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조식은 1501년부터 1572년까지 살았던 조선의 철학자예요. 마음을 또렷이 깨우는 '경'과 옳은 일을 실천으로 밀고 나가는 '의'를 좌우명 삼아, 칼과 방울을 늘 몸에 지니고 평생 벼슬 없이 학문과 실천에 힘쓴 선비였어요.
한 선비가 늘 허리에 칼을 차고, 옷섶에는 작은 쇠방울을 달고 다녔어요.
무사도 아닌데 말이지요.
오늘 함께 살펴볼 조선 철학자 조식이 바로 그 주인공이에요.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그가 왜 칼과 방울을 지녔는지, 또 왜 끝까지 벼슬을 마다했는지 알게 될 거예요.
조식은 1501년부터 1572년까지 살았어요.
호는 남명이에요.
재미있게도 같은 해에 태어난 또 한 명의 큰 학자가 있는데, 바로 퇴계 이황이지요.
두 사람은 당시 경상도를 동과 서로 나눠 학문을 이끌었어요.
이황은 동쪽 안동에서, 조식은 서쪽 지리산 자락 산청에서 제자를 길렀답니다.
조식은 나라에서 여러 번 벼슬을 내렸는데도 한 번도 나가지 않은 '처사', 곧 벼슬 없이 시골에서 공부한 선비였어요.
먼저 방울부터 볼까요.
방울은 오늘날로 치면 알람 같은 거예요.
공부하다 졸리거나 딴생각이 스멀스멀 들 때, 몸을 움직이면 방울이 짤랑 울리지요.
그 소리에 '아, 정신 차리자' 하고 마음을 다잡는 거예요.
그래서 이 방울 이름이 '성성자'예요. '또렷또렷 깨어 있어라'라는 뜻이지요.
칼은 결단을 뜻해요.
옳고 그름이 눈앞에 갈렸을 때, 망설이지 않고 잘못된 쪽을 싹 베어 내겠다는 마음이에요.
조식은 이 칼에 글귀를 새겼어요.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이고, 밖으로 끊어 내는 것은 의다.' 칼과 방울은 그저 장식이 아니라, 날마다 자신을 다그치는 공부 도구였던 셈이에요.
조식 철학의 두 기둥이 바로 '경'과 '의'예요.
이름이 비슷해 헷갈리기 쉬운데, 향하는 방향이 서로 달라요.
표로 정리해 볼게요.
| 구분 | 경 | 의 |
|---|---|---|
| 향하는 곳 | 안, 내 마음 | 밖, 세상일 |
| 하는 일 | 마음을 또렷이 깨어 있게 함 | 옳은 일을 실천으로 결단함 |
| 비유 | 방울 | 칼 |
쉽게 말하면 '경'은 마음을 닦는 일이고, '의'는 그 닦은 마음으로 바르게 행동하는 일이에요.
안에서 마음을 맑게 갈고, 밖에서 옳게 움직인다.
조식은 이 둘이 짝을 이뤄야 진짜 공부라고 봤어요.
조식은 책상 앞 이론보다 실천을 훨씬 중요하게 여겼어요.
그래서 다른 학자들이 즐긴 어려운 이론 논쟁과는 거리를 뒀지요.
대신 바른말은 목숨 걸고 했어요.
1555년, 그는 임금 명종에게 글을 한 편 올려요.
흔히 '단성소'라고 불러요.
이 글에서 조식은 당시 권력을 쥔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를 '깊은 궁궐 속 한 과부'라 부르고, 명종을 '돌아가신 임금의 어린 아들'이라고 적었어요.
임금 앞에서 이렇게 직설로 쓰는 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일이었지요.
벼슬자리는 마다한 대신, 할 말은 똑바로 한 거예요.
조식의 가르침이 가장 또렷이 드러난 순간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찾아왔어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식에게 배운 제자들이 곳곳에서 의병을 일으켰거든요.
붉은 옷을 입은 의병장으로 유명한 곽재우, 그리고 정인홍 같은 이들이 그의 제자였어요.
스승이 늘 강조한 '의', 곧 옳은 일은 실천으로 끊어 내라는 가르침을 제자들이 몸으로 보여 준 셈이에요.
말로만 끝나는 공부가 아니라, 위기 앞에서 행동하는 공부.
그게 조식이 평생 칼과 방울로 벼린 정신이었어요.
조식은 마음을 깨우는 '경'과 옳음을 실천하는 '의', 이 둘을 평생 좌우명 삼은 조선의 철학자예요.
방울로 마음을 또렷이 깨우고, 칼로 옳고 그름을 결단했지요.
벼슬은 마다했지만 바른말은 피하지 않았고, 그 실천하는 학풍은 제자들이 의병으로 이어 갔어요.
조식을 한마디로 기억한다면, 아는 것을 반드시 행동으로 옮긴 선비라고 할 수 있겠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