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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노자는 『도덕경』의 저자로 전해지는 고대 중국의 사상가로, 도(道)와 무위(無爲)를 중심에 둔 가르침 때문에 훗날 도가(道家)의 시조로 꼽혀요. 다만 노자가 실존한 단일 인물인지, 『도덕경』이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책인지는 현대 학계에서 정설이 아니고, 여러 저자를 거쳐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격언 모음이라는 견해가 유력해요. 카를 야스퍼스(1974)는 그럼에도 노자를 인류 발전의 방향을 형성한 '축의 시대' 철학자 가운데 하나로 꼽았어요.
| 항목 | 내용 |
|---|---|
| 이름 | '노자(老子)'는 실명이 아니라 '늙은 스승'을 뜻하는 존칭. 공자·맹자·장자처럼 '자(子)'가 붙는 구조 |
| 전통적 신원 | 『사기』에 따르면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 |
| 활동 시기 | 학계 추정. 전통적으로는 공자(기원전 551479)보다 연장자, 펑유란은 전국시대(기원전 480221) 인물로 봄 |
| 출신·직임 | 『사기』에 따르면 초나라 출신, 주(周) 왕실의 장서 관리 |
| 대표 저작 | 『도덕경』(『노자』). 도경 137장, 덕경 3881장, 총 81장, 약 5천 자 |
| 핵심 개념 | 도(道), 덕(德), 무위(無爲), 유약, 자연 |
| 전통 | 한대(漢代)에 이르러 '도가(道家)' 학파로 분류됨 |
| 1차 자료 문제 | 가장 이른 전기는 사마천 『사기』인데 신빙성이 의문시됨. 사마천 자신도 노자를 '은군자(隱君子)'라 부르며 신원을 알 수 없다고 적음 |
노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확정된 답이 없어요. 노자에 대한 가장 이른 '전기' 자료는 한대(漢代) 궁정 사관 사마천(기원전 약 145~86년)이 쓴 『사기』인데, 그 신빙성은 학계에서 의문시돼요(스탠퍼드 철학백과).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노자는 성이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이고, 초나라 출신으로 주(周) 왕실의 장서실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어요(위키백과). 왕실 도서관을 지키던 사서라는 그림인 셈이에요.
그런데 사마천은 정작 노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셋이나 나란히 제시했어요. 이이(李耳, 노담), 열다섯 편의 책을 썼다는 노래자(老萊子), 공자가 죽고 백여 년 뒤에 진 헌공과 회담했다는 주나라 태사담(太史儋)이에요. 그리고 결론적으로 노자를 '은군자(隱君子)', 곧 숨어 사는 사람으로 규정하며 정확한 신원은 알 수 없다고 적었어요. 가장 이른 전기의 저자부터 이미 확신하지 못한 거예요.
노자와 공자의 만남은 『사기』 63편에 실린 일화로 전해져요. 공자(기원전 551~479년)가 예(禮)에 관해 노자에게 자문을 구하고 이후 그를 극찬했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이 노자가 공자보다 연장자였다는 전통적 주장의 근거가 돼요(스탠퍼드 철학백과).
다만 이 일화를 역사로 읽을지는 별개 문제예요. A. C. 그레이엄(1986)은 노자 이야기 자체가 서로 다른 전설들이 결합된 결과라고 보면서, 공자와 노담의 만남을 다룬 가장 이른 갈래가 이미 기원전 4세기에 유포되어 있었다고 봤어요. 이야기가 먼저 돌아다니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한 인물이 뒤늦게 정리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에요.
펑유란(馮友蘭)은 한발 더 나아가 노자가 전국시대(기원전 480~221년) 인물이었다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사마천이 전설적 인물 노담(老聃)과 후대의 실존 인물 이이(李耳)를 혼동했다고 봤어요.
『도덕경』의 저술 장면은 『사기』의 유명한 서사로 남아 있어요. 노자가 주나라의 쇠퇴를 보고 서쪽 국경으로 떠났는데, 관문지기 윤희(尹喜)가 글을 남겨달라고 청했고, 노자가 도(道)와 덕(德)의 의미를 논하는 약 5천 자 분량의 책을 두 편으로 나눠 쓴 뒤 사라졌다는 이야기예요. 그 뒤로는 아무도 그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고 해요(스탠퍼드 철학백과, 영어 위키백과).
이 장면은 종교적·설화적 성격이 강해요. 문헌학적으로는 궈뎬(기원전 300년경), 마왕두이(기원전 2세기), 베이다 등 출토 판본을 통해 텍스트가 기원전 5세기 후반부터 기원전 3세기 중반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형성됐다는 견해가 유력해요. 관문에서 단 한 번의 자리에 앉아 완성된 책이 아니라, 여러 세대를 지나며 자라난 텍스트에 가깝다는 거예요.
노자의 도(道)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놓치게 되는 무엇이에요. 『도덕경』은 첫 장부터 이렇게 시작해요.
"말로 할 수 있는 도는 항상된 도가 아니다(The Way that can be spoken of is not the constant Way)." — 『도덕경』 1장
노자는 그것을 부르는 이름조차 임시로 붙인 것이라고 밝혀요. 25장에는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저 도라고 부른다(I do not know its name; I style it Dao)"는 구절이 있어요(스탠퍼드 철학백과).
도는 만물이 생겨나는 자리이기도 해요. 42장은 "도(道)는 일(一)을 생하고 일은 이(二)를 생하고 이는 삼(三)을 생하고 삼은 만물을 생한다"고 말해요(위키백과). 40장은 "천하 만물은 유(有)에서 나고, 유는 무(無)에서 난다"고 덧붙여요.
그런데 도가 낳는다는 것이 소유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10장은 이렇게 말해요. "도(道)는 만물을 생장시키지만 만물을 자신의 소유로는 하지 않는다. 도는 만물을 형성시키지만 그 공(功)을 내세우지 않는다. 도는 만물을 성장시키지만 만물을 주재하지 않는다." 낳되 붙들지 않는 방식, 이것이 노자가 말하는 도의 성격이에요.
무위(無爲)를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이해하는 것은 흔한 오해예요. 스탠퍼드 철학백과에 따르면 무위는 총체적 무행동이 아니라 사사로운 욕망에서 비롯된 행위와 대비되는 개념이에요(스탠퍼드 철학백과).
실제로 『도덕경』은 특정 행위를 무조건 배제하지 않아요. 65장에서 69장에 이르는 대목은 군사적 행위를 전면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읽혀요. 무위가 손을 놓는 태도라면 이런 서술이 함께 놓일 수 없었을 거예요.
무위와 짝을 이루는 것이 자연이에요. 55장은 "도(道)는 자연(自然)의 순리를 따른다(法)"고 말하는데, 사람이 자기 의지로 자연계를 지배할 수 없음을 설명하는 구절로 읽혀요(위키백과). 38장의 "가장 높은 덕은 덕스럽지 않다. 그래서 덕을 지닌다(The highest virtue is not virtuous; therefore it has virtue)"도 같은 결이에요. 덕을 의식하고 내세우는 순간 그것은 이미 덕이 아니게 된다는 거예요.
노자는 물을 도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꼽았어요. 8장은 이렇게 말해요.
"상선(上善)은 물과 같다. 물은 흘러서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그러면서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때문에 도에 가깝다" — 『도덕경』 8장
물이 도에 가까운 이유는 강해서가 아니라 다투지 않고 낮은 곳에 머물기 때문이에요. 78장은 "천하의 유약하기는 물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하고, 36장은 "유약은 강강(剛強)에 승한다"고 해요. 76장은 "유약한 자는 생(生)의 도(徒)이다"라고 말해요(위키백과).
통치에 관해서도 같은 태도가 이어져요. 60장의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governing a large country is like cooking a small fish)"는 구절은 오늘날 국제 정치 수사에도 자주 인용돼요(스탠퍼드 철학백과). 작은 생선은 자꾸 뒤집으면 부서지니까요.
53장에는 이런 구절도 있어요. "큰 도는 아주 평탄한데(가기 쉬운데), 사람들은 샛길(jìng)을 좋아한다."
현행 『도덕경』은 두 부, 총 81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도경이 1장부터 37장, 덕경이 38장부터 81장이에요(스탠퍼드 철학백과, 위키백과).
분량이 약 5천 자여서 흔히 '오천언(五千言)' 텍스트로도 불려요. 다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판본이 5천 자를 5~10퍼센트 정도 넘겨요.
'도덕경'이라는 이름 자체도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니에요. 이 명칭은 한대(漢代) 후반에 이르러서야 널리 쓰이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그냥 『노자』였던 셈이에요.
20세기 후반의 출토 자료는 『도덕경』이 하나의 고정된 책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줬어요.
1973년 후난성 창사 인근 마왕두이(馬王堆)에서 갑(甲)·을(乙) 두 종의 백서가 발견됐어요. 무덤은 기원전 168년에 봉인됐고, 갑본은 그중 더 오래된 것으로 기원전 195년 이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돼요. 눈에 띄는 점은 순서예요. 두 백서 모두 현행본과 반대로 「덕경」(현행본 38장에 해당)이 먼저 오고 「도경」이 나중에 와요(스탠퍼드 철학백과).
1993년 말에는 후베이성 궈뎬(郭店) 1호 무덤에서 약 800매의 죽간이 나왔어요. 그중 730매에 글자가 새겨져 총 1만 3천여 자였고, 이 가운데 약 2천 자가 현행 『노자』와 일치해요. 무덤은 기원전 300년경으로 추정돼요. 도굴 피해를 입은 채 발견됐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노자』 텍스트예요(영어 위키백과).
2009년에는 베이징대학교가 해외에서 기증받은 죽간 컬렉션에 거의 완전한 『노자』본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이른바 '베이다 노자'로, 서한 무제(재위 기원전 141~87년) 통치 후반기의 것으로 연대가 추정돼요.
같은 『노자』를 두고 두 개의 대표적인 독법이 갈려요. 왕비(王弼, 226~249년)는 위진시대 현학(玄學) 운동의 대표적 인물이고, 그의 『노자』 주석은 오늘날 통행되는 텍스트의 주요 근거가 됐어요. 왕비는 42장 주석에서 '일(一)은 무(無)라 할 수 있다'고 하며, 도를 실체적인 기(氣)가 아니라 존재론적 근거로 해석하는 입장을 대표해요(스탠퍼드 철학백과).
하상공(河上公) 주석은 다른 길을 가요. 우주가 기(氣)로 구성되어 있다는 한대(漢代) 사상의 관점에서 『노자』를 읽고, '하나(一)'를 만물을 낳고 기르는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형태의 기로 봐요. 도가 비어 있는 근거인가, 가장 순수한 기운인가에서 두 주석이 갈리는 거예요.
영향력으로 보면 하상공 주석이 송대까지 전통 중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노자』 주석으로 통했고, 도교 경전 서열에서 『도덕경』 자체 다음가는 지위를 가져요.
노자는 어느 시점부터 철학자가 아니라 신격으로 모셔졌어요. 2세기에 성립된 천사도(天師道)는 최초의 조직화된 종교 도교 교단인데, 신격화된 노자의 새로운 계시에 기반해 창설됐어요(스탠퍼드 철학백과, 영어 위키백과).
왕조가 그를 조상으로 삼기도 했어요. 당 황실 이씨(李氏)는 이이(李耳)로 여겨지는 노자를 시조로 추존했고, 666년 고종은 노자에게 '태상현원황제(太上玄元皇帝)' 존호를, 743년 현종은 '성조(聖祖)' 존호를 올렸어요. 송 진종(眞宗)은 '태상노군혼원상덕황제(太上老君混元上德皇帝)'로 추존했어요(위키백과).
텍스트도 국가 제도 안으로 들어갔어요. 733년 당 현종은 모든 관리에게 『도덕경』을 집에 소장하도록 칙령을 내리고 이를 과거시험 과목으로 채택했어요. 오늘날에도 노자의 '생일'은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음력 2월 15일에 기념돼요.
『노자』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국경을 넘었어요. 7세기에 산스크리트어로 번역됐고, 18세기에는 라틴어 번역본이 영국에 전해졌어요. 미샤 태드(2022)에 따르면 이후 2천 종이 넘는 번역이 이루어졌어요(스탠퍼드 철학백과).
다만 번역이 많다는 건 해석도 그만큼 갈렸다는 뜻이에요. 노자를 현대 자유방임주의나 리버테리언 사상의 원조로 읽는 독법(머레이 라스바드 등)이 있는데, 로데릭 롱 같은 학자는 도가 사상에서 발견되는 리버테리언적 요소가 실제로는 더 이른 시기의 유가(儒家) 저작에서 차용된 것이라고 반박해요(영어 위키백과).
한편 '도가(道家)'라는 학파 이름도 노자 당대의 것이 아니에요. 노자와 장자 등의 가르침이 도 개념을 중심으로 공통된 통찰을 공유한다고 여겨져 별도의 학파로 묶인 것은 한대(漢代)에 이르러서였어요.
통념: 노자는 도덕경을 쓴 실존 인물이다.
실제로는, 노자가 『도덕경』을 저술한 단일 역사적 개인이라는 전통적 견해를 현대 학계 다수는 받아들이지 않아요. 서양 학계에서는 20세기 중반 이래 『노자』가 여러 저자의 손을 거쳐 형성된 격언 모음이고 저자는 후대에 만들어 붙여진 것이라는 견해가 정설에 가까워요(영어 위키백과).
통념: '노자'는 그 사람의 이름이다.
실제로는, '노자(老子)'는 실명이 아니라 '늙은 스승'을 뜻하는 존칭이에요. 공자(孔子)·맹자(孟子)·장자(莊子)처럼 '자(子)' 존칭이 붙는 구조를 따라요. 개인 이름으로 오해하기 쉬운 대목이에요.
통념: 노자는 곧 이이(李耳)라는 한 사람이다.
실제로는, 펑유란 등은 전설적 인물 '노담(老聃)'과 전국시대 실존 인물 '이이'가 사마천에 의해 혼동되어 하나로 합쳐졌다고 봐요. 노자의 출생지, 실명, 실존 여부 자체가 학자들 사이에 여전히 이견이 있는 사안이에요(스탠퍼드 철학백과).
통념: 노자가 관문에서 단숨에 도덕경을 지었다.
실제로는, 이 서사는 종교적·설화적 성격이 강해요. 문헌학적으로는 궈뎬(기원전 300년경), 마왕두이(기원전 2세기), 베이다 등 여러 판본을 통해 텍스트가 기원전 5세기 후반부터 기원전 3세기 중반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형성됐다는 것이 유력한 견해예요.
통념: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는, 무위는 총체적 무행동이 아니라 사사로운 욕망에서 비롯된 행위와 대비되는 개념이에요. 전쟁 같은 특정 행위가 무조건 배제되는 것도 아니어서, 65장에서 69장은 군사 행위를 전면 배제하지 않아요.
통념: 노자가 인도로 건너가 붓다의 스승이 됐다.
실제로는, 노자가 인도까지 가서 싯다르타의 스승이 되었다거나 노자 자신이 붓다였다는 이야기는 후대에 덧붙여진 전설적 각색이고 역사적 사실로 취급되지 않아요.
통념: 도덕경 65장은 백성을 어리석게 두라는 우민화 통치술이다.
실제로는,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우민화 통치술로 읽을지 소박함으로의 회귀를 뜻하는 은유로 읽을지는 학계에서 논쟁 중이고,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기 어려워요.
노자는 언제 사람인가요?
확정되지 않았어요. 전통적으로는 공자(기원전 551~479년)보다 연장자로 여겨지지만, 펑유란은 노자를 전국시대(기원전 480~221년) 인물로 보고, 실존 여부 자체도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어요.
도덕경은 몇 장이고 얼마나 긴가요?
현행 『도덕경』은 도경 1~37장, 덕경 38~81장으로 총 81장이에요. 분량이 약 5천 자여서 '오천언(五千言)'으로도 불리지만, 대부분의 판본은 5천 자를 5~10퍼센트 정도 넘겨요.
가장 오래된 도덕경 판본은 무엇인가요?
1993년 말 후베이성 궈뎬(郭店) 1호 무덤에서 나온 죽간본이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노자』 텍스트예요. 무덤은 기원전 300년경으로 추정되고, 죽간 중 약 2천 자가 현행 『노자』와 일치해요.
마왕두이 백서는 현행본과 무엇이 다른가요?
1973년 마왕두이에서 나온 갑·을 두 백서는 모두 현행본과 반대로 「덕경」이 먼저 오고 「도경」이 나중에 오는 순서예요. 무덤은 기원전 168년에 봉인됐고, 갑본은 기원전 195년 이전 필사로 추정돼요.
도가는 노자가 만든 학파인가요?
아니에요. 노자와 장자 등의 가르침이 도 개념을 중심으로 공통된 통찰을 공유한다고 여겨져 '도가(道家)'라는 별도 학파로 분류된 것은 한대(漢代)에 이르러서였어요.
노자에 관해 확실한 것은 생각보다 적어요. 가장 이른 전기를 쓴 사마천부터 후보 인물을 셋 제시하고는 '숨어 사는 사람'이라 적으며 손을 놓았고, 이후 학자들은 그 공백을 서로 다르게 메웠어요. 궈뎬과 마왕두이에서 나온 죽간과 백서는 이 책이 한 번에 완성된 저작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자라난 텍스트라는 쪽을 가리켜요.
그런데 저자가 흐릿해진 뒤에도 텍스트는 계속 읽혔어요. 왕비는 도를 무로 읽었고 하상공은 기로 읽었고, 천사도는 노자를 신으로 모셨고, 당 현종은 관리들에게 이 책을 집에 두게 했어요. 7세기 산스크리트어 번역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2천 종이 넘는 번역이 나왔고요.
물이 다투지 않고 낮은 곳에 머문다는 8장의 구절과, 이름을 알지 못해 그저 도라고 부른다는 25장의 구절이 같은 책에 나란히 있어요. 이름을 남기지 않은 저자와 이름 붙이기를 거부한 개념이 한자리에 놓인 셈이에요.

노자
Laozi
기원전 571년
억지로 하지 않음, 자연을 따르라 한 도가의 시조.

공자
Confucius
기원전 551년
어짊과 예로 사람다움을 가르친 유교의 창시자.

장자
Zhuangzi
기원전 369년
나비 꿈처럼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노닐라 한 도가 사상가.

이고
Li Ao
772년
성(性)의 회복으로 성인에 이름을 논한 당대의 유학자.

풍우란
Feng Youlan
1895년
중국철학사를 정리한 현대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
Karl Jaspers
1883년
한계상황에서 실존이 깨어난다 한 철학자.

맹자
Mencius
기원전 372년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하다고 본 유학자, 성선설.

석가모니
Gautama Buddha
기원전 563년
집착을 내려놓아 고통에서 벗어나라 한 불교의 창시자.

노자
Laozi
기원전 571년
억지로 하지 않음, 자연을 따르라 한 도가의 시조.

공자
Confucius
기원전 551년
어짊과 예로 사람다움을 가르친 유교의 창시자.

장자
Zhuangzi
기원전 369년
나비 꿈처럼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노닐라 한 도가 사상가.

이고
Li Ao
772년
성(性)의 회복으로 성인에 이름을 논한 당대의 유학자.

풍우란
Feng Youlan
1895년
중국철학사를 정리한 현대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
Karl Jaspers
1883년
한계상황에서 실존이 깨어난다 한 철학자.

맹자
Mencius
기원전 372년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하다고 본 유학자, 성선설.

석가모니
Gautama Buddha
기원전 563년
집착을 내려놓아 고통에서 벗어나라 한 불교의 창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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