재료이고, 그래서 스승과 예(禮)가 필요합니다. 맹자와의 대립도 상당 부분 이 정의 차이에서 나옵니다.
순자가 남긴 문헌은 한 사람이 앉아서 쓴 책이 아닙니다. 유향의 편집을 거쳤고, 후대 존칭이 본문에 섞여 있고, 정작 가장 유명한 〈성악〉편은 진위가 논쟁 중입니다. 순자를 인용할 때 편 번호와 출처를 함께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순자는 오랫동안 제자들 때문에 읽히지 못했습니다. 한비와 이사가 어디로 갔는지가 스승이 무엇을 말했는지를 가려버린 것입니다. 난릉의 현령 자리를 잃고 그곳에 묻힌 사람의 책이, 그 뒤로 이천 년 가까이 남의 이력으로 평가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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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순자
Xunzi
기원전 310년
사람의 본성은 악하니 배움이 필요하다 본 유학자, 성악설.

이사
Li Si
기원전 280년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도운 법가 재상.

맹자
Mencius
기원전 372년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하다고 본 유학자, 성선설.

주희
Zhu Xi
1130년
성리학을 집대성한 송대 유학자.

이고
Li Ao
772년
성(性)의 회복으로 성인에 이름을 논한 당대의 유학자.

묵자
Mozi
기원전 470년
차별 없는 사랑과 평화를 외친 사상가, 겸애.

상앙
Shang Yang
기원전 390년
엄격한 법으로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법가.

신불해
Shen Buhai
기원전 400년
군주의 통치술을 강조한 법가 사상가.

공자
Confucius
기원전 551년
어짊과 예로 사람다움을 가르친 유교의 창시자.

장자
Zhuangzi
기원전 369년
나비 꿈처럼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노닐라 한 도가 사상가.

동중서
Dong Zhongshu
기원전 179년
유교를 한나라의 국가 이념으로 세운 학자.

캉유웨이
Kang Youwei
1858년
대동 세상을 꿈꾼 청말 개혁 사상가.

양계초
Liang Qichao
1873년
근대 중국 계몽을 이끈 언론인이자 사상가.

왕충
Wang Chong
27년
미신을 비판한 후한의 합리주의자.

순자
Xunzi
기원전 310년
사람의 본성은 악하니 배움이 필요하다 본 유학자, 성악설.

이사
Li Si
기원전 280년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도운 법가 재상.

맹자
Mencius
기원전 372년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하다고 본 유학자, 성선설.

주희
Zhu Xi
1130년
성리학을 집대성한 송대 유학자.

이고
Li Ao
772년
성(性)의 회복으로 성인에 이름을 논한 당대의 유학자.

묵자
Mozi
기원전 470년
차별 없는 사랑과 평화를 외친 사상가, 겸애.

상앙
Shang Yang
기원전 390년
엄격한 법으로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법가.

신불해
Shen Buhai
기원전 400년
군주의 통치술을 강조한 법가 사상가.

공자
Confucius
기원전 551년
어짊과 예로 사람다움을 가르친 유교의 창시자.

장자
Zhuangzi
기원전 369년
나비 꿈처럼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노닐라 한 도가 사상가.

동중서
Dong Zhongshu
기원전 179년
유교를 한나라의 국가 이념으로 세운 학자.

캉유웨이
Kang Youwei
1858년
대동 세상을 꿈꾼 청말 개혁 사상가.

양계초
Liang Qichao
1873년
근대 중국 계몽을 이끈 언론인이자 사상가.

왕충
Wang Chong
27년
미신을 비판한 후한의 합리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