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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왕부지는 명나라가 무너지던 17세기 중국에서, 세상 만물이 '기'라는 물질적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치는 그 기 바깥이 아니라 안에 들어 있다고 본 청나라 초기 사상가예요.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나막신을 신고 다닌 선비가 있었어요.
멋을 부린 게 아니에요.
머리 위 하늘도, 발밑 땅도 새로 들어선 청나라 것은 밟지 않겠다는 뜻이었죠.
이 고집스러운 사람이 바로 왕부지예요.
1644년, 삼백 년 가까이 이어진 명나라가 무너지고 북쪽에서 내려온 청나라가 중국의 새 주인이 됩니다.
스물다섯 살의 젊은 선비 왕부지는 고향 형양에서 군대를 일으켜 맞서 싸웠지만 졌어요.
그 뒤로 그는 벼슬도 이름도 버리고 선산이라는 산자락에 숨어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왕선산이라고도 불러요.
산속에서 그는 무엇을 했을까요.
책을 썼습니다.
그것도 마흔 해 가까이, 백 권이 넘는 책을요.
신기한 건 살아 있는 동안 그 책들이 거의 읽히지 않았다는 거예요.
백오십 년쯤 지나서야 사람들이 그의 글을 다시 꺼내 읽으며 놀랐습니다.
황종희, 고염무와 함께 명나라 말 청나라 초를 대표하는 세 사상가로 꼽히게 된 거죠.
왕부지 철학의 핵심은 딱 한 글자, '기'예요.
기는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물질적인 기운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공기와 물, 흙, 우리 몸까지 전부 기가 모이고 흩어지면서 생겨난다고 본 거죠.
빵 반죽을 떠올려 볼까요.
밀가루 반죽이 있으면 거기서 빵도 만들고 국수도 만들 수 있어요.
왕부지에게 기는 이 반죽 같은 거예요.
세상 모든 것의 재료죠.
그런데 반죽으로 빵을 만들 때는 부풀리고 굽는 순서와 규칙이 있잖아요.
그 규칙에 해당하는 게 바로 '리', 즉 이치예요.
여기서 왕부지의 생각이 분명해져요.
반죽이 없으면 빵 굽는 규칙도 쓸 데가 없죠.
재료가 먼저고, 규칙은 그 재료 안에서 함께 움직인다.
기가 있어야 리도 있다.
이게 그가 평생 붙들었던 생각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기를 중심에 둔 유물론자라고 불러요.
유물론은 어렵게 들리지만, 눈에 보이는 물질이 세상의 바탕이라고 보는 생각이라고 기억하면 됩니다.
사실 왕부지보다 앞선 시대에는 다르게 보는 생각이 더 힘이 셌어요.
송나라의 큰 학자 주희는 이치인 '리'가 물질인 '기'보다 더 근본이고 위에 있다고 가르쳤거든요.
눈에 보이지 않는 완벽한 이치가 먼저 있고, 물질은 그 이치를 따라 생겨난다는 거예요.
왕부지는 여기에 고개를 저었어요.
두 사람의 생각을 나란히 놓으면 이래요.
| 질문 | 주희의 생각 | 왕부지의 생각 |
|---|---|---|
| 무엇이 먼저인가 | 이치가 먼저 | 기운이 먼저 |
| 이치는 어디 있나 | 물질 위에 따로 | 물질 안에 함께 |
| 세상의 바탕은 | 보이지 않는 이치 | 눈앞의 물질 |
나뭇결을 떠올리면 쉬워요.
나무가 있어야 결도 있죠.
나무 없이 결만 따로 떠다닐 수는 없잖아요.
왕부지에게 리는 바로 이 나뭇결 같은 거예요.
기라는 나무가 자라고 움직이는 그 결이 곧 이치라는 거죠.
그러니 이치를 알고 싶다면 하늘만 올려다볼 게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는 물질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그는 말했어요.
왜 왕부지는 보이지 않는 이치보다 눈앞의 물질을 믿었을까요.
그가 살았던 시대를 떠올려 보면 짐작이 가요.
그는 나라가 통째로 무너지는 걸 두 눈으로 봤어요.
학자들이 책상 앞에서 마음과 이치만 고상하게 떠드는 동안, 정작 나라를 지킬 힘은 길러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는 발 딛고 선 현실, 실제로 움직이고 변하는 세상을 똑바로 보자고 했어요.
게다가 왕부지는 세상이 멈춰 있지 않다고 봤어요.
기는 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르고 바뀝니다.
어제의 강물과 오늘의 강물이 다르듯, 세상도 날마다 새로워진다고요.
그러니 옛 규칙만 그대로 외우지 말고, 변하는 현실에 맞게 다시 생각하라는 거예요.
나라를 잃고도 그가 절망 대신 펜을 든 데에는, 세상은 끝나지 않고 계속 바뀐다는 이 믿음이 있었어요.
왕부지의 이야기는 사백 년 전 중국 이야기지만, 던지는 질문은 지금도 살아 있어요.
멋진 생각이 먼저일까, 아니면 발 딛은 현실이 먼저일까.
시험공부를 떠올려 볼까요.
머릿속으로 완벽한 계획만 세우는 친구와, 일단 책을 펴서 한 문제씩 풀어 가는 친구가 있어요.
왕부지라면 두 번째 친구의 손을 들어 줄 거예요.
계획이라는 이치도 결국 실제로 손을 움직이는 그 행동 안에서 자라난다고 보니까요.
거창한 말보다 지금 할 수 있는 한 걸음을 먼저 떼는 것, 그게 그가 산속에서 사십 년을 버틴 방식이기도 했어요.
왕부지는 나라가 무너진 자리에서 숨어 살며, 세상은 '기'라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이치는 그 안에 함께 있다고 본 사상가예요.
반죽이 있어야 빵 굽는 규칙이 쓸모 있고 나무가 있어야 나뭇결이 생기듯, 그는 보이지 않는 이치보다 눈앞의 물질과 변화하는 현실을 먼저 봤어요.
거창한 생각보다 발 딛은 자리에서 시작하라는 그의 목소리는, 백오십 년을 잠들었다 깨어난 그의 책처럼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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