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도망친 캉유웨이가 굳이 황제를 지키자고 외친 이유
황제가 갇히고, 신하가 도망친 어느 밤
1898년 가을, 중국 베이징에서 한 학자가 쫓기듯 도시를 빠져나가요. 이름은 캉유웨이예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는 황제 곁에서 나라를 바꾸자고 큰소리치던 사람이었어요. 광서제라는 젊은 황제를 도와 낡은 제도를 뜯어고치는 개혁을 막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그 개혁은 딱 103일 만에 무너져요. 당시 진짜 권력을 쥐고 있던 서태후가 군대를 움직여 황제를 궁 안에 가둬 버렸으니까요. 함께 일하던 동료 여섯 명은 붙잡혀 목이 잘렸고, 캉유웨이에게도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그는 배를 타고 나라 밖으로 달아납니다. 이때부터 15년이 넘는 긴 망명 생활이 시작돼요.
도망친 사람이 만든 '황제 지키기 모임'
보통 이렇게 쫓겨나면 조용히 숨어 살 것 같죠. 그런데 캉유웨이는 정반대로 움직여요. 1899년, 그는 캐나다의 한 도시에서 모임을 하나 만들어요. 이름이 보황회예요. 풀어 쓰면 '황제를 지키는 모임'이라는 뜻이에요.
여기서 좀 이상하죠. 황제는 이미 권력을 빼앗기고 궁에 갇혔는데, 대체 무얼 어떻게 지킨다는 걸까요. 쉽게 빗대면 이래요. 학교에서 정당하게 뽑힌 반장이 힘센 누군가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교실 구석에 묶여 있어요. 캉유웨이는 "저 반장이 진짜 반장이다, 우리가 힘을 모아 다시 그 자리에 앉히자"라고 외친 거예요. 그가 지키려던 건 갇혀 버린 광서제, 그리고 그 황제와 함께 하려던 개혁이었어요.
왜 황제를 없애지 않고 지키려 했을까
비슷한 시기, 또 다른 사람들은 아예 황제 제도 자체를 없애자고 했어요. 쑨원이 이끈 혁명파가 그랬죠. 왕도 황제도 없는 공화국을 만들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캉유웨이는 거기에 반대했어요.
그의 생각은 이랬어요. 갑자기 집의 기둥을 통째로 뽑아 버리면 지붕까지 무너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황제는 그대로 두되, 황제 혼자 모든 걸 정하는 게 아니라 법과 의회가 함께 나라를 끌고 가게 하자고 했어요. 이걸 입헌군주제라고 불러요. 어려운 말 같지만, 영국이나 일본처럼 임금은 상징으로 남고 실제 정치는 법과 국민의 대표가 맡는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보황회는 그저 한 사람을 떠받드는 팬클럽이 아니라, '황제를 살려서 나라의 제도를 천천히 바꾸자'는 운동이었던 거예요.
망명객의 무기는 돈과 사람이었어요
나라 밖으로 쫓겨난 사람이 무슨 힘이 있겠나 싶지만, 캉유웨이에게는 뜻밖의 자산이 있었어요. 바로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중국인들, 화교예요. 그는 캐나다와 미국, 동남아시아를 돌아다니며 보황회 지부를 세웠어요. 한두 곳이 아니라 세계 곳곳 수백 곳에 모임이 생겼고, 화교들은 여기에 자기 돈을 보탰어요.
이 돈은 그냥 쌓이기만 한 게 아니에요. 신문을 만들어 자기 생각을 널리 알리고, 학교와 사업체까지 운영했어요. 나라에서 쫓겨난 한 사람이 바다 건너에서 수백 곳에 이르는 조직을 굴린 셈이에요. 덕분에 캉유웨이는 쑨원의 혁명파와 해외 화교의 마음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맞수가 됐어요.
끝내 돌아왔지만 시대는 달라져 있었어요
하지만 역사는 캉유웨이가 바란 쪽으로 흐르지 않았어요. 1911년, 결국 혁명이 일어나 청나라가 무너지고 황제 제도 자체가 사라져요. 지킬 황제가 없어진 거죠. 15년 만에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그래도 끝까지 군주제를 포기하지 않았고, 1917년에는 폐위된 어린 황제를 다시 그 자리에 앉히려는 일에까지 끼어들어요. 하지만 그 시도는 며칠 만에 실패해요. 시대는 이미 그를 한참 앞질러 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평생 품은 더 큰 꿈은 따로 있었어요. '대동'이라는 생각이에요. 신분도 국경도 차별도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어울려 사는 세상을 그린 거였어요. 황제를 지키자던 조심스러운 모습과, 이렇게 까마득히 이상적인 꿈이 한 사람 안에 같이 들어 있었다는 점이 캉유웨이의 묘한 매력이에요.
정리
캉유웨이는 개혁이 실패하자 목숨을 건지려 나라 밖으로 달아난 망명객이었어요. 하지만 숨어 지내는 대신, 갇힌 황제를 다시 세우자며 보황회라는 세계적인 조직을 만들었죠. 그가 황제를 지키려 한 건 한 사람을 우러러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한꺼번에 뒤엎지 않고 법과 의회를 통해 천천히 바꾸려 했기 때문이에요. 비록 그 꿈은 시대에 밀려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모두가 평등한 '대동' 세상을 그렸던 그의 마음은 지금 봐도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해요.

